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드네와 다이달로스
상태바
아리아드네와 다이달로스
  • PD저널
  • 승인 2007.03.21 0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크레타의 폭군 미노스Minos 는 9년마다 한 번씩 아테네의 소년소녀 7명씩을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os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소년소녀들은 두 가지의 위험에 직면해야 했다. 첫째는 미노스의 아들인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us 였고 둘째는 미궁 그 자체였다. 미노타우로스와 맞설 힘을 가진 용사는 없었다. 용케 괴물의 눈을 피해 숨는다 해도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미로의 미궁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테세우스Theseus 는 두 가지의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괴물을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온 것이다.

전설은 이 불세출의 영웅보다는 아리아드네Ariadne 라는 아테네의 소녀를 더 주목한다.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그녀가 직접 자은 붉은 양털 실타래를 쥐어주었다. 테세우스는 입구에서부터 풀어놓은 아리아드네의 실 덕분에 미로를 탈출할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의 실 Ariadne's thread ’, 이 말은 풀기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왜 아리아드네 전에는 실을 떠올린 사람이 없었을까? 알고 나면 좀 시시해지기도 한다. 참된 지혜는 이처럼 복잡하지 않다. 많은 경우 난제를 푸는 지혜는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라비린토스는 출발점의 망각이며, 아리아드네의 실은 출발점의 기억이다.

경인방송 허가 추천 문제로 시끄럽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난마처럼 뒤얽혀 있다. 라비린토스 속에 던져진 아테네 소년 같은 심정일 방송위원들의 고민을 이해할 만하다.

경인방송의 대주주인 백성학 회장의 스파이 의혹과 관련해 방송위원회 내부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검찰이나 방송위원회가 아닌 다른 차원의 민간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런 이야기까지 나왔겠는가? 그러나 진상조사는 또 하나의 미로를 더할 가능성이 더 크다. 누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며, 누가 그 위원회에 조사 기능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가? 또 조사 결과에 누가 승복할 것인가?

미로로부터 빠져나오는 출구는 입구와 동일하다. 경인 지역민들의 시청주권이라는 출발점으로 돌아가면 된다. 도달해야 할 목적지 역시 시청주권이다. 방송위원회는 방송사업자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정되었다면 그 다음 단계로 허가 추천하는 행정 절차를 진행하라는 것이 법이 정한 바이다.

백 회장의 성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듯하다. 지나치게 친미적이고 사상적으로 극우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의’ 방송사는 틀림없이 여론을 한쪽으로 이끌어 민주주의를 해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분명 우려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출발점으로 돌아가자.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나와 다른 견해도 용인하는 것 아닌가. 나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유보하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라는 출발점에 대한 올바른 기억이 아니다. 우려만으로 허가 추천을 지연시키는 것은 일제의 예비검속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이 문제를 미로로 만드는 핵심이 사실은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징후들이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해법은 결코 찾을 수 없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스스로를 가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허가 추천 후 방송사업자가 문제가 있으면 방송위원회는 재허가 취소와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조건부 허가 추천도 한 방안이다. 의혹이 사실로 들어날 경우, 사업권을 반납하도록 하는 것이다.

라비린토스 이야기에는 아이러니의 인물이 등장한다. 미로의 설계자 다이달루스Daedalus 이다. 미노스의 미움을 사 미궁에 갇힌 다이달루스는 자신이 만든 미로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에게 아리아드네만큼의 지혜는 없다. 하늘로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날개를 만들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아들 이카루스Icarus 를 지중해에 빠뜨려 죽이고 만다.

아리아드네가 되느냐, 다이달루스가 되느냐, 방송위원회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