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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노무현 대통령은 격한 말들을 쏟아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대선주자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 대해 ‘보따리장사’라고 비난했고, KBS를 겨냥해 “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것이 언론자유, 독립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정부가 언론의 독립성을 침해하려 한 적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인들이 정직하지 않은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늘 품위있는 말을 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겠다. 문제는 노대통령의 발언에 담겨 있는 비대칭성이다. 한 정치인은 노대통령이 귀를 닫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남을 비판하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은 좀처럼 수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진정성은 늘 의심스럽지만 자신의 진정성은 의심받는 것 자체가 모독이다.

이날 대통령이 한 발언은 한 가지 열쇠말로 포괄될 수 있다. ‘정직’이라는 말이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정직’이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왕에 대통령이 던진 열쇠말을 존중해 이야기해 보자.

먼저 ‘보따리장수’론. 노대통령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3당 합당 때 합당의 대열에 끼어들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편한 길을 거부함으로써 소신과 원칙을 지켰다. ‘보따리장수’ 짓은 안 했다. 그래서 ‘바보’라는 사랑스러운 애칭도 얻었다. 누가 뭐라 해도 평가받을 만하다. 그런데 보따리장수라는 말에는 주력 상품이 없이 이것저것 되는 대로 팔고 상황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말을 바꾼다는 의미도 있다. 대통령이 펼쳐 보인 보따리들은 어떤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당을 깨고 새 당을 만든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후보 시절의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와 대통령이 되어서 ‘미국이 아니었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어떤가? 국가보안법, 대연정, 최근의 개헌 보따리는 어떤가? 어떤 보따리에 대통령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것인가?

 

언론의 자유, 방송의 독립. 대통령은 “정부가 언론의 독립성을 침해하려 한 적이 있었는가” 하고 물었다.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국회에 입법 발의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방송의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법률이다. 5인의 방통위원 모두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정파성을 배제하기 위해서’가 명분이다. 내가 하면 침해가 아니고 남이 하면 침해라는 비대칭적 사고가 아니면 이런 발상이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방통위원을 차기 정권에서 임명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설마 그렇게 함으로써 정파성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5공화국 시절의 언론통제정책도 ‘건전한 언론의 육성’이라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정책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적으로 가져올 결과이다. 이렇게 묻기만 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유신 시절에, 5공화국 시절에 이런 법률이 있었다면 뭐라 말할 것인가?” 그 위험성을 모를 리 없는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려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직한 것인가?


한미FTA와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은 이렇다. “이것을(관세문제를) 전부 무시하고, 딱 한마디로 FTA하면 광우병 소 들어온다 그럽니다…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인들이 정직하지 않은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앞서는 대통령의 말마따나 쇠고기 수입은 한미FTA와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 협상단은 쇠고기 문제 해결없이는 한미FTA는 없다고 ‘공갈협박’하고 우리 협상단은 끌려간다.


정직한 대통령이라면 우리 협상단에게 “쇠고기 문제를 한미FTA와 연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또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광우병 소를 문제삼긴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이 그것만을 문제삼는다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정직한 것인가? 그보다 먼저,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국회에조차 공개하지 않는 정부를 정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한 정치인은 노대통령이 정직하지 않다고 한 것에 대해 “막가자는 것”이라며 “토론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토론은 우선 대칭적 사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누군들 거짓말쟁이와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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