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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중 (EBS 교양문화팀 PD) 

 

“김 PD 촬영이 언제 끝나지?”

“예..앞으로 2주일은 더 찍어야 하는데요”

“그래...?”

 

적잖이 난감해하는 팀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추적60분’의 대응방송에 투입할 담당PD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전 ‘교육부의 비밀병기-EBS수능방송의 실체’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으로 방송이 나간 후 사내 분위기가 영 어수선하던 참이었다. 교육부의 비밀병기라니...

 

“시간이 된다면야 마다하지 않겠지만 촬영이 계속 잡혀있어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그나저나 김PD는 그 방송 봤나?”

“예, 제목이 하도 무서워서 볼 수 밖에 없겠더라구요...내용은 정말 어이없었지만”

 

사실이 그랬다. 내가 EBS 직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능방송이 어떻게 제작되고 어떻게 이용되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억울해서 가슴을 칠만한 내용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역사와 전통의 ‘추적60분’이 왜 하필 EBS수능방송을 향해 오해로 가득찬 시선을 보냈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대응방송이라...잘 될까?”

“사실 우리 체질엔 잘 안 어울리죠...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바보같이 멀뚱거리는 거보단 낫겠죠...이유라도 알고 얻어맞으면 속이라도 편하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좀 걱정이 됐다. 남을 공격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당황스러움을 느끼듯이, EBS는 애석하게도 누군가를 공격하는 기술이 거의 없거나 또는 무척 부족하다. 그렇게 너무도 오랫동안 살아온 탓이다. 하물며 상대는 20년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간판 고발프로그램이 아닌가...

 

그리고 드디어 오늘 선후배 동료 피디들이 생업을 잠시 접고 만든 그 ‘대응방송’을 봤다. 프로그램의 형식은 단순했다. 상대편의 주먹이 날아왔는데 사실은 잘못 알고 주먹을 날린 것이며 심지어 글러브도 끼지 않고 급소를 때리는 반칙까지 범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지극히 방어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왠지 서글펐다. 마음고생이 컸을 동료PD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문도 모른 채 프로그램을 지켜볼 시청자들의 표정이 떠오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하드라마 한편 제작비로 수천편의 수능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강변하려는 게 아니다. 시가총액 1조원이 넘는 거대 사교육업체가 된 메가스터디와 모든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EBS수능방송이 잘못된 잣대를 통해 비교당하는 열패감을 만회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교육서비스로부터 소외받은 아이들, 사교육의 혜택으로부터 멀어진 아이들의 눈빛이 절실하게 수능방송을 원하고 있고, 그 눈빛 하나하나를 위해 열악한 제작여건도 마다하지 않는 수능방송 제작진들의 착한 사명감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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