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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때깔은 아주 영화적이다. 실제로 제작현장을 들여다보면 영화와 방송의 완전한 합병이 이루어진지 이미 오래다. 1시간짜리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어느 한 장면도 긴장을 풀고 찍은 샷이 없다.

 

선택적인 조명과 섬세한 색깔 처리 그리고 카메라와 배우들의 드라마틱한 움직임들은 입체감이 살아있고 깊이 있는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영상미학 차원에서의 미국 TV의 변화는 고화질 텔레비전 시대가 오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 소위 때깔의 명품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 ABC 방송의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는 아주 철저한 대사 위주의 드라마다. 클로즈업 샷들을 많이 쓰게 돼서 쉽게 밋밋한 그림들이 나오기 쉽다. 하지만 망원렌즈 즉 롱 렌즈를 사용해서 피사체 심도를 얕게 찍어서 배우들의 배경에 많게는 세 개 이상의 층을 흐릿하게 구축한다. 또한 초점 거리가 고정돼 있는 프라임 렌즈 (Prime Lens)를 사용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 한다.


 

 

 

 

 

 

 

 

 

 

 

 

 

 

 

 

 

 

▲ '스튜디오 60' ⓒ 캐치온

물론 35㎜ 영화 프린트를 사용하고 카메라 한 대를 사용하는 영화식 제작을 한다. 인기를 끌고 있는 <영웅들 (Heroes)>, <스튜디오 60>, 등도 모두 영화 필름으로 제작되고 있다. 평균적으로 3대 정도의 35㎜ 영화 카메라를 사용하고 <스튜디오 60>의 경우엔 4대의 비디오카메라까지 추가돼 드라마 속의 TV오락 프로그램 촬영용으로 사용된다.

 

평균 제작 기간은 한 회당 열흘 정도 걸리고 하루에 딱 10시간씩 소요된다. 아주 빡빡한 일정이지만 무대, 사운드, 조명, 시네마토그래프, 카메라 움직임 등 모든 분야를 꼼꼼히 챙겨서 찍는다. 시청률이 저조해져도 비디오카메라로 강등되는 경우는 없다. 기껏해야 35㎜에서 16㎜ 카메라로 전환되는 정도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더 이상 방송과나 영화과의 구분이 무색한 현실이다. 드라마, 뮤직비디오, 광고,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영상미학의 모든 요소들을 이해해야 하고 영화적 촬영기법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현재 미국 방송물의 90%가 영화 제작 기법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위 ‘스타일’을 강조하는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30년대 말부터 1950년대 말까지 텔레비전은 비디오카메라 기술이 부족해서 영화로 시작한 매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다시 영화필름을 쓰고 고화질로 가는가? 이유는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과 80년대 중반 이후의 유선방송의 약진이 초래한 치열한 시장 경쟁이 방송 프로그램들의 고품격화를 통한 차별화를 요구해 왔다.


HBO의 소프라노(Soprano) 성공 사례는 이제 새로운 뉴스가 아닌지 오래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무대, 조명, 그리고 화면의 전반적인 때깔을 좌우해 각 프로그램의 프로덕션 스타일을 구축한다.

 

포장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패가 달려 있고 35㎜ 필름에 찍었을 때 방송 이후 다변화된 판매 창구들을 활용해서 제작비 환수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경쟁은 치열하고 영화방식의 제작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제작비가 필요한 현실에서 결국은 해외 시장의 판로 구축은 중요한 현실이다.


할리우드가 해오던 ‘선판매 (Pre-Sale)’의 개념이 방송계에도 도래하고 있고 이번 한미FTA는 미국에게 한국의 호주머니를 일단 열어준 결과가 된 것이다. 한국영화계도 휘청거리는 현실에서 드라마 등 전반적인 방송 프로그램들이 미국산 때깔과 진검승부가 가능할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한국의 현실에서 과연 '주몽' 같은 드라마를 만들 때 모든 에피소드들의 모든 장면을 긴장을 안 풀고 제작할 수 있을까? 이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중심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만하는 무서운 미래가 바로 앞에 있다.

 

샌프란시스코 = 허철 통신원 /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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