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인의 지피지기] 치솟는 제작비 외국사례에서 해결책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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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인의 지피지기] 치솟는 제작비 외국사례에서 해결책 찾자
  • PD저널
  • 승인 2007.03.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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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도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서, 방송사들이 대책마련에 부심한데요, 이번 시간에는 미국 할리우드에서의 제작비 조달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워낙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소요되는데다, 영화의 기획단계에서는 도대체 이 영화가 얼마나 성공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불확실성’에서 오는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제작비 조달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TV 드라마 제작비 조달방법과 비교하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얼마나 다양한 재원조달 방법을 동원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우선 TV 드라마 제작비 조달방식에 대해 알아봅니다. 

 

 TV 드라마 제작비 조달방식


미국 지상파에서 정규 시즌에 드라마로 편성되기 위한 경쟁은 매우 치열합니다. 미국에서는 1년에 15개 정도의 드라마가 새로이 소개되는데, 대개의 드라마는 13회 정도 (반응이 좋으면 9-11회 추가방영) 방송됩니다. 방송사는 드라마 외주사에 방영권료를 일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 단위로, 그것도 세 번에 걸쳐서 지급한다고 합니다.

 

촬영을 시작할 때 방영권료의 1/3, 촬영을 마치면 1/3, 그리고 방송사에 드라마를 납품하면 1/3 (재방송 때 10% 정도 추가지급하기도 한다고...) 이런 식으로 찔끔찔끔 지불하는데다, 방영권료가 제작비의 80-85%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외주사의 입장에서는 deficit finance이라고 하여 당분간은 적자를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다 대개의 경우 방송사가 4-6 시즌 동안은 제작비를 7-8% 인상해주는 조건으로 계속 그 드라마를 구입할 수 있는 옵션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기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했다고 해서 바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외주사가 드라마 제작으로 흑자를 보기 시작하는 것은, 최소한 3 시즌 정도 높은 시청률을 유지해서 지역방송이나 케이블에 몇 달 동안 띠편성될 만한 분량을 신디케이션으로 판매하는 경우인데요, 하지만 3 시즌 동안이나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드라마는 불과 5편 중에 1편 꼴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제작에서 흑자를 볼 가능성이 매우 불확실한데다, 흑자를 보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드라마 외주사들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자회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제작비 조달방식


 영화의 경우는 제작비 조달방식이 TV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합니다.
 크게 봐서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제작비 조달방식과 독립영화사들의 재원 조달방식이 다를텐데요, 특히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비를 조달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거의 봉이 김선달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지난 2001년에 미국 파라마운트사가 제작한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툼 레이더>-원래 1996년에 비디오 게임으로 크게 히트- 는 서류상으로는 제작비가 9,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890억 원 정도 투입된 영화였는데, 파라마운트社가 실제로 부담한 금액은 7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67억 원 정도밖에(?) 안들었다고 합니다.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머지 제작비를 다른데서 조달했다고 하는데요, 그 비결이 미국 NPR 라디오에 특집기사로 살짝 공개된 것을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사용한 방법이 독일의 영화 관련 세제 혜택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2003년 한 해에만 7,000만에서 8,000만 달러의 혜택을 봤다고 하는데요, 독일정부는 독일 국적의 영화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에게는 즉시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설사 영화제작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독일에서는 소득이 많은 해에 그 소득의 일부를 영화제작에 투자를 해서, 그만큼의 세금 납부를 연기하는 것이 稅테크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와는 달리 독일의 경우, 그 영화가 自國내에서 촬영되어야 한다든지 자국 스태프을 고용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독일 국적의 영화사가 저작권을 가지고 제작의 주체가 되며, 미래의 수익배분에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일단 서류상으로 영화의 저작권을 독일 영화사에 판 다음, 즉시 그 영화를 임차합니다.

 

 나중에 그 영화를 재구입할 수 있는 옵션을 달아서 말이죠. 그리고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독일 영화사가 제작과 배급을 위임하다는 약정서를 맺습니다. <툼 레이더>의 경우 파라마운트사는 독일 투자자들에게 9,400만 달러에 팔고는, 8,380만 달러에 옵션을 포함해서 임차했다고 합니다.

