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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시사고발 프로그램
  • 승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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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보도, 방영금지가처분 등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 마련 시급반론 보도에 대한 일선 PD들의 요구는 한결같다. 취재 도중 반론의 기회를 수차례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은 사람에게 반론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민중앙교회’건을 다룬 MBC 윤길룡 PD도 한달 여의 취재 기간 동안 “공문과 전화, 관계자 접촉, 방문, 집 앞 대기 등 수십 차례의 인터뷰를 거절한 사람이 방송 후엔 ‘우리말을 안 들어줬다’며 법원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반론 보도 결정 - 논란의 소지가 많아 현행 반론 보도는 ‘피해자가 반론 보도 청구권의 행사에 정당한 이익을 갖지 아니하는 경우나 청구된 반론 보도의 내용이 명백히 사실에 반하는 경우 또는 상업적인 광고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이의 방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그러나 이 예외 조항에 “보도 행위자 혹은 언론사가 반론의 기회를 줬음이 명백히 인정됨에도 이를 거부한 경우”를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SBS 남상문 PD는 “취재 과정에서 아무리 반론 기회를 주어도 법원에선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방송되기 며칠 전까지, 공문 몇 차례, 전화 통화 몇 번, 방문 몇 번을 했으면 반론권을 주었다고 인정한다’라는 등의 기준을 명확히 명시해달라. 그럼 어느 PD가 그 기준을 지키지 않겠는가? 정확한 기준이 제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반론 보도는 언론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인(私人)에 대한 중요한 구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현업 PD들에겐 문제의 소지가 충분한 집단에게 반론 기회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국민들이 입는 또다른 피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반론 보도 또한 방송의 파급력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MBC의 한 PD는 “보통 4~5분에 달하는 반론 보도는, 프라임 방송 시간대의 15초 광고료를 기준으로 단순히 수치적으로만 계산한다하더라도 1억 원대의 광고 효과를 주는 꼴이다. 결국 국민의 전파를 사용하면서 그 시간 동안 국민들은 그 만큼의 알권리를 손해보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원이 ‘방송을 너무 모른다’는 지적이다. MBC 김태현 PD는 “반론 보도는 애초에 신문을 기준으로 생겨났다. 동일 지면에 동일 글자 수를 보장하는 것은 신문일 때 가능하다. 신문과 방송의 차이를 인정, ‘방송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5분 여의 반론 보도가 나가는 동안 시청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반론 보도는 그 내용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측에게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법원은 기회제공 여부를 판단할 뿐,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SBS의 한 PD는 “반론 보도 전체 내용 중 일부만 인정하고 상당부분은 기각했다. 그렇다면 기각한 부분은 ‘거짓’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인가”라며 “거짓 입증에 대한 책임을 방송사에게만 묻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만민중앙교회는 총 64건의 반론 보도를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 중 41건에 대해서는 교회측 주장이 정당하지 못하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기각, 23건에 대해서만 반론 보도를 인정했다.방영금지가처분, 사실상 사전 검열반론 보도 외에도 방송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는 항목은 다양한데, 그 가운데 몇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방영금지가처분을 살펴보자. 방영금지가처분에 대한 ‘사전 검열’ 논란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 피해에 대한 민사적 구제수단의 하나인 방영금지가처분 제도는 해당 방영물에 의해 사인(私人)의 법익 침해가 우려될 경우 법원이 관련 방영물을 사전에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처분 결정은 언론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라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JMS’의 경우 방영금지가처분으로 2주가 연기돼 방송됐으며, MBC ‘이재록 목사’건도 방영금지가처분으로 ‘이재록 목사의 성추문 관련 부분’을 빼고 방송됐다. 방영금지가처분은 방송 전에 큐시트나 대본 등 방송 내용을 법원에 제출, 방송 여부를 심사 받는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사전 검열’로 재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언론 보도에 대한 사전 제한이 없는 대신 사후 규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 SBS의 한 PD는 “나가지도 않은 것에 법적 강제를 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명예 훼손,손해배상 청구-감시기능 위축SBS가 최근 <그것이 알고싶다>와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기무사 병역비리 관련 의혹’을 보도한 후 전 기무사 장성 5인이 SBS에 거액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를 법원에 냈다. SBS의 보도는 ‘수사 결과 95년부터 97년 사이에 근무한 기무사 장성 A, B, C 등 3인이 병무 비리 협의가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 시기에 역임한 5인이 장성이 ‘포괄적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건 것이다. 