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송통신융합기구 설치 논의가 단계를 넘어설수록 더욱 꼬이고 있는 듯합니다. IPTV 도입을 둘러싼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공방을 계기로 본격화된 이 논의는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국무조정실,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 방통특위 법안심사소위원회 등으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쟁점이 계속 등장하는 바람에 핵심 당사자들도 어디로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형국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진화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나듯, 애초에 논의를 시작한 사람들도 생각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전혀 예상하지 않은 기구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난산 끝에 옥동자가 태어나기는커녕 기형아도 아니고 괴물이 탄생한다면 끔찍한 일이겠지요.

방송위와 언론관련 시민단체, 현업 언론인단체 등에게는 9월 17일 법안소위 3차 회의에서 잠정 합의된 안이 괴물처럼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미군의 독극물 방류에 따라 돌연변이로 탄생한 영화 '괴물'의 주인공 같은, 그래서 소설 주인공처럼 창조주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복수하는 그런 끔찍한 괴생명체 말입니다.

2차까지 진행된 법안소위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과 함께 의원 입법으로 상정된 7개 법안을 논의하며 진흥과 규제를 구분할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정책과 집행으로 나눠 4가지 조합을 만들었지요.

독임제 행정부처가 진흥(정책ㆍ집행), 대통령 소속 합의제 독립 위원회가 규제(정책ㆍ집행)를 담당하는 A안(정통부와 방송위의 진흥기능과 규제기능을 나눠 각각 통합함), 부처가 진흥(정책ㆍ집행)과 규제(정책), 위원회가 규제(집행)를 맡는 B안, 부처가 진흥(정책ㆍ집행), 위원회가 규제(정책ㆍ집행)와 일부 진흥(정책ㆍ집행)을 맡는 C안, 부처가 진흥(정책ㆍ집행)과 규제(정책), 위원회가 규제(집행)와 일부 진흥(정책ㆍ집행)을 관장하는 D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진흥은 부처의 소관으로 한 뒤 위원회에 규제를 다 맡기는 A안과 규제 가운데 집행만 맡기는 B안이 뼈대이고, C안과 D안은 각각 A안과 B안에서 위원회에 조금 더 무게를 실은 것이지요. 이를 달리 보면 C안과 D안은 진흥과 규제라는 이분법보다는 정책과 집행을 기준으로 나눈 듯한 느낌도 듭니다.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진흥',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규제'라고 정의했는데, 이 가운데 '정책'은 정책을 수립하거나 법령을 제-개정하는 것이고 '집행'은 목적 달성을 위해 실행하는 것이랍니다. 예를 들어 진흥정책은 보조금 지급 수립계획, 진흥집행은 지원 사업 집행ㆍ관리, 규제정책은 인-허가 관련 법령 제-개정, 규제집행은 인-허가 및 단속 등이지요(이게 두부모처럼 잘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굳이 나눈다면 나눌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3차에서는 문광위 소속의 정종복(한나라다당)ㆍ정청래(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나머지 4명의 법안소위 의원들이 C안에 잠정합의했지요. 정통부로서는 망외의 소득을 거둬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고, 방송위로서는 그동안 비판해왔던 정부안이 차라리 낫다고 여길 만큼 참담한 처지가 되고 말았지요.

이에 대해 방송위는 물론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ㆍ언론개혁시민연대ㆍ여성민우회 등은 거세게 반발했지요. 규제정책을 부처에 넘겨주고 위원회는 규제집행만 맡는다는 것은 방송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방송정책 수립과 인-허가 등 규제 정책권과 집행권을 공보처(문화관광부)에서 빼앗아 방송위로 넘겨준 방송개혁위원회의 합의정신과 통합방송법의 제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9월 28일 열린 법안소위 4차 회의에서는 이러한 반발에다가 3차 회의에 빠졌던 두 의원의 강력한 이의 제기에 따라 잠정합의안이 일단 보류됐습니다.

이재웅 위원장이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 잠정 합의라는 표현은 3차 회의에 참석한 4인이 잠정적으로 공감했다는 의미다.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겠다"고 말했고 권선택 의원이 "가변적인 상황"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4인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징후도 없기 때문에 B안이 폐기됐다고 보기도 어렵겠지요.

