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온 편지 -서울에서 띄우는 마지막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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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과 고독의 땅 라다크의 10년전 기억
  • 승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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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나의 기억 저편에는 라다크가 자리잡고 있다. 청년 시절에 보았던 프랑스 사진가가 촬영한 몇 장의 라다ㅁ하는 사이 라다크는 점차 퇴색되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 7월 어느 햇살이 뜨거웠던 날, 마음에 두고 있었던 라다크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을 지닌 내가 유라이어 힙의 노래 ‘줄라이 모닝’을 들으면서 라다크의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서양 문명의 오염이 노도와 같이 라다크의 땅에도 밀어닥친 모습을 보았다. 지금도 레 공항에 내릴 때 가쁜 숨소리가 내 몸 속에서 들렸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지역인 쟘 캐시미르주에 편입된 라다크는 마치 인종 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티베트계 민족의 라다키족, 캐시미르 주민, 파키스탄인, 중국 티베트에서 망명해 온 티베트 본토인들, 그리고 미국 유럽의 히피 같은 여행객들. 그 속에 아무 것에도 소속되지 못한 나 같은 사람까지 뒤섞인 라다크의 중심지, 레의 모습은 50, 60년대 내가 자라던 이태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라다크는 동서 7천km의 방대한 히말라야 산맥과 북방에 우뚝 솟은 카라코롬 산맥 사이의 산지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라’는 ‘고개’, ‘다크’는 ‘넘어’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최근세까지 침범을 당하지 않았다. 19세기 인도 펀자프의 도그라 군대에 의해 라다크 왕국이 정복돼 폐허가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레의 배후 바위산인 나무가르 테모에 세워진 9층의 마른 벽돌로 건축된 왕궁은 16세기 라다크 왕국 전성기의 왕 센게 나무가르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인종 분쟁 지역이 되어버렸고 인도 힌두교도와 피키스탄 이슬람교도간의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는 땅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실상 국경이 스리나가르와 레 사이의 도로 바로 북쪽까지 임박했으며 동쪽으로는 인도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중국 점령하의 악사이 친 지구가 있는 탓이다. 겨울철에는 영하 30도가 되는 동토의 땅으로 폭설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면 수백 명씩 사상자가 생기는 고도의 땅. 인도 델리에서 버스로 5일이 걸리는 이곳 라다크는 그래서 여행자에게서는 마지막으로 가봐야 할 땅이라 할 수 있다.인도가 영혼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는 곳이라면 이곳 히말라야는 그 영혼을 추스르는 곳이 아닐까? 6월, 7월의 한여름에도 산에는 만년빙이 보이고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코발트색의 하늘이 있다. 그 하늘 아래에서 느껴지는 순백의 영혼을 나는 느꼈는가? 행복했던가? 나는 거기서 무엇보다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를 듣고 싶었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 대자연 앞에서 신의 소리와 자연의 오묘한 음향을 듣는다고 하고, 수행자들은 히말라야에서 들리는 우주의 모음(母音)인 ‘옴-옴-’을 느낀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저 ‘사랑한 후에’를 듣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보러 방황하는가? 무엇을 찾으러 쏘다니는가? 고즈넉한 암자에서 평생 수행하시는 노스님의 법어가 생각 났다. “너는 오지도 않았었는데 어찌 그리 갈 것을 걱정하고 있냐”고. 그래도 나는 라다크에서 들개처럼 쏘아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사추의 천막에서 신열을 앓으며 후회했다. 여기를 오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망칠 것을 뻔히 알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왔는가? 이곳에 와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가? 달라이라마 14세가 집전하는 카라차크라 행사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팡으로 잠을 설치면서 떠났다. 계속되는 코발트색의 하늘. 만년설의 산들. 나무 한 그루도 없는 황량한 바위산, 휑하니 아무 것도 없는 달의 표면 같은 그 풍광에 취하면서 나는 며칠 전 만났던 들개 생각이 난다. 어째서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고 너는 들개로 태어났고 누구는 이름 모를 들꽃으로 혹은 신(神)으로 태어났는가?운전 기사 카르마는 항상 싱글거리며 산맥의 외길을 굽이굽이 달리며 운전 자랑을 한다. 깎아진 절벽. 그 밑의 넘실거리는 흙탕물. 아아 그래 나는 저 흙탕물 속에서 태어났고 그 흙탕물을 먹고 자라고 또한 저 흙탕물 속에서 살아야 할 운명. 그래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서울-모든 것이 있는 풍족한 곳 그러나 아무 것도 끝내는 손에 쥘 수 없는 곳. 라다크-아무 것도 없지만 마음의 풍족함을 얻을 수 있는 곳. 그것만 생각하자! 그것이 라다크의 모습이다. 아무 것 없으면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려는 라다크인 속에서 나는 행복감에 도취했다. 그리고 가증스런 나의 모습에 통곡을 했다. 그들과 텐트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했으나 그들을 닮아가지 못한 나에게 통곡을 했다. 그대는 아는가? 여행의 마지막은 검게 타 그을린 모습과 여행용 가방에 듬뿍 담긴 심한 우울증이라는 것을. 나는 다짐했다. 내 기억 저편의 라다크를 언젠가 다시 찾아갈 것을. 해발 4천 미터의 고산병과 두통, 살을 도려내는 듯한 추위에서 무엇보다도 나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떠난다. 그곳 히말라야로.
|contsmark1|히말라야를 들어가기 전 1999년 10월 25일 서울 불우재(不憂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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