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평-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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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진실의 승리
  • 승인 1999.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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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영동 노근리의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건에 대해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지난 세월 그렇게 진실규명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해도, 미 당국과 정부는 끄떡도 않고 있더니 ap통신이 1년 이상의 추적 끝에 진실을 밝혀내자 국내외의 언론들도 경쟁하듯이 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 사건 관련 파일이 완전히 공개되기까지는 1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고, 또 파일이 원형 그대로 공개될지 어떤지도 두고 봐야하겠지만, 우리는 진실 규명을 위해 이렇게 집요한 자료 추적을 하고, 관련 당사자들을 찾아다닌 ap통신사의 진실 규명 의지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그러나 이 사건을 보는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무거운 이유는 아직 국내에서의 전쟁 시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의 진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혀있을뿐, 한국정부, 국회나 언론 역시 그러한 진실을 파헤칠 의지 혹은 용기를 갖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전쟁시 양민 학살이 일어난 이후 정부가 사건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언론이 그에 동조한 수많은 사례들을 알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인 49년 겨울 문경에서 발생한 양민학살의 경우 사망자의 호적에는 “공비들에 의한 소행”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동 노근리의 경우가 그러하지만, 거창, 산청, 함평 등지의 국군 혹은 미군 양민학살 건 역시 공식 기록에는 “인민군과의 교전” 정도의 사실만 기록되어 있다. 진실의 철저한 은폐는 피해자 당사자들의 ‘강요된 침묵’에 의해 가능했다. 학살 직후 ‘빨갱이’ 소탕으로 공식화된 학살 사건은 생존자와 유가족들로 하여금 ‘빨갱이’로 지목되지 않기 위해서는 침묵만이 살길이라는 생존본능을 내면화시켰고, 4·19 직후 각지 유족회의 활동이나 잠시 동안의 국회에서의 진상규명 노력이 5·16으로 완전히 불법화된 이후에 진실은 또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고, 살아남은 사람의 개인적인 기억 속에서만 가냘픈 생명을 유지해 왔다. 그리하여 당시의 학살 사건을 “사람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 참살”(산청), “제일 잔인하게 제일 많이 학살당한 곳”(함평), “고금을 통하여 지구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끔찍한 만행”(문경)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소수의 ‘기적 같은 생존자’들이 87년 이후 끊임없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광주민주화 시기의 공권력에 의한 학살 건의 경우 사건 발생시기가 비교적 최근이고, 목격자들이 거의 생존해 있고, 전라도의 소외의식을 ‘동원’한 정치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진실규명은 안되었다고 하더라도,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50여년 전의 이들 사건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 그리고 ‘좌익 소탕’의 명분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분단반공 체제하에서 거의 망각되고 말았다.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동족이 동족을, 전투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노인과 부녀자 어린아이까지 살해한 전쟁 당시의 양민 학살 사건이 언제나 체험자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추미애 의원에 의해 제주도 4·3 당시의 재판기록이 발굴되었으며, 마산에서는 미군에 의한 또 다른 양민학살 사건이 드러났다. 거창사건의 경우 발생당시에 이미 국회에서 진상조사가 실시된 바 있고, 올해 들어 국회에서 제주도 4·3특위가 구성되었고, 경기도의회는 고양시 양민학살 건에 대해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기관에서 진실규명 의지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는 크게 회의적이지만, 우리는 이번 영동 노근리 사건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한·미합동조사팀이 구성된다면, 전쟁 시 여타 양민학살의 진실규명 가능성도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contsmark1|아직도 이러한 진실규명 작업에 대해 ‘북한을 유리하게 한다’는 냉전논리를 들이대면서,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이 강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공권력의 범죄를 은폐한다는 것은 장차 더 심각한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소수의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된 ‘국군의 만행’이 국가의 공식 사과와 사망자에 대한 명예회복으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 공권력에 대한 도덕적 권위는 제대로 서지 않을 것이고 진정한 국민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전쟁 시 발생했던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이 정부, 국회, 언론에 의해 장차 어떻게 다루어지는 가를 보면 우리의 21세기가 ‘인권’의 세기가 될 수 있는지 점칠 수 있을 것이다. |contsma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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