국정감사와 예-결산 등 국회 일정이나 대선ㆍ총선 등 정치 일정으로 볼 때 표결 처리를 강행하기는 어렵겠지만, 법안소위, 방통특위, 국회 본회의 등의 분위기로 보아 표결을 한다면 방송위나 언론-시민단체의 기대와 달리 B안이 채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법안소위는 10년도 채 안돼 방송정책권을 정부 부처에 다시 넘겨주자는 '잠정적인 공감'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융추위를 거쳐 정부가 마련한 법안은 정통부와 방송위를 통합해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든다는 것이었고 문화관광부, 산업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과는 일부 역무만 조정하면 되는 것이었죠. 주요 쟁점은 위원 임명방식, 독임제적 요소와 합의제적 요소의 결합방식 등이었습니다.

방송계와 시민단체 쪽에서는 독임제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을 주로 문제 삼았고, 한나라당과 보수신문 쪽에서는 국회 추천 없이 대통령이 모두 임명(추후 단체 추천방식 일부 도입)하는 걸 반대하는 데 무게를 실은 듯 했습니다.

그런데 논의가 지연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정부가 책임을 갖고 미디어 진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규제와 진흥의 분리론이 나온 데 이어 정책과 집행을 쪼개는 방안까지 더해져 정부 부처가 많은 것을 갖는 쪽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지요.

애초 정부안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해온 방송계와 시민단체가 더욱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부안을 반대해온 쪽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안으로 가려는데도 왜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독임제 부처가 진흥은 물론 규제 정책권까지 지니면 국회나 단체의 추천을 받을 필요도 없고, 정해진 임기도 없는 장관을 대통령이 아무 때나 임명해 위원끼리 합의할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여기에는 그동안 방송위가 독립형 합의제 행정기구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많이 드러낸 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특히 IPTV의 조속한 도입을 바라온 쪽에서는 합의제 행정기구에 맡겨 두면 부지하세월이어서 디지털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여겼을 법하지요

한나라당과 보수신문의 태도 변화에는 방통위 출범 시기와도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방통위원을 임명하는 게 못마땅해 반대하다가(올해 초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방통위원의 임명이 문제면 국회에서 다음 정권부터 하도록 정해도 된다"고 말했지요), 시기가 늦춰져 현 대통령이 임명하기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대통령이 권한을 더 갖는 방식으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도 별 할 말이 없게 된 셈이지요.

수신료 인상안 넘겨받은 국회의원들의 고민

방송위가 KBS 수신료 인상안에 관한 검토의견을 확정해 국회로 넘겼습니다. 제가 2주 전 주제넘게 예상한 대로 9월 12일 한 차례 결정을 미룬 뒤 18일 의결하며,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대신 경영 개선과 공영성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당부했지요.

이로써 26년 만의 수신료 인상 대장정은 두 번째 고비를 넘은 셈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고비인 KBS 이사회와 두 번째인 방송위는 험난하긴 해도 통과가 예정돼 있었다고 해도 그른 말은 아닐 겁니다(동아일보는 KBS 이사회 절차에 법적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지요). 더욱이 방송위 의견은 가부를 묻는 절차도 아니지요.

이제 가장 큰 고비인 국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신문들의 전망은 부정적입니다.

경향신문은 국회 문화관광위원 24명에게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의견을 전화로 물어본 결과 반대 9명(37.5%), 유보 7명(29.2%), 찬성 8명(33.3%)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반대 7명(29.2%), 유보 7명(29.2%), 조건부 찬성 3명(12.5%), 찬성 7명(29.2%)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KBS가 문광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면 어떤 대답을 했을지 궁금하네요. 문광위원들이 경향이나 중앙이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논조를 보여 왔다는 걸 의식한 상태에서 답변을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거든요.

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달라졌을 겁니다. 경향은 <국회 문광위 의원 24명 중 16명 "반대ㆍ유보"-'KBS 수신료 인상안' 통과 어렵다>, 중앙은 <'KBS 수신료 인상안' 24명 중 7명 찬성-국회 문광위 통과 쉽지 않을 듯>이란 제목 아래 찬성 의원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했더군요.

