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수의 변두리] 저개발의 기억, 칼국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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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즈버 그 놈의 불혹(不惑)이 다가오니 ‘삶의 낙’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하나의 업(業)을 가지고 살아가며 일에 대한 성취도도 있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진행되는 ‘삶의 락(樂)’이 살아가는 구질구질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령, 아이들이 성장하며 보여주는 ‘재롱의 맛’이 제 1락이 되기도 하고 산을 오르며 느끼는 그 시원함이 제 2의 락이 되기도 한다.

 

 그 중에 베스트는 아니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 ‘미락(味樂)’이다.  ‘미락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을 미락가(味樂家)라 한다면, 그것을 ‘직업적으로 노동해야 하는 이들’은 미식가(美食家)이다. 그러니, 나 같은 PD는 일개 미락가가 될 수 밖에 없다. 하기사 뭐든지 취미일 때 좋은 거지 직업이 되면 곤란해 지는 게 불혹을 앞둔 나의 삶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조금 후미진 곳에 해당되지만 지난 70-80년대 고도 성장의 그림자를 그나마 서울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이 영등포와 문래동이다. 그래서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는 위대한 영화이기도 하고... 물론, 그 저개발의 기억들을 상쇄시켜 주는 아파트들이 큰 배경으로 우뚝 서고 있지만 그러나, 영등포의 청과물시장과 유통단지 그리고 문래동의 공업사 골목을 가면 ‘그래,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주변의 땅값이 서른 배 오를 동안 묵묵히 선반과 밀링 머신을 돌리며 기름밥을 먹던 그 노동자들은 대체 무엇을 먹으며 미락을 즐기고 있을까...?  그 해답을 주는 것이 오늘 글의 무게 중심이다.

 

 문래동 공업사 뒷 골목에 위치한 <대추나무 칼국수>집!!! 사실 상호 찾기가 쉽지 않다. 골목을 가로지르는 간판도 없이 위치한 이 칼국수 집은 할머니 언저리 나이대의 두 분이 요리도 하고 서빙도 하는 이른바 ‘저예산 인디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곳을 어떻게 찾냐고 물어보면 ‘네이버에 들어가서 문래동 <영일분식>을 친 다음 그 골목에 위치한 다른 칼국수 집을 찾아봐라’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으니... 아는 사람만 맛 볼 수 있는 고약한 곳이다.  일단, 메뉴는 칼국수 하나다! 아니다... 물잔을 술잔으로 대체하여 먹는 소주가 있으니 메뉴는 칼국수와 소주 두 개다.

 

 앉으면 메뉴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몇 명인지 물어보니... 원래는 여름에 비빔국수를 하긴 했는데 반응이 시원찮고 주인 할머니 말로는 귀찮아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가격은 3,500원!!! 무지 싸다. 참고로 동종업계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명동교자’의 칼국수가 6,000원. 바지락 칼국수가 5,500원 주변을 맴도는 걸 보면 임대료를 고려해도 무지 싸다. 그래서 그 노동자들이 즐겨찾기도 하지만...

 

  맛은..? 무지 있다. 일단, 전통의 칼국수이다. 그 옛날 어머니가 비오는 날 칼국수 먹고 싶다고 하면 끓어 주시던 멸치국물을 메인으로 하여 북어.호박,다시마 등으로 맛을 낸 기가 막힌 맛이다. 양은...? 하루 12시간 육체노동을 하는 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할려니 무지 많다. 그래서 가면 여성용 그릇과 남성용이 따로 나오는 불평등이 있는데 그걸 항의하는 여작가에게 ‘그러면 다 먹고 더 달라고 해! 누가 안 준 대냐? 그러는 년 치고 다 먹은 년이 없어!’ 라는 일갈로 정리했다.

 

  참고로 반찬은 김치 두가지인데 묵은 김치와 그냥 김치. 묵은 김치는 그나마 단골들에게만 주는데 한번은 우리 식탁에만 묵은 김치를 주다가 옆 테이블 아저씨들에게 걸려서 그날 일주일 분 묵은 김치를 다 내놓았다는 일화도 있다. 영업시간이 조금 애매하다. 일단 11시 정도에 오픈해서 오후 4시정도면 문을 닫는다. 그리고, 계산도 현찰로만 하는 정(情)이 있는데 음식 먹고 나가며 계산할 때, 면을 삶고 있는 곳 위를 보면  2명=7,000 3명 10,500....9명 31,350, 10명 35,000 명 이라고 적힌 종이를 발견해 웃게 된다.

 

 전에 한번 17명 가서 진하게 먹고 나오는 데 계산을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20명 분을 주고 나온 기억도 있다. 손님들은 주로 근처에서 일하는 금속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방안에 앉으면 발냄새부터 여러 가지 냄새를 고스란히 맡을 수 있는데 그런 냄새도 처음이 어렵지 조금만 지나면 중독되게 된다.

 

 이 집은 예약도 안 받고 TV촬영도 안하는 집으로 그들에게 유명한데 근처에 있는 <영일분식>이 각종 TV출연 사진들과 싸인으로 벽을 도배했다면 이 집은 이제는 구하기 힘든 맥주 회사 달력과 오토바이 달력으로만 덮혀 있어 여름에도 많은 남성 손님들을 끌어 모은다. 특히나, 좋은 것은 국물이 일품이어 숙취 해장으로 그만인데 날씨가 꾸물대거나 비라도 오는 날에는 손님이 많아 기다려야 하는 위험성이 잇긴 하다.

 

 지금은 조금 수리를 해서 깨끗해졌지만 이전에 있던 슬레이트 지붕이 없어져 비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낮술을 달리던 그런 용기가 사라진 아쉬움도 있다. 그리고, 이건 영업비밀이긴 한데 그래도 공개하면 그 곳에는 주차할 곳이 없다. 그래서, 먹다가 키들고 나가는 그런 광경은 없다. 

 그런데, 다 쓰고 보니... 이런 글 쓰면 그 집주인 할마이들이 좋아 할까...? 

 

 

 신정수 MBC 예능국 PD


  1995 MBC에  입사 했으며 대표작으로 <아름다운 TV 얼굴> <일요일 일요일 밤에> <느낌표> <전파견문록> <음악캠프> <목표달성 토요일> <2006 MBC  대학가요제> 이 있다.  현재 <쇼! 음악중심> 연출 중이다. 신 PD는 저렴하면 서 맛있는 '맛집'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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