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으로 설자리 잃어버린 미국의 지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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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들어서자마자,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에서 거의 동시에 신문-방송 겸업이 미디어업계의 주요 사안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말 연방방송위원회(FCC)가 겸업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2003년 이후 조용했던 미디어 산업의 집중에 대한 논의를 다시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번 허용은 상하원 의원들이 반대 입법을 예고하고 있고, 또 사회단체에서는 법정으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면, 2003년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있어 아직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미디어 시장 전반의 탈규제현상을 마감할 수도 있어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 뉴욕타임즈 12월 19일자 기사

일단 이 규제 완화의 주요 사항 네 가지를 보자.
△대상은 미국 내 최대 20개 방송지역을 기준으로 한다. △겸영의 허가는 한 개의 신문사와 한 개의 텔레비전 방송사 또는 한 개의 라디오 방송사로 한다.△만약 텔레비전 방송사가 겸영의 대상인 경우, 그 지역 안에 적어도 8개의 다른 미디어(신문사와 방송사)가 존재해야 한다. △텔레비전 방송사가 겸영의 대상인 경우, 이 방송사는 상위 4대 방송사 안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위 네 가지 조항을 신문-방송 겸영 허용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논란이 많은 예외 조항을 따로 두었다. 첫 번째로 신문사나 방송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경영난이란, 방송사나 신문사가 적어도 이전 4개월간 방송이나 발행을 중단했거나 파산절차를 밟고 있는 경우를 뜻한다.

또한 △ 방송사가 4%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지난 3년간 계속 적자였거나 △겸영이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거나 △겸영자가 그 시장에서 유일하게 이 신문사나 방송사를 운영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일 경우에만 적용한다.

두 번째로, 겸영으로 인하여 새로운 지역 뉴스가 시작될 수 있을 때는 허가를 할 수가 있다. 자세히 말하면, 겸영으로 인해 이전에 없었던 지역뉴스를 주당 7시간 이상 방송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연방방송위원회 위원들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공화당과 민주당 측 3:2로 찬반을 나눴다. 그들이 낸 의견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96년 방송통신법 개정 이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디어 기업의 독과점을 둘러싸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논쟁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신문-방송이 현 매체환경에서 갖는 위상이다. 공화당 측 위원들(이하 공화당)은 인터넷이나 케이블 등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신문-방송의 겸영이 지역 여론을 독점할 힘이 없어져 규제 근거가 없어졌다고 본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 위원들(이하 민주당)은 여전히 신문-방송은 중요하며, 미국 국민의 89%가 지역뉴스를 신문-방송을 통해서 받는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겸영 허용은 위험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는 신문 산업이 위험에 처해있고, 이를 구하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를 구하는 기본이라는 것이 공화당 측 주장인 반면, 신문 산업 위기론은 신문사의 엄살일 뿐이고, 신문사의 폐업이 많은 것은 오히려 규제 완화로 미디어 기업들이 신문사들을 통폐합한 결과라는 것이 민주당 측 주장이다. 그리고 위기의 신문을 구하기 위해 방송을 겸영하는 것은 이미 뉴미디어의 위협을 받고 있는 방송에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미디어 산업 전반에 대한 시각 차이와 함께 가장 직접적인 논쟁점은 20개 시장과 예외조항에 관한 것이다. 위원장을 비롯한 공화당 측은 규제 철폐를 시험하기 위해 2003년과는 달리 20대 시장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라고 항변을 하며, 사회단체의 반대를 피해가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20개 시장에는 벌써 다양한 언론매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4위 이하의 방송사와 신문사의 합병은 별로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민주당 측은 이 20대 시장이 미국 미디어 시장의 43%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므로 미국 여론에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므로 20개 시장은 결코 작은 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 4위 이하 라고 하지만, 예외조항들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미디어기업들이 이런 규제를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반대한다. 그 예로 43건의 예외 허용 건이 벌써 발생했다면서, 이번 겸영허용은 말이 조건부지, 사실은 전면 허용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이런 미국에서의 방송 신문 겸영에 대한 논의는 한국의 언론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의 다양한 언로 확보가 다양한 뉴미디어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의 초점이다. 신문의 위기와 지역 뉴스의 감소라는 미국 내 미디어 산업의 변화는 뉴미디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선례에 비추어 보면, 합병이 다양성을 보장해준 경우는 드물다. 특히 라디오 방송의 경우에는 합병으로 지역의 문화나 뉴스는 설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으로 판명이 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와 같은 사례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무리가 있다. 일단 미국보다 더 중앙 집중의 미디어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이런 지역 중심의 논의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다. 그리고 한국의 방송이 얼마나 다양한 시선들을 포함하려고 했는가 역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 이헌율 통신원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no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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