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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3월 31일 오전 7시,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른 한미FTA 타결 데드라인이다. 이 시간까지 미의회에 통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단 TPA하에서 FTA체결은 물 건너 간다. 물론 TPA는 우리 국내법이 아니다. 우리 법률에는 언제까지 한미FTA를 타결하고 또 언제까지 비준절차가 마무리되어야 하는 등의 규정은 일체 없다. 그래서 그 시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내 사정이다. 데드라인도 미국의 데드라인일 뿐이다.

 

 

 

 

 

 

 

 

 

 

      

         ▲이해영 교수


 그러면 이 데드라인을 넘어가면 즉 결렬되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 '대외신인도'는 급락하고, 대미 수출 길은 막히고, 미국의 대한 투자가 막히는 것일까. 지금까지 미국과의 FTA협상이 결렬된 많은 나라들, 예컨대 스위스나 남미의 수많은 나라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차라리 우리안의 저 뿌리박힌 집단 무의식이 문제다. 혹 미국과 뭔가가 어긋나면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보복을 당하지는 않을까 오히려 그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나는 그것을 공미(恐美)주의라 부른다.


 실제 협상이 결렬되면 어찌 될지, 며칠 전 미국과의 FTA협상이 결렬된 말레이시아가 좋은 사례이다. 협상결렬 뒤 미무역대표부는 아래와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말레이시아 정부에 대해 무역촉진권한(TPA)상의 요건충족과 현시점에서 현행 TPA하에서 미-말레이지아 FTA안의 의회 제출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누차 언급한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이 협상에 참여하도록 이끈 것은 내용(substance)이지, 시한(timing)이 아니다." 성명서는 이어 양국이 협상의 계속에 합의하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렇다. 3월 31일 7시가 넘어도 얼마든지 협상이 계속될 수 있음을 미무역대표부 성명이 밝히고 있는 것이다. 막가고 있는 막판 퍼주기를 지켜보는 우리에게 미무역대표부의 성명 즉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시한이 아니라는 말만큼 절실한 것은 없으리라 본다.


 그런데 타결되면 또 어떻게 되는가. 철두철미 미국법에 따라 진행된다. TPA에 따르면 체결 예정일로부터 90일이전 즉 3월 30일(미국시간)까지 미의회에 체결의사가 통보되고, 이후 90일 동안 미의회의 '협의(consultation)'가 진행된다.

 

 공청회, 각 위원회의 자료 및 보고서 제출도 이어진다. 그래서 최종 협정문이 완성되면 6월말 정식조인이 이루어진다. 정식 조인뒤 '회기 중 어느 날'을 택해 미행정부는 '이행법안'과 함께 최종협정문을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개폐될 미국내법의 리스트는 조인 뒤 60일내에 제출해야 한다. 이행법안이 제출되면 이로부터 미 상하양원 각각은 90일내에 이에 대한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법안의 수정은 불가능하고, 토론 역시 20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TPA가 있고 없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의회의 수정가능성 여부에 있다. TPA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 미의회는 통상적 법률안 처리절차에 따라 얼마든지 이의 수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것이 유리한지는 확정짓기 어렵다.

 

 미 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하는 조건에서 볼 때, TPA가 있건 없건 본질적 차이는 없다. 그런데 흔히 말하듯 TPA라 해서 의회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TPA규정에는 행정부는 협상의 모든 단계에서, 협상 전략을 포함 협상의 모든 것에 대해 어떤 것도 빠트리지 않고 의회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예상과 달리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이후 한미FTA 협상기조에 상당한 변화가 오는 것도 이런 사정에 연유한다. 예를 들어 공화당의 '돈줄'인 의약품분야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민주당의 텃밭인 자동차분야의 요구가 급격히 강화되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6월말 정식조인까지 우리 국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법률적으로만 보면 아무 할 일이 없다. 단지 정식 조인 후 행정부의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비준동의안을 심의한후 가부만 거수하면 될 일이다. 미국과 비교해 가히 책임유기라 할만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의 통상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데에서 비롯된다. 3년전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들고 권영길 의원이 작년에 대표 발의한 <통상절차법>안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무튼 9월 이후 대/총선국면에서 우리 국회가 이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신속 처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 자체가 행정부의 졸속에 이은 또 하나의 졸속, 즉 이중의 졸속을 자초하는 길이기에 이는 대/총선과 무관하게 가서는 안 될 길이다. 국회가 신속 처리해야 할 것은 한미FTA가 아니라 통상절차법이다.


돌이켜 보건대 만일 통상절차법이라도 있었더라면 한미FTA를 둘러싼 지금의 갈등은 못해도 절반은 줄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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