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와 비교되는 BBC의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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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와 비교되는 BBC의 보도
  • 영국=채석진 통신원
  • 승인 2007.09.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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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신정아 스캔들’로 들썩이고 있다. 신 씨의 오피스텔 컴퓨터 하드에서 복구해 낸 ‘핑크빛’ 메일을 근거로 시작된 이 스캔들은, 며칠 전 <문화일보>가 신 씨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누드 사진을 1면에 싣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드 사진 보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자, <문화일보>는 익명의 미술계 인사의 입을 빌어 ‘누드사진이 신 씨가 고위급 인사들을 상대로 성로비를 한 물증’이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실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언론들도 처음부터 ‘신 씨와 변 씨 간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확고한 틀로 이 사건을 몰아온 점에서는 <문화일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차피 사건보도의 중심이 공직자의 비리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어떤 관계였느냐를 파헤치는 것인 상황에서, <문화일보>는 신 씨의 ‘상처 하나 없는’ 알몸 사진이 둘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상품으로서 그녀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지독히 남성 중심적인 한국 언론 문화를 고려해보면 자연스러운, 하지만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다.

<문화일보>가 누드 사진을 1면에 내보낸 날, 영국 BBC방송은 유명한 코미디 배우 크리스 랭햄(Chris Langham)이 인터넷을 통해 아동포르노를 본 죄로 5개월 수감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영국의 유명한 코미디 배우 크리스 랭햄 사건을 보도한 영국 BBC. '배우 성가해자로 법정을 떠나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고 있다.  ⓒBBC

지난해 영국TV 영화아카데미(Bafta) 코미디 드라마 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한 랭햄은, 지난 2005년 말 경찰이 그의 집에 있는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아동포르노 파일을 발견하면서 체포되었다. 그 파일들은 8세에서 13세 사이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것으로, 이 사건의 논란은 그가 사춘기 이전의 아동에게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성도착자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가 본 동영상 파일들은 의심의 여지없는, 이 사건의 ‘결정적 증거’로 보인다.

하지만 BBC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그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이미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아동포르노 시청 이외의 랭햄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나 인신 공격적인 언급도 없었다. “랭햄의 품위가 땅에 떨어졌다”, “랭햄, 아동포르노로 유죄판결받다”, “배우, 성가해자로 법정을 떠나다” 등과 같은 기사제목에도 잘 드러나듯, 사실 전달 중심의 차분한 보도였다.

<문화일보>의 논리로 보면, BBC의 이러한 보도 태도는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한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BBC 뉴스는 자극적인 아동포르노 이미지나 사생활 보도 대신, ‘아동 포르노를 시청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쪽을 택했다. “아동포르노는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실제 상황을 찍은 것이므로, 아동포르노를 즐기는 행위 자체가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를 계속하게 하는 수요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BBC는 집안에서의 아동 포르노 시청이라는 대단히 사적인 활동이 타인의 고통을 재생산하는 폭력임을 알리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언론이 ‘핑크빛 메일’과 ‘누드사진’을 가지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전달하고자 한 바는 무엇인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남성들에게 증거를 없앨 때는 하드까지 말끔히 지우고, 이메일은 추적이 어려운 외국 메일을 쓰라는 정보? 남성의 후원 없이는 여자 혼자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현실 고발? 아님 사회에서 잘나가며 “복수의 남자들과 애인으로 사귀”는 여성들은 결국 사냥감이 될 것이라는 경고인가?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이 헤쳐 나가기 어려운 환경이다.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성적인 거래를 요구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 언론이 고민해야할 것은 이런 문화 속에서 ‘어떻게 성적 약자를 보호할 것인가’이지,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녀 사냥’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영국=채석진 통신원 / 서섹스 대학 미디어문화연구 전공 박사과정, stonyji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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