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극장가를 먹어치운 괴물 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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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철 한국감독조합 공동대표.( 영화 '말아톤' '좋지아니한가' 감독)

 

 
 

 극장 600여개로 시작된 스파이더맨이 결국 800개 이상의 극장을 먹어버렸다. 600개라는 스크린은 아마도 괴물을 의식한 듯 그 이상은 넘지 말아야겠다는 이성의 마지노선이었으나 결국 미친 듯이 오르는 강남 아파트 값처럼 한탕 벌어보자는 극장들의 욕망 앞에 허무히 무너지고야 말았다. 1주일 만에 무려 250만 명이 거미인간을 보러 극장을 찾았다.

 

 용산 CGV 극장의 경우 5월 9일 현재 12개 관 중 7개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며 메가박스 코엑스점도 16개관 중 7개관을 스파이더맨으로 덮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래도 매진이 되니 어쩔 수 없다고?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 억지로 스파이더맨을 본다고는 생각지 않는가? 스파이더맨 표를 못 구한 관객들이 이 영화는 나중에 보고 대신 다른 좋은 영화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가?  

 

 그렇다. 이제 관객은 선택권이 없다. 극장이 관객을 선택하는 것이다. 감독도 배우도 영화사도 관객들을 도와줄 수 없다. 오로지 극장만이 힘을 쥐고 있다. 손님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걸 고를 수도 없고, 그저 주는 데로 먹어야 하는 것이다. 한강에서 독극물을 먹고 자란 괴물처럼 스크린 쿼터라는 고삐가 풀린 극장은 어느새 무시무시한 불가사리가 되어 그렇게 미쳐 날뛰는 것이다.

 

 그 괴물은 오로지 돈밖에 모른다. 돈 되는 영화만 먹어 제끼며 나날이 몸집을 불려만 간다. 개봉 첫 주 1등을 차지하지 못한 한국 영화는 이제 며칠 후,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교차 상영을 하게 될 것이고, 줄줄이 늘어선 크고 작은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에게 힘없이 밀려나고 말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스크린 쿼터 없어도 영화만 잘 만들면 된다고. FTA에 눈이 먼 경제 관료들의 국민 사기극이 결국 헐리우드 영화의 강력한 거미줄에 한국의 극장 체인을 모조리 먹잇감으로 내어준 것이다.  

 

 스크린 쿼터는 유통의 문제였다. 유통업자들이 값싸고 돈 되는 수입품만 유통시키는 걸 막기 위한 규제였다. 수입품에 관세를 때리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국산품을 유통시키자는 공정거래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제 그 유통의 안전장치가 뚫렸으니 모든 건 유통업자 마음대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그들의 마음은 곧 돈의 마음이다. 한국 영화의 진짜 적은 이제 미국이 아니라 유통업자인 극장들이 된 것이다. 이 정부가 생산자인 영화인들과 유통업자들 간의 싸움을 붙인 것이다.

 

 축소된 스크린 쿼터는 이제 73일. 두 달하고 열흘 남짓이다. 이건 한국 영화 흥행작 한 두 편이면 모두 메꿔진다. 그 다음은 정말 전쟁이다. 체급도 없고 보호장비도 없다. 자유경쟁? 오케이! 자유경쟁을 정말 시켜 달라. 공정하게 말이다! 손님 적게 든다고 1주일 만에 교차 상영을 하면서 하루에 한두 번, 그것도 가장 손님이 안 드는 첫 타임과 마지막 타임에 상영하는 게 자유경쟁인가? 한국 영화가 어떻게 매달 오백만 천만 영화만 만들 수 있는가? 그런 영화만 극장에 걸어줄 텐가? 그 결과 기획단계에서부터 오백만 천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영화는 점점 만들어지기 힘들 것이다. 극장에서 버티지도 못할 거 만들어서 뭐하겠는가? 한국 영화는 분명 모험이 힘들어지고 다양성을 잃을 것이다.

 

 이제 방송의 차례이다. FTA는 영화계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케이블은 이미 게임 오버라고 봐야하고, 공중파도 미래가 암담하다. 영화 찍을 일이 줄어든 감독들이 대거 텔레비전으로 진출할지도 모른다. 한류의 흐름을 타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미국의 견제로 주저앉은 한반도의 영화 방송인들이 작은 시장을 놓고 아웅 다웅 할 순간이 머지않았다. 쇼킹한 뉴스 하나 더. 스파이더맨은 최소 6탄까지 만들 예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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