이에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장경수 PD는 “권력이 있는 계층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사건이 나오면 명예훼손이라는 ‘뽑기 쉬운 칼’을 들고 나온다. 이렇듯 기득권의 이익에 법적 제도가 악용된다면 결국 현업 제작자들은 움츠리게 되고 감시기능도 위축될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이렇게 되면 비리를 만들어내는 ‘공인(公人)’들을 감시하고 비판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보도 이후 취재에 협조한 수사 관계자들에 대한 기무사의 감시나 압력이 계속되는 것 또한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장PD는 “공인은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명예훼손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선 취재원을 드러내야 하는 부담도 고스란히 제작진에게 돌아온다. 의사나 변호사에게 뿐만 아니라 PD나 기자들에게도 취재원 보호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언론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세계에서 유례 찾기 힘든 결정이 많아프랑스에서 제일 먼저 명문화된 반론권의 의미는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리와 오보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프랑스 방송의 경우, 반론권이 청구되면, 정정 보도나 손해배상은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이를 수용한 독일은 반론권의 의미를 축소, 사실 보도에 대한 정정권만을 인정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우리 나라의 반론 보도 청구에 해당되는 제도가 원칙적으로 없다. 언론기관의 면책 범위나 명예훼손에 대한 입증 책임, 손해배상의 액수 등의 측면을 고려해 달리 운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수정헌법 1조인 언론의 자유가 최대로 보장이 되기 때문에 언론기관은 법적, 제도적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만 지면 된다는 입장이다. 대신 개인적 법익 침해의 경우 엄격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법률이 발달했다. 일본은 명예훼손에 대한 사과방송을 인정하는 만큼 소송 액수는 약소하다. 우리 나라 방송에 대한 규제 제도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언론기관의 면책 범위는 좁고 손해배상 액수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특히 반론 보도 청구가 일반 개인이기보다는 대부분 권력집단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과 그들이 취재 당시에는 반론을 끝까지 거부한다는 점이 문제시되고 있다. 영미계 국가에서 언론사에 면책을 해주는 ‘공인(public figure)이론’이 폭넓게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반론을 거부한 이들의 사후적 반론 보도 청구는 현재로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언론에 의해 피해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마련된 이러한 법적 장치들은 그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 기득권이나 그 잘못이 ‘명백한’ 집단에게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 현업인들은 방송금지가처분을 ‘이유 없음’으로 기각시킨 프로그램에 대해 반론 보도를 인정하는 그 판단 기준의 모호함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형상 변호사는 반론권 제도가 남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이 제도에 ‘균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언론사가 공익적 관점에서 선의로 보도하면서 보도 대상자에게 반론 기회를 사전에 충분히 제공했음에도 그 상대방이 스스로 회피했을 경우가 반론권 절차에서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만민교회 건과 관련, “9시 정규뉴스 첫머리에 3-4분간의 반론 분량을 법적으로 강요하는 건 균형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표명했다.법적 선결 조건이 마련되어야반론 보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 실효성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한다. 과 갤럽이 공동 조사한 ‘반론 보도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만민중앙교회측의 반론 보도문을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PD수첩・뉴스데스크 보도내용 신뢰 93.3%, 잘 모르겠다 6.7%, 만민중앙교회측 반론 보도 신뢰 0% - 반론 보도를 본 전국 성인 344명 조사, 표본오차 ±0.05).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낭비되는 전파’로 피해보는 것은 결국 시청자들이다.물론 이러한 소송들을 줄이기 위해 제작진들의 취재 관행이나 기술적인 ‘세련됨’도 필요하다. 때문에 현재 각 사 시사 프로그램에는 각각 고문변호사를 두고 법률적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SBS는 ‘JMS사건’이 후 자문변호사를 두었으며, KBS도 최근 잇따른 소송으로 보도와 제작본부별로 십여 명 안팎의 고문변호사를 보강했다. 그러나 법원의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고 반론 보도 예외조항의 확대나 증언거부권 및 취재원 보호 조항마련과 함께 방송관련 전담 재판부 신설 또한 언론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선결 조건임에 틀림이 없다. 이대연 기자 - 박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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