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에서 ‘영호’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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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에서 ‘영호’로 가는 길
  • PD저널
  • 승인 2007.03.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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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많은 탤런트, 가수들이 자살하고 있다. 멀리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 대한해협에 몸을 던진 윤심덕부터 가수 장덕, 듀스의 김성재, 음유시인이자 가수인 김광석, 서지원, 재작년에 주홍글씨를 가슴에 품고 죽은 김은주, 지난 1월 유니 그리고 정다빈에 이르기까지….


연예인들이 자살하면서 그 원인을 두고 악플, 집단왕따, 인기부담 등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윤심덕은 사랑의 실패 때문에, 김형은은 교통사고 때문에 죽었다지만 김은주, 유니, 정다빈은 왜 갑작스럽게 자살해 충격을 더해 준 것일까? 연예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주홍글씨의 내용은 무엇일까?   


정혜선(정다빈의 본명) - 정다빈 - 남정은(정다빈이 맡은 드라마 ‘옥탑방고양이’ 여주인공)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 정혜선에게 정다빈은 환상이고 남정은은 환상의 환상이다.


정혜선이 정다빈과 남정은이라는 ‘겹 환상’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자면 캐스팅되어야 한다. 그 환상에 접근해 그 환상과 똑같아질 수는 없지만, 환상 속의 존재라는 연예인의 숙명은 연예인을 불가피하게 환상의 소유물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환상이 연예계 안에서 제조정 배치되면서 연예인은 환상의 제조품으로 그리고 노예로 살아가고, 이것이 남정은도 정다빈도 아닌 주체로서의 정혜선과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예계 안에서 무엇이 그 환상을 배치하는 것일까? 우리의 방송기술 수준은 근대적일지 모르지만 스타시스템은 전근대적이다. 탤런트 되는 길에 공채 방식이 있다지만 아름 아름으로 인맥을 통해 연예인이 되기도 한다. 연예인 소속사는 그 연예인을 이용해 환상을 제조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보자. 강한나가 제니로 변하는 과정은 환상이 제조되는 과정이다.


영화에서 강한나라는 한 인간은 연예상품으로 변질된다. ‘정혜선’이 ‘남정은’으로 변질되는 과정이나 ‘강한나’가 ‘제니’라는 연예명품으로 변질되는 과정은 동일하다. 그 가짜와 진짜, 짝퉁과 명품 사이에서 실제 인간은 갈등할 수밖에 없다. 명품은 가짜 환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특허품목인 집단패거리주의가 옆구리를 찔러댄다.


연예인 누구든 스타라는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면 연예 왕따로 전락하고 만다. 왕따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이것은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연예계에서든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다. 2005년 12월 DY엔터테인먼트가 뜬 후 연예계에 이러한 집단패거리주의를 제도화하는 움직임이 번성할 기미를 보인다. 방송의 공영성을 역행하며 연예프로그램을 독점하는 각종 엔터테인먼트들이 그것이다.


엔터테인먼트들의 이러한 프로그램 독과점현상이 지배하는 현실분위기가 연예인들의 자살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연예인은 대중들의 숨 쉴 구멍을 치고 들어 와 명품환상을 뿌려대는 대리존재다. 소속사, 황색언론은 연예인을 들러리로 내세우고 부추긴다.

 

그러니까 대중들의 인기부담, 소속사의 압박감에 밀려 연예인이 집단패거리주의 앞에 도착할 때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 아닐까?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낀 영호는 철길에 올라선다. 광기란, 독일어로 되돌아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낀 순수한 사람들이 자살을 택한다. 소속사는 국과수의 자살판정을 믿을 수 없어 한다지만, 정 다빈은 결국 강 한나가 되지 못하고 영호의 길을 택했다. 박하사탕을 손에 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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