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오만한 언론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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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오만한 언론 정책
  • PD저널
  • 승인 2007.05.2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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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무회의는 22일, 정부의 대언론 서비스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정부 표현대로라면 후진적인 제도를 ‘선진화’시켰다.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다. 그 골자는 합동브리핑센터의 설치와 전자브리핑시스템의 도입이다.

 

어느 언론사에나 공정하고 평등하게, 또 기자들이 애써서 취재원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뉴스거리를 잘 정리해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친절한 정부의 새 제도에 언론단체들은 마구 화를 냈다. ‘지원’이니 ‘선진화’니 하는 친절하고 겸손한 표현 뒤에 정보는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는 오만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왜 오만한가?

정보 통제는 권력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다. 정보를 장악한 자는 권력을 장악한다. 그 역도 성립한다. 권력을 장악한 자는 정보를 장악한다. 정보는 권력의 원천이자 강력한 유지 수단이다. 다음 단계부터는 권력 앞에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나쁜’ 권력은 언제나 정보 독점 상태를 꿈꾼다. ‘나쁜’ 권력이 지향하는 것은 정보의 극단적인 양극화다. 내가 전부를 갖고 다른 쪽은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권력은 최대가 되고 가장 효율적인 대중조작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만일 권력자의 입에서 ‘국민의 알 권리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100% 거짓말이다.

‘나쁜’ 권력이 푸는 정보는 취사선택된 정보들이다. 권력 유지와 대중조작에 필요한, 알려도 무방한 정보는 선심 쓰듯 내어주지만, 감추고 싶은 정보는 비밀금고에 꼭꼭 넣어둔다. ‘나쁜’ 권력이 사랑하는 언론은, 던져준 정보를 컨베이어벨트처럼 실어 나르기만 하는 언론이다. 따지지 말고 검증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여러 차례 언론을 컨베이어벨트화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한미FTA 협상 때, 방송통신융합 논의 때, 정부는 그 내용을 철저히 통제했다. 밀실논의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정부가 흘려준 정보들은 일방적으로 정부 논리를 홍보하는 것이었다. 그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매체와 ‘불온한’ 자들에 대해 정부는 마구 신경질을 부렸다. 그 신경질을 예쁘게 치장한 것이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다. 지금까지 참여정부가 언론에 대하여 보여준 태도로 볼 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정브리핑, 청와대브리핑 등 유사 언론 행위로도 모자라 가장 자유로워야 할 모든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언론관이다. 정부는 그 발상을 버려야 한다.

언론의 역사는 ‘나쁜’ 권력에 저항하여 컨베이어벨트를 끊어버린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국방부 기밀문서 사건이 바로 그렇다. 미군들은 훌륭하게 전쟁을 수행하고 있고 월남전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실어왔던 언론은 유출된 국방부 기밀문서를 통해 정부가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을, 자신들은 그 거짓을 전파하는 데 확성기 노릇만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탐사보도가 탄생했다.

탐사보도란 “비밀로 하고 싶은 조직이나 사람의 의사를 무릅쓰고, 기존의 자료보다는 자기가 찾아낸 자료로 기사화하는 것”이다. ‘비밀로 하고 싶은 조직이나 사람’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때로 저널리스트들이 위협을 당하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보도가 이루어지면 이번에는 권력이 위험해진다.

정부가 무서워한 것은 바로 컨베이어벨트이기를 거부한 언론, 탐사저널리즘일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탐사저널리즘이 가장 필요한 때가 ‘선진화방안’이 실행되는 상황일 것이다. 탐사는 정부가 취사선택해 제공한 정보를 거부하는 데서, 감추고 싶은 비밀을 찾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국방부 문서 사건을 판결했던 휴고 블랙 판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언론 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들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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