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현의 한반도 24시] 통일의 가치와 250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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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에서 열렸던 6차 6자회담에 참석했던 김계관 외무성부상이 평양으로 돌아갔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묶여있던 북한돈 2500만 달러가 북한계좌에 입금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화 2500만 달러가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우리 돈으로 250억원이 채 안 되는 액수인데 겨우 그 돈에 북한이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압박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자 북한의 실추된 위신을 회복하기 위한 명분 때문일까?

 아마 북한과 사업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면 그 해답을 알 것이다. 모든 대북거래에는 ‘돈’이 들어간다. ‘돈’이 최우선적인 고려대상이다. 민족의 동질성, 통일에 대한 열망, 분단극복을 위한 치열한 열정... 등 순수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통일사업’에 나서는 사람들은 돈의 액수로 접촉의 순위가 매겨지는 현실 앞에서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오로지 ‘대가 없는 지불능력’에 따라 주요인사로 대우되는 상황을 접하고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평양의 자랑인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공연모습

 언론교류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아주 ‘드물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평양을 방문해 취재를 해온 언론사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모든 대북교류에는 이른바 ‘문턱비’라는 사업비용이 들어간다. 보통은 남한의 언론사가 북한에 교류나 취재를 제안하지만, 간혹 북한측에서 ‘아이템’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때는 각 언론사에 동일한 제안을 해 가장 ‘조건’이 좋은 언론사와 사업을 진행한다. 돈의 액수는 남북방송교류의 기회와 대체로 정비례한다.

 남북한간의 본격적인 언론교류가 시작된 시점을 1998년이라고 본다면, 그 사이 중앙의 주요 언론사만 교류의 현장에 설 수 있었다. 그것은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좋은 아이템과 순수한 열정으로 대북교류를 시도했던 지방의 여러 언론인들이 북한 일꾼들의 냉담한 반응에 평양행 비행기는 타보지도 못한 채 베이징의 호텔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휴지로 변한 사업기획안을 들고 눈물을 삼키며 귀국했다. 그들이 돈의 단위에 ‘0’하나 더 붙이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걸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사회주의’ 북한일꾼들의 철저한 ‘배금사상’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 2004년 2월 묘향산 보현사를 둘러보는 남북역사학자들

 

그 만큼 북한에서는 ‘달러’가 필요하다. 미국의 고립정책으로 거의 파산상태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돈 되는 일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로 물물교환형식의 교역대상국이 사라지면서, 생필품의 부족을 매우기 위해서는 달러가 과거에 비해 더 많이 요구된다. 우리는 돈이 없으면 단지 불편한 정도이지만 북한의 현재 형편에서 돈의 유무는 생존과 직결된다.

 

 그러나 북한 일꾼들이 돈에 집착하는 모습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다. 돈 때문에 의리를 저버리고, 순수한 열정으로 대북사업하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돈을 더 받아내려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다 못해 안쓰럽다. 실제 북한과 사업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북한일꾼들의 이런 태도 때문에 북한과 거래에 더욱 더 부정적이 된다. 심지어는 통일주의자에서 반통일주의자로 변신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고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 달러가 소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미국’의 달러를 목말라하고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북한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아서만 안 된다. 오히려 인민의 생존과 국제질서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 눈을 뜬 것이 다행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사람들의 ‘돈’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도 크게 보면 시행착오이자 단련의 한 과정이다. 그들도 ‘돈’이 계급을 갈라놓는 해악이 아니라 피와 땀의 소중한 결정체인 것을 이해할 때 남북한의 정서적 괴리감은 단축될 것이다. 오히려 2,500억 달러가 아니라 2500만 달러에 목말라 하는 북한과 통일비용이 적게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지 않을까?

 

오기현 / SBS PD


 

  SBS에서 1999년 방송사 최초의 공식적인 방북프로그램 '조경철박사의 평양방문기'를 제작했다. 그 이후 <조용필 - 평양에서 부르는 꿈의 아리랑> 등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주로 기획, 제작했다. 1998년 이후 북한을 20여 차례 방문했다. 현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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