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시청 늘어 편성도 예전같지 않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의 에미상을 선정?시상하는 미국 텔레비전 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Television Arts & Sciences Foundation)에서는 매년 미국에서 방송을 공부하는 교수들을 초대해 방송 제작 현장을 연수시키는 프로그램을 주관한다.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열린 ‘2007 Faculty Seminar’에 참석한 이헌율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의 세미나 참관기를 4회 연속으로 싣는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미국 작가들의 막강한 힘
2.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프로그램 제작
3. 시청률, 돈, 그리고 편성
4. 뉴미디어와 새로운 유통망 

네명의 도박꾼이 한 테이諮?앉아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그 이야기를 얼마쯤이나 믿을 수 있을까?
텔레비전 아카데미(에미) 연수 중에 많은 관심을 끌었던 세션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4대 네트워크의 편성담당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요즘 편성 전략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다. 미리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하고, 사진이나 녹음기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 채 조금은 긴장감이 도는 CBS의 조그만 지하 시사실에서 편성담당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앞에서 던진 질문처럼 이들이 모두 패널토론을 끝내고 다시 시청률 전쟁으로 돌아가 머리를 맞대고 싸울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말한 것에 어느 정도의 과장과 연기가 섞여있다고 봐야한다. 그걸 감안하고 보면, 편성 쪽에서 보는 최근 미국 텔레비전의 편성 경향은 대강 이렇다.

가장 큰 변화는 편성의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세 개의 네트워크밖에 없고, 다른 미디어가 그리 많지 않던 시대에는 시청자들에게 선택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편성변화에 따라 시청자의 생활리듬도 바뀌고, 시청률도 좌우됐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이나 디지털비디오레코더인 티보(TiVo) 등으로 인해서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어제 놓친 드라마도 오늘이면 인터넷으로 고화질로 볼 수 있고, 티보가 있는 사람들은 한 시즌 내내 녹화만 해놓았다가 한꺼번에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네트워크가 예전과는 달리 미디어 거대기업에 속하다보니 편성의 의미는 더 약해졌다. 당장 오늘 방송에 시청률이 오르지 않더라도 거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미디어에서 오는 이익이 더 크면 괜찮다는 입장이다. 가장 좋은 예가 <패밀리 가이(Family Guy)>다. 몇 년 전 폭스TV는 시청률 저조로 <패밀리 가이>를 종방했지만, 이 프로그램의 DVD 판매가 좋은 성적을 보이자 다시 살렸다. 네트워크안에서 시청률만큼이나 이후에 어떻게 팔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결국 네트워크의 프로그램 편성은 그만큼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참여 패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편성의 중요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지 처음 시청자의 시선을 끄는 텔레비전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변화를 기반으로 해서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요즘의 편성경향은 무엇일까?

우선 기존의 요일별 편성이 더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을 잡기가 힘드니 한번 잡은 시청자라도 몇 시간씩 잡아두자는 것이다. 그 성공적인 사례가 CBS의 월요일 밤 시트콤이나 NBC의 <로 앤 올더(Law & Order)>시리즈 연속방송이다.

다음은 스포츠와 같은 라이브행사의 중요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이 또한 인터넷, TiVo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일반 프로그램과 달리 이런 야구, 미식축구와 같은 스포츠나 시상식의 경우에는 그때그때 소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시청률의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슈퍼볼 같은 이벤트에 미국 거리가 한산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 번째로는 리얼리티 쇼의 인기를 들 수 있다. 참여 패널들 모두가 적어도 당분간은 리얼리티 쇼가 계속 드라마나 다른 장르에 비해 우세할 것이라고 점치고 있었다. 일단 작가들의 파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작가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리얼리티 쇼가 더 많이 편성표를 차지할 것이라는 점이 단기적인 이유다.

장기적인 이유로는 제작비가 싼 대신에 스포츠행사와 같은 시의성을 가지고 있어서 시청자들이 꾸준히 에피소드를 따라 보기 때문에 충실한 시청자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이유는 방송경험에서 나온 것인데, 미국 텔레비전에서 한 장르가 부침을 하려면 적어도 6-7년은 걸렸는데, 본격적으로 리얼리티 쇼가 정상에 오른지는 길어봐야 3년이기에 아직 시청자들이 싫증을 내기에는 시간이 좀 남았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그들이 동의한 것이, 사실은 가장 거짓말로 의심이 갔는데, 그 요점은 전통적인 편성기법들, 예를 들면 해머킹(Hammocking. 인기 프로그램 사이에 신규 프로그램을 끼워넣는 편성 전략)이나 텐트폴 전략(인기 프로그램을 프로그램 사이에 편성해 다른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에 영향을 주려는 전략) 같은 것들이 아직도 먹히고 있지만, 그 대신에 상대방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편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NBC의 한 프로그램이 4번씩이나 자리를 옮긴 것이라든가 <아메리칸 아이돌>이 할 때는 거의 다른 네트워크는 재방이 아니면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들로 편성되었다는 것을 봤을 때는 그냥 경쟁자들끼리 하는 겉치레 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논거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먼저 5월에 공개하는 가을 편성표가 별의미가 없는 것이 시청률에 따라서 오르고 내리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요즘은 지상파에서 케이블채널로 프로그램이 재방되는 간격이 짧아지고, 또 케이블에서의 인기 프로그램들도 있기 때문에 대응편성이라는 것이 너무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즉 간단히 미국 텔레비전 편성의 추이를 이야기한다면, 네트워크들 안에서의 관행들은 그리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전체 사회 흐름 속에서 바뀌는 시청자의 생활 패턴이 편성의 중요성을 점점 약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덧붙인다면, 이들 중의 나이가 많은 두 명은 제작자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젊은 두 명은 통계나 컴퓨터 쪽 전문가라는 것이다. 나중에 만난 폭스TV의 프로그램 개발 부사장이 회계사 출신인 것까지 감안한다면, 미국의 텔레비전이 가는 방향을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텔레비전 편성이 점점 더 감(感)에서 과학으로 가고 있고, 또 그래서 실험에서 오류로 판정나면 가차 없이 폐기된다는 것이다. 결국 점점 좁아지는 점유율을 가지고 더 날카로운 칼이 되는 시청률 조사를 잣대로 편성표를 마이크로 매니지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 이헌율 통신원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nomedia@gmai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