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인사 흔들기 언론탄압 불씨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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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뒤 언론계는 벌써부터 수장들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한나라당 측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공영방송 수장 흔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인수위 구성을 마무리하기 전부터 대대적인 미디어 정책 변화를 예고하면서 언론사 수장들의 인사도 함께 진행하지 않겠냐는 입장을 보수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임기가 남아있는 상태여서 정권교체에 따라 언론사 수장을 바꾸는 것이 “언론의 독립성 훼손을 넘어선 언론 탄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 나오고 있다.

■ 방송위 흔들기, 언론계 인사에 줄줄이 영향 = 방송위원회(위원장 조창현)는 언론계 가운데 가장 먼저 인사 태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방송통신융합 기구개편 논의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180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측 안대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할 경우 방송위는 현재의 기능에서 축소되거나 극단적으로는 기구가 해체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방송위원과 방송위 직원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이 보다 현실적으로 방송위의 존립을 흔드는 것은 대통령이 선임하는 방송위원들의 임기다. 방송위원 9명 가운데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선임한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이 부분을 들어 “정권교체가 됐으니 대통령 몫의 방송위원을 새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위원들은 3년 임기제로 조창현 위원장을 비롯한 방송위원 9명의 임기는 2009년 7월까지다.

방송위원의 정치적 안배는 산하 기관을 비롯한 방송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방송위는 방송사 인·허가권과 방송정책권은 물론 각 방송사의 사장을 선임하는 KBS 이사 추천권,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권, EBS 이사 임명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위원의 임기 보장은 언론의 독립성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방송계에는 조창현 방송위원장이 임기를 1년 넘게 남겨둔 상태에서 자진 사퇴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심지어 조 위원장이 사퇴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만약 조 위원장이 정권교체를 이유로 자리를 물러난다면 방송법에 명시된 방송위의 독립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된다.

언론계의 한 관계자는 “방송위는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언론인들이 해직을 당하면서도 정권에 맞서 설립한 기구”라며 “방송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방송위원의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최문순 사장 연임 가능할까 = MBC는 최문순 사장의 거취와 MBC 민영화가 최대 관심사다. 최 사장은 2월 말에 임기가 끝난다. 내부에서는 최 사장이 연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도 있지만 한나라당이 MBC 민영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사장 인선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더욱이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하는 시기와 MBC 사장을 선임하는 시기가 맞물려 사장 인선이 더 미뤄질 수 있다.

MBC 사장은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라 방문진 이사들이 선임한다. 현재 방문진 이사들은 임기가 1년 정도 남아있다. 2000년 방송법 개정 이후 권력의 간섭을 줄이기 위해 방송위원회가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게 돼있기 때문에 방문진 이사들은 비교적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다.

하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방송위 인사 태풍에 따라 방문진 이사들의 교체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MBC는 최 사장과 함께 본사 임원진, 19개 지역 MBC 사장, 6개 자회사 사장 등 30명 정도의 임기가 끝난다. MBC 사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지역 MBC와 자회사의 사장이 좌우되기 때문에 임원들의 이동이 대규모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 임기 2년 남은 정연주 사장 거취 어떻게 되나 = 정연주 KBS 사장은 지난해 11월 연임에 성공해 2009년 11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는 상태다. 하지만 보수 언론 등으로부터 가장 유력한 ‘교체 인사’로 지목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 사장을 그동안 ‘코드인사’로 낙점을 찍고 국감 때마다 흠집은 물론 사퇴를 압박해 왔다. 한나라당은 정 사장이 취임한 이후 ‘탄핵방송’을 비롯해 〈미디어포커스〉, 〈인물현대사〉, 〈한국 사회를 말한다〉 등을 “편파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몰아세우며 정 사장을 압박해 왔다.

보수 언론들은 “KBS 사장은 정권 때마다 사장이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사장이 취임하기 전 박권상 전 KBS 사장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뒤 임기를 70여 일 남겨두고 사퇴했다. 홍두표 전 사장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1998년 4월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홍 전 사장은 퇴임 당시 ‘중앙일보 주식 누락 의혹’ 등으로 KBS 안팎으로부터 자진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이런 전례에 따라 보수 언론들은 정 사장을 같은 논리에 대입하고 있다.

정 사장 교체의 논란 뒤에는 ‘수신료 인상안’도 있다. 최근 언론계에서는 한나라당이 ‘수신료 인상’과 ‘정 사장’을 맞바꾸는 안을 제시하지 않겠냐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27년 만에 추진한 수신료 인상안은 2월에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제18대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그럴 경우 KBS는 수신료 인상안을 공청회부터 다시 추진해야 한다. KBS는 거듭된 적자 누적으로 수신료 인상이 절실한 상황이다.

KBS 한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수신료 인상과 사장 인선을 거래 차원으로 보는 차기 정권의 시각은 정말 문제”라고 밝혔다.

KBS 노조와 정 사장의 관계도 정 사장을 압박하는 요소 중 하나다. 현 노조는 반 정연주 노선을 내세우며 그 동안 정 사장을 압박해 왔다. 노조가 앞으로 경영적자 등을 내세워 정 사장 책임론을 전면에 들고 나올 경우 해당 주장이 정치권으로부터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기수 기자 sideway@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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