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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웅 (성공회대 국제 NGO대학원 교수)

 

 요즘 책방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책을 고른다. 분명 작년 초에 비해 현저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아직 이와 관련한 통계를 알지 못해 단정할 수는 없으나, 출판계는 지금 무언가 뜨거운 변화를 경험하고 있을 법 하다. 


 이와 같은 현실에는 일단 이른바 논술시장의 확대가 우격다짐으로 가져온 대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주목되는 상황은 단지 논술시장 요소만 원인이라고 생각 들지 않는다.  지난 해 말 일부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절규했던 것과는 달리, 인문학 서적의 다양한 등장과 독서열의 증가는 우리 사회가 이제 좀더 근본적인 지식과 성찰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도처에서 독서모임이 퍼지고 있다. 홍대 앞에 북 카페가 16곳이나 생겨났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여러 전문직종 조직도 인문학 읽기와 강의에 목말라 하면서 열심히 모이고 있다. 이렇게 역사, 문학, 문화, 철학을 비롯해서 두껍고 난해한 고전(원전을 포함해서)을 공을 들여 파고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문명'이 통과하는 필연적 진화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그간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내공과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했는가를 깨닫고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창출해내는데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 결과인 셈이다. 


 라디오와 TV 등의 언론 방송 매체는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을까? 깊이 있는 대담이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토론, 또는 책 읽기를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적 교양의 수준을 전격적으로 변모케 할 프로는, 멸종의 위기에 있거나 혹 있어도 사각지대에 편성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매일 격변하는 현실적 사안들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짚어내는 방송언론의 자세는 보기 쉽지 않다.  언제나 뒤쫓아 가는 일에만 헉헉거릴 뿐이다. 


 가령 대선 국면에 접어든 이 나라가 함께 고민해야 할 보다 성찰적 질문들이나, 인혁당 사건 무죄판결을 비롯한 역사적 진실에 대한 추적과 그것이 오늘날에 갖는 의미를 규명하는 노력들은 오늘날의 방송매체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연예오락과 드라마가 그 자리를 대신해서 가득 채우고 있다.


 물론 모두가 즐겁고 경쾌하게 살 권리가 있으며 방송매체는 이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작 묻고 짚고 따지고 논하고 함께 공동체적 책임을 가지고 풀어가야 할 과제조차 포기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라디오 TV 채널 통틀어서 책과 관련한 프로는 다섯 손가락도 꼽지 못하며, 인문학적 흥미와 탐구심을 촉발할 수 있는 기획은 대체로 실종상태다.


 물질적, 정신적 빈곤을 자각하고 이를 뚫고 나갈 힘은 인문학적 역량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날카롭고 열정이 폭발적인 사회과학적 분석이라도 인문학의 힘이 없이는, 도리어 대중들에게 외면 받는 거친 슬로건에 지나지 않게 된다. 


 책을 열심히 붙들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일어나는 저 의미심장한 변화를 놓치는 방송은, 거리에서 선정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지 모른다. 인문학적 빈곤을 두렵지 않게 여기는 이들의 민망한 노후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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