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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언론인 당신 차례

 

 경칩치고는 매서운 추위다. 지난 71년 이후 36년 만에 경칩 날씨로는 가장 낮은 수은주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날에, 게다가 정오가 되기도 전에 한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사인 KBS와 MBC 앞은 날씨에 아랑 곳 없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미 FTA 때문이다.

 ‘한미FTA 저지 시청각·미디어 분야 공동대책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는 어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미FTA 반대 행동’의 첫 번째 행사로 KBS와 MBC 앞에서 한미FTA 반대 연속 연설 퍼포먼스를 가졌다.

 

 문화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 공대위에 함께하는 단체 대표 20여 명이 매서운 날씨에 방송사 앞까지 직접 나서서 한미 FTA의 부당함과 사실보도, 심층보도를 요구했다.

 

 한미FTA에 대한 부당성은 이미 이들의 기자회견과 성명서, 집회, 그리고 이들을 취재한 일부 언론매체를 통해서 전달된 바 있다. 우선 방송분야만 보면, 국내산 프로그램 편성쿼터 완화, VOD 개방, 방송광고공사 해체, CNN의 한국어 더빙 허용, PP의 소유지분 제한 완화 등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인 사람이라면 이제 줄줄 욀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이 가져올 결과는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다. 방송을 미국 자본이 지배하는 것이다. 미국의 논리가 국민여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큐칼럼’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한미FTA는 우리의 주권과 영혼을 파는 것이다.

 

 너무 고상한 이야기라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해 보자.


 CNN이 한국어로 더빙되어 방송된다면, 우선 뉴스 전문 채널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 여파는 지상파라고 비켜가지 않을 것이다. 보도부문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CNN이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시장지배력이 큰 보수신문들이 거기에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신문사들은 신문사의 방송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현행 방송법을 피해 뉴스 전문 채널을 갖게 되는 셈이다. 민주주의의 요체이자 헌법적 가치인 여론의 다양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편성쿼터의 조정은 국산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을 현행 80%(교육방송은 70%)에서 50%까지 낮추라는 것이다. 지금보다 20~30%만큼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의 잉여인력이 발생할 것이다. 대규모 구조조정,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품질 좋은 할리우드의 프로그램을 값싸게 구입해 방영하는 것이 방송사의 경영적 측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단견이다. 방송사에 제작능력이 없어서 미국 프로그램 의존도가 높아질 때도 할리우드의 장사꾼들이 싼 값에 공급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FTA 반대 행동에 나선 이들이 답답해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언론인이라면 우리 사회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고 그것에 대한 판단 자료들을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인의 당연한 사명감이 왜 실종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 생존권을 위협하는 상황이 눈앞에 닥치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무관심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한 참여자는 섭섭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을 때, 그때 또 ‘국민 여러분…’ 하면서 도움을 청하지 말라.”

 이제 언론인 스스로 나서야 한다. 실종된 사명감을 다시 찾아야 한다. 싸우고 투쟁하라는 것이 아니다. 반대하라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보도하라는 것이다. 협상 대표들의 번지르르한 브리핑만을 보도하지 말고 도대체 협상장에서 무엇이 어떻게 논의되었는가를 말하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를 물으라는 것이다.

 한 역사학자는 한미FTA를 언급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역사를 다시금 ‘낯선 식민지’로 이끌어간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노대통령이 과거 청산의 법정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대로라면 그는 그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대로라면 언론도 그 법정의 피고석에 같이 서게 될 것이다.

 3월 8일에 시작되는 8차 협상 기간 동안 정말 제대로 된 보도가 이루어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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