 

 그 차액인 1020만 달러를 가지고 안젤리나 졸리의 출연료 750만 달러와 그외 주연급 배우들의 출연료를 충당했다고 합니다. 독일 투자자들은 명목상에 불과한 이 영화의 저작권을 가지는 대가로 1020만 달러를 날린 셈인데요, 그 비밀은 이들이 독일 세무당국으로부터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파라마운트사는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1,200만 달러를 조달해서 감독 연출료와 작가료를 해결했다고 하는데요, 영국에서는 규정이 조금 까다로워서 영국에서 몇 씬(scene)을 촬영하고, 영국배우를 두세 명 기용해야 했다고 합니다. -영국 영화로 둔갑하기 위해 영국 현지에 자회사를 설립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도 작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페인 지역에서 배급권을 미리 팔아서 (pre-sale) 조달한 돈이 6,500만 달러였다고 하는군요. 나머지 700만 달러는 같은 그룹(Viacom)내의 유료 케이블 채널인 Showtime에 팔아서 충당했다고 하니까, 파라마운트사는 자기 돈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이런 대작을 제작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 <툼 레이더>의 사례를 보면 왜 할리우드가 블록버스트 영화 제작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차피 독일이나 영국에서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들이는 법률비용은 고정적인데, 이왕이면 제작비 규모가 커야 그 혜택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외국에서 지명도가 있는 배우라야 이런 메카니즘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주연급 배우의 몸값이 폭등하게 되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선 1600만 달러 제작비의 예술성 있는 작품보다는 이런 8000~9000만 달러짜리 액션 영화를 찍는 것이 risk management 차원에서 더 현명한 선택이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뉴질랜드의 경우도 영화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자국에서 제작한 영화 제작비의 12.5%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2003년에 도입했다고 합니다.  뉴라인 시네마에서 사운을 걸고 제작했다는 <반지의 제왕>의 경우도,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 지원과 독일 영화 관련 세제의 맹점을 이용한 서류상의 저작권 판매, 그리고 pre-sale로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비를 조달하는 방식은 먼저,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초기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스튜디오가 작가를 고용해서 in-house 제작하는 방식이 있구요, 두 번째의 경우는 Negative(인화를 하기 전 단계) Pickup Deal 계약인데요, 이것은 스튜디오가 독립 제작자의 영화를 제작이 완료되면 정해진 금액에 구입하겠다고 계약하는 것입니다.

 

 스튜디오가 영화 제작비를 어느 선까지 지불하느냐에 따라서 국내, 국외, DVD/ TV 라이센스權 등 어느 정도까지의 권리를 스튜디오에 양도하느냐가 정해집니다. 하지만 독립 제작자는 영화를 반드시 완성해야 하며, 이 계약서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제작비를 충당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 영화에서 발생하는 순이익은 스튜디오와 독립영화제작사가 나누어 가집니다.

 

 만약에 독립 영화사가 투자자를 모을 수가 있어서 영화 제작비와 영화 프린트 비용, 광고비용까지 스스로 충당할 수 있는 경우에는, 스튜디오에 훨씬 적은 배급수수료를 주고서 영화 개봉을 할 수 있는 "rent-a-studio"방식도 있습니다만,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2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제작비를 투입한 <타이타닉>과 같은 영화는 워낙에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북미지역의 배급은 파라마운트社가, 기타 해외지역은 20세기 폭스사가 맡았듯이 스튜디오들이 공동으로 제작비를 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산업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불확실성이기 때문에, 스튜디오든지
독립제작사든지 최대의 수익을 노리기보다는 불확실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그래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도 만일 흥행이 실패할 경우의 위험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내부제작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고, 대신에 안정적인 수입원인 배급 수수료를 벌기 위해서 독립 영화 제작사들에게 제작비를 융자해주면서 유망 영화의 배급권을 따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김도인 / MBC 라디오국 PD


 1986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해 '손석희 시선집중' , '싱글벙글쇼', '지금은 라디오시대'등을 제작했다. 지금은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연출 중이다. 미국 Loyola  Marymount University에서 Media MBA 과정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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