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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력신문사의 회장으로 있다가  주미대사가 되어  활동하던 중  모대통령후보에게  친족재벌그룹의 불법선거자금을 전달한 게 도청당해 중도하차했던 이가 다시  그 신문사 회장이 되었다.
 
 그가 그 수치스런 일로 미국 대사자리를 물러나 귀국하던 '05년 말, 인천공항에서는 우리 언론사에 길이 남겨야 할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어느 정당 소속 사람들이 그이의 귀국 길목을 막아서며 포토라인을 넘어 기습시위를 벌이자 취재하던 기자가  시위자의 목을 잡아 젖혀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그 기자는 그 대사가  회장으로 있었던 바로 그 신문사 소속의 사진기자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고 강변했다지만, 그것은 기자의 직업정신과 직업윤리, 두 가지 모두에 어긋나는 언행이었다. 그의 행동은  언론인으로서 쫓아야 했던 진실도, 지켜야 했던 불편부당(不偏不黨)도 모두 저버린 것이었다.
 
 물론 포토라인은 중요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과열 취재경쟁으로 인한 불상사를 막기 위한 언론인들의 신사협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토라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협정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더 진실되고 더 정확한  현장의  참모습을 제공하기 위한 합의이다. 그런 점에서는 사건관련자와 일반인도  모두가 포토라인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날 시위자들의 시위행위는  일반인들의 행위가 아니었다. 일종의 정치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였다.  그래서 시위자가 카메라렌즈를 고의로 막지 않은 이상, 그 날 사진기자의 행동은 부당하며 언론인의 앵글을 심하게 벗어나 버렸다.
 
 설혹 그들의 시위가 불법이었다 하더라도 기자가 나서서 그 불법시위자를 제지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았다. 언론인은 그들 시위자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언론의 도마에 올려놓고 냉정하게 비판을 가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지 그들의 목을 제지하고 법을 집행할 권리를 가지지는 않았다.
 
 그 역할은 공항의 질서와 안전을 책임지는 관계자나  귀국 당사자의 경호를 맡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기자는 단순히 '얼굴'을 찍으러 그곳에 가진 않았을 것이다. 전직 회장의 얼굴사진쯤이야 신문사 자료실에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는 틀림없이 국민적 관심사인 불법 선거자금 전달 관련자의 생생한 귀국현장을 취재하러 갔을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벌어진 정말 생생하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상황을 취재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치욕스러운 사건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언뜻 보기엔 작은 해프닝으로 보이지만 우리의 언론사에 길이 남겨 기록되어야 할 사건이었다.  왠고하니 우리 언론이 가지고 있는 치부중 치부를 백주 대낮에 가장 명쾌하게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언론계의 동료와 후학들에게 길이길이 반면교사 역할을 해 줄만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언론의 약점 중 약점은  언론 불변의 가치인 불편부당 함을 자주 외면하는 일이다.  언론이 "진실을 추적해서 보도하고 사회의 공익을 추구하는 공적 도구"라는 언론인 스스로의 정의가 옳다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평부당'은 그 진실에 닿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오롯한 외길이다.
 
 그런 점에서 그 날의 공항사건은  불편부당을  정면으로 부정한  사례가  되기에  충분하거니와 세간의 평처럼 그 기자는 '경호원기자'라는 주홍글씨로 된 완장을 팔뚝에 차는게 더 적합해 보였다.  지금 우리 한국의 언론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신문과 방송과 통신과 인터넷이 결합해서 이루어내는 언로는 사통팔달을 넘어섰다.  가히 바다를 이루고 있다. 이 바다 속에는 또 수많은 크고 작은 <펜>들과 수많은 크고 작은 <카메라>가  진실과 정의를 찾는다며, 국가와 민족을 경호한다며  치열하게 경합한다.
 
 그야 말로 언론 자유 백가쟁명이다.  모두들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시시비비를 쫓아 진실과 정의를 국민의 제단에 바친다는 맹세를  사훈과 사시로 박아놓고  오늘도 만가지 입장과 주장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닉하다.  언로가 사통오달을 넘어서서 위로는 고가도로, 밑으로는 지하철이 뚫린 언론천국이  왔건만  진정으로 국민과 진실과 정의를 경호하는 언론인은 옛날보다 줄어들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경륜과 명망을 갖춘 대기자도 왠지 자기 신문사의 대경호원으로 둔갑한 느낌이 들고 패기만만한 젊은 기자들도 갑옷과 투구를 쓴  힘쎈 구사대만으로 보일 뿐이다.  어떤 언론인도 '불편부당'해 보이지 아니하고  어떤 누구도 진실을 쫓는 정의의 사자 같지 아니하다. 그 날 공항에서 일어나 그  경호사건은  한국언론의 참모습을  실증해 준  빙산의 일각 아니었을까?
 
 그날 그  기자의  경호 덕분이었을까?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친족재벌의 불법자금을 날랐다던 그 회장이  다시 신문사 회장자리에  버젓히 복귀했다. 
 
 
이응진 / KBS 드라마팀 PD
, 문화칼럼니스트

 대표작으로 1994년 최수종과 배용준. 그리고 이승연,최지우가 출연한드라마 <첫사랑>과 <딸부자집> 등이 있으며  2004년 KBS 연수원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HDTV 문학관' 을 제작 중이다.  '타블라 라싸'는  흰 백지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순백의 상태를 말하듯 철학자 루소는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 말을 사용했다. 흰백지 위에 생각을 쓰자는 의미에서 이 칼럼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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