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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특유의 감각으로 손꼽히는 클래식 전문 pdkbs tv2국 오세영 pd
|contsmark1|클래식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참 어렵다. 우선 음악에 대한 지식이 남달라야 하고, 음악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나름대로 두터워야 한다. 물론 pd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영상감각과 방송 매카니즘에 대한 이해는 당연한 조건이다.위에 열거한 조건을 두루 갖춘 연출가가 흔치 않기 때문에, 각 방송사에는 클래식 프로그램 전문 pd들이 보통 따로 있다. 오세영 pd는 단언컨대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프로그램을 가장 잘 만드는 pd 중 세 손가락에 꼽힐만한 사람이다. 그를 흠모하는 수많은 후배 중 한 사람인 필자의 눈에는 사실 클래식 프로그램은 오세영 pd가 최고다. 오세영 pd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정식 무대에서 노래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 가락을 들어보면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방송 pd가 된 이래로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클래식 프로그램이라는 외길을 걸어오며 그는 누가 알아주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비인기 종목, 클래식 프로그램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묵묵히 일했고, 그 결과 많은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다.필자도 참여했던 광복 50주년 콘서트,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un본부에서 열렸던 kbs 교향악단 un연주회 등에서 보여준 그의 클래식 연출 솜씨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외에도 엘리지베스 여왕 방한 환영 음악회를 비롯해 크고 작은 kbs의 특집 프로그램을, 오세영 pd는 특유의 영상감각과 곡 해석능력으로 훌륭히 소화해냈다.180cm가 넘는 큰 키에 탤런트 뺨치는 준수한 외모의 오세영 pd. 매년 크리스마스나 생일 때면 예쁜 포장의 선물에 따뜻한 말이 담긴 카드를 내밀며 멋적게 웃던 자상한 형님. 불혹의 나이에도 순수한 열정과 소년같은 설레임을 간직하고 있는 세영이 형을 보며 나도 이다음엔 저 양반처럼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하지만 그는 요즘 고민이 많다. 클래식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낮아 그 멋진 솜씨를 펼칠 무대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는 인스턴트 시대에, 진득하게 tv앞에 앉아 클래식의 향연에 동참할 시청자들이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인가 보다. 처음 오세영 pd와 함께 일할 때 그 현란한 클래식 연출에 탄복했던 필자는, 하루빨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전문 음악 프로그램이 나와서 예의 멋진 음악 연출 실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앞으로 대형 화면과 cd음질의 디지털 방송 시대가 도래하면, 지금은 소외된 전문 음악 프로그램들이 다시금 인기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2002년 월드컵 등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릴 커다란 축제와 행사를 맞아, 오세영 pd의 손길을 거친 많은 특집 프로그램들이 전파를 탈 것이다. 앞으로 그가 더욱 노력해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필자의 믿음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클래식 음악 전문 pd로서 우뚝서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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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혼돈 속에서 진정한 가치 찾아낼 적임자” mbc 신임 pd협회장 최진용 pd
|contsmark5|그는 다큐멘터리 pd이다. 그리고 pd로써 그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상을 4번 수상했고, 93년에는 <76인의 포로>로 ‘한국방송대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었다. 물론 화려한 수상경력이 그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냉철한 다큐멘터리스트’로 일관해왔고, 또 프로그램으로 실천해 보였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관찰과 문제의식이 반영된 그의 다큐멘터리, <딸의 실종>, <76인의 포로>, <전쟁과 인간> 등은 하나같이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었고, 현실을 바라보는 ‘그만의 방식’을 우리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시킨 바 있다.금년 6월, 그는 3년간의 파리 pd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다큐멘터리스트로써 그에게 이 기간은 한편으론 충전기였겠지만 동시에 공백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3년간의 외출 끝에 돌아온 그를 보면, 그의 현실감각이 과거보다 훨씬 더 예리해졌다는 느낌이다. 나는 그가 프랑스에서 어떤 정신적인 세례를 받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현실감각이 더욱 예리해졌다는 것은 분명한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뭔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pd협회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을 해야하는 상황에 오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비록 프로그램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 기회에 그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들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더 잘 발휘되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처한 방송 현실은 누가 보아도 정상이라고 말하기 힘든 ‘혼돈’ 그 자체이다. 그 중에 하나, 프로듀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공황은 이러한 혼돈의 주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가중되는 ‘상업화’의 공세 속에서, 그나마 방송에서 지켜내야만 하는 것으로 믿었던 것(그것이 정신적이든 기술적이든 간에)들이 하나 둘 무너지고 있고, 또 이러한 공세에 대한 올바른 대응책이 제대로 합의되고 만들어지지도 않는 사이에, 상업주의는 마지막 승리의 고지에 임박해 있는 것 같다. 아마 상업주의가 그 최후의 고지에 이르게 되면 방송을 통해 ‘정신적, 문화적 가치’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낯간지러운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소설(小說)을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양식’이라고 정의한 바 있지만, 이제 그 정의를 ‘방송’에 적용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롭게 mbc pd협회장으로 취임한 최진용 pd가 상업주의의 공세에 비틀대는 한국 방송의 현실 속에서 뭔가 ‘진정한 가치(價値)’를 이루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를 바라며, 또 그 일의 ‘적임자’라는 사실을 3년만에 돌아온 그의 모습을 보며 새삼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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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8|국가보안법 철폐위해 삭발단식 동참한 나승구 신부
|contsmark9|평화방송에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을 진행하는 나승구 신부. 단식 15일째 만난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40명의 신부들과 함께 삭발단식기도에 동참해 소금과 물만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또 그렇게 힘든 몸을 이끌고 ,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하루 2시간씩의 생방송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열혈 청취자’들의 걱정과 격려를 많이 받는다. ‘신부님, 까까중이 되셨다면서요’하며 나승구 신부 앞으로 보내온 편지엔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나승구 신부는 단식만 해도 벌써 4번째. 힘이 없는 그들은 ‘5·18 특별법 제정’ 등 그들의 ‘힘’이 필요할 때마다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 그가 속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다른 신부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대 희년인 내년, 2000년을 맞이하면서 그간 묶여있던 것을 풀어내자. 그중 국가보안법 폐지가 가장 먼저다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위염도 초기엔 석 달이면 고치지만 넘어가면 암이 되요. 지금 폐지하지 못하면 더 곪을 것입니다.”단식이 계속되고 여러 동료들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9월 7일부터 시작해 28일까지 22일 동안 진행해온 단식을 시작할 때 보다 더 어렵게 끝내야 했지만 그는 단식하는 내내 행복했다.“진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단식은 하지만 진리에 가깝게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지난 4월부터 방송을 맡아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그는 여전히 방송이 어렵다. 이미 그가 청소년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x세대, n세대, c세대 등 다양하게 불리는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청소년들을 그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의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나승구 신부가 그렇게 청소년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서른 일곱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린’얼굴을 하고있는지도 모르겠다.그가 청소년 속으로 들어가 방송을 하고 있는 것처럼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며 삭발단식을 하고 있다.이제 단식은 끝났지만 그는 다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창립 25주년 행사로 눈코 뜰 새없이 바쁘다. “저에게 주어진 몫이 있을 겁니다. 그 몫을 다하는 것이구요”나승구 신부, 그는 자기에겐 소명이 있다고 말한다. 민중의 소리를 하나님의 소리로 여기고 그 소리에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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