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영의 alive or all live] 입사 4년차가 잠시 잊고 있던 것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즈....좋아하세요?” 남자가 이렇게 물었다.
“네, 아무것도 모르지만 묻어갈 수 있는 게 재즈인 것 같아서요.” 여자가 대답했다.
“묻어...가다니요?”
“그런 거 있잖아요... 갑자기 집시가 된 느낌?”
“집시라...”
“전 사람의 마음 속...아니 몸 속에는 집시가 되고 싶은 마음들이 숨어있다고 생각해요.”
“전 아닌데요?”
“자유롭고 싶은 마음 없어요?”
“그건 있죠.”
“그게 그거..같은데요. 자유롭고 싶을 때 자유로울 수 있는 집시.. 재즈를 들으면 전 집시가 된 것 같아 좋아요. 아무 조건 없이 자유롭지만 음악을 듣고 나면 조건 없이 내어준 음악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특히 단조의 곡들은 단순히 우울한 게 아니라 진중함 같은 게 베어나거든요 그 안에 묻혀 춤을 출 수 있으니 황홀한 음악....인 것 같아요.”
“특별히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이 있나요?”
“없어요. 아니 몰라요.”

다시 고개를 돌린 여자는 재즈를 모른다. 스탄 게츠가 피아니스트인지 색소포니스트인지.... 흑인영가, 소울, 블루스, R&B가 뭔지도...하지만 재즈는 좋아한다.

저는 현재 <6시 내고향>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특별음악회>라는 공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영화음악, 재즈 등 장르를 불문하고 국내 정상급 연주가들을 초청해서 제주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는 공연 프로그램입니다.

3월엔 <이정식 쿼르텟의 언제나 재즈처럼> 이란 타이틀을 걸었습니다. 색소폰에 이정식과 피아노에 고희안, 재즈보컬 말로 등 젊은 재즈뮤지션들이 출연했습니다. 한국적 정서를 색소폰으로 표현해 내는 이정식씨의 무한 연주와 스캣이 음악과 어울려지게 만드는 말로씨의 목소리에 제 스스로도 새삼 감동했던 무대였습니다.

이 <특별음악회> 시리즈는 2006년도부터 시작했는데 공연 문화가 다양하지 않은 제주에서 아주 큰 호응을 얻어 1년을 넘겨 올 해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고정 팬도 있어 제작하는 저로서도 꽤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 오는 관객들의 연령은 다양합니다. 60대 부부에서부터 엄마 손 잡고 따라오는 초등학생까지...음악은 함께 듣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테입에 기록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준비하면서 우려했던 걱정들이 봄 눈 녹듯 사라집니다.

초대권은 다 나갈까.., 객석은 다 매워질까.., 관객들이 프로그램을 맘에 들어할까.., 연주자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음향과 조명은 괜찮나.., 공연장이 춥지 않을까...... 제가 관객이 되어 공연을 봤을 때 느꼈던 불편함을 이 공연을 찾은 관객들이 똑같이 느끼지 않도록 PD인 제가 다 체크해야하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예상치 않은 상황들은 트레몰로도 없이 팡팡 터져줍니다.

중계차에 들어가지 전까지 제가 녹초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죠. 하지만 컨디션까지 조절해야하는 게 PD의 업!보! 라고 생각하고 중계차에 오르기 전에 화장까지 고쳐가며 스스로의 얼굴을 보며 쌩긋! 웃고... 하나의 머리와 여러 개의 눈을 가지고 컷팅을 시작합니다. 1시간이 넘고 2시간이 되어가는 어느 즈음의 시간...잘 됐던 안 됐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짧은 동승을 마칩니다.

입사해서 지역 국에 오기 전에 선배들이 했던 말들 가운데 하나가 지역국에 가면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여러 장르, 혹은 여러 프로그램이란 말이었다는 걸 지금은 압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경계를 좀 더 빨리 알아차리고 그 사이를 조금씩 좁혀가는 준비와 연습을 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지역국 근무에는 있습니다. 물론 그 외의 한계와 단점들도 있죠.

하지만 100분짜리 음악 프로그램 생방송을 입사 2년차 때 제가 맡아 할 수도 있었고 60분 다큐도 입사 4년차인 제가 할 수 있는 대범함과 용감함을 이곳에서는 십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한 점은 그런 기회가 제가 주어진 다는 것입니다.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공공의 전파를 쓰고 있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오늘도 지키고, 져야하는 당위성이 PD라는 업을 가진 입사 4년 차인 제게 있다는 걸 이번에는 재즈가 들려줬습니다.

그래서 음악은 고마운 존재인가 봅니다.

“재즈보컬 말로의 <벚꽃지다>라는 곡....
지금의 시간과 너무 어울리는데...한 번 들어보실래요?”

 

양자영 KBS 제주방송총국 PD


2004년 KBS에 입사해 2005년 〈4ㆍ3기획 화해를 넘어 상생으로〉, 2006년 〈KBS 스페셜〉, 〈KBS스페셜〉의 '바람의 말 제주어'를 연출했다. 현재 제주 방송총국에서 〈6시 내 고향〉,〈특별음악회〉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