KBS가 이 사실을 보도한다면 똑같은 결과라 해도 반대가 9명, 7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데 무게를 두지 않을까요.

두 신문의 예상대로 통과가 쉽지 않은 것 사실일 겁니다. 서울신문 기사대로 국회 공식 심의절차도 거치지 못하고 백지화될 가능성이 큰 것도 부인하기 어렵지요. 한나라당은 국회 심의의 전제조건으로 정연주 KBS 사장이 먼저 퇴진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답니다. 일정상으로도 국감이 닥쳐 있고 끝나면 바로 대선 정국이어서 틈이 없지요.

KBS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지만 상당수 국회의원들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겁니다. 수신료 인상안을 빨리 심의하라는 시민단체 등의 요구야 반대 의견도 많으니 적당히 넘긴다 해도 KBS의 눈치를 안 볼 수 없거든요. 적잖은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올 12월 대선보다 내년 4월 총선에 가 있기 때문에 KBS에 밉보이고 싶지 않다는 정서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KBS도 이걸 믿고 인상안을 밀어붙이려고 했는지도 모르지요). 물론 그렇다고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수신료를 올리자고 하기에도 부담스럽겠지요.
 
미디어렙 공청회에서 나온 '이상한' 공방

방송계의 해묵은 또하나의 현안이 바로 민영 미디어렙 문제입니다. 국회 문광위는 19일 손봉숙 의원과 정병국 의원이 낸 법안을 놓고 공청회를 열었지요. 손 의원 안은 미디어렙 수를 3개 이상으로 하는 것이고, 정 의원 안은 일단 민영 미디어렙 하나를 신설해 SBS와 지역 민방을 맡게 하고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는 KBS, MBC, EBS를 맡게 한 다음 3년 뒤 MBC에도 허용하자는 겁니다. 3년 뒤에는 결국 마찬가지가 되지만, 굳이 예전과 비교하자면 정 의원 안은 2000년 문화관광부가 제출한 법안과 닮았고 손 의원 안은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안에 가깝지요.

공청회에서는 그동안 반복돼온 공방이 되풀이됐습니다.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과 박원기 KOBACO 연구위원은 MBC 'PD수첩'이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실을 폭로했다가 광고 거부 사태를 맞은 사례를 예로 들며 미디어렙 경쟁체제가 도입될 경우 자본의 압력이 프로그램에 직접적으로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고사, 시청률 경쟁 격화에 따른 프로그램 질 저하, 광고요금 인상 등의 우려를 거론했지요.

반면 김재홍 한동대 경영경제학부 교수와 박명호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는 "KOBACO 독점으로 군소방송사 자발적 노력과 프로그램 질 향상의 인센티브가 약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할당과 끼워팔기 등의 폐해도 지적했지요. 김 교수는 "특정 종교 방송사를 온 국민이 지원하는 형평의 문제도 초래될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해당 종교단체 등에 재정책임이 있다"는 '당연'해 보이면서도 '위험'해 보이는 발언도 하더군요.

전형적인 시장논리와 공공논리의 대립 형국인데, 진보를 자처하는 진영에서 5공 신군부의 유산을 지지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고, 공공론자들이 늘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방송개혁위의 국민적 합의를 애써 외면하는 것도 이상하지요(KOBACO는 방송통폐합과 함께 탄생했으며, 1999년 방개위가 통합방송법의 뼈대를 만들며 KOBACO 독점체제 해소와 방송광고시장 활성화를 위해 민영 미디어렙 신설을 제안했지요).

반면 군소방송에 광고 배정을 지원하는 게 자발적 노력을 막아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든지, 광고요금이 시청률과 무관하게 통제됨에 따라 오락성ㆍ선정성이 높거나 쉽게 모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비용을 절감하려 한다는 시장론자들의 주장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더욱이 요즘에는 광고 판매율이 절반 남짓한 수준이어서 광고수입이 고정돼 있거나 보장된 것도 아닌 데 말입니다.

 

이희용[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http://blog.yonhapnews.co.kr/hoprave
heeyong@yna.co.kr

* 한국언론재단 제휴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