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진의 타블라 라싸] 傳說 建設(전설 건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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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진의 타블라 라싸] 傳說 建設(전설 건설)의 ‘꿈’
  • 이응진 KBS PD
  • 승인 2007.10.0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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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8년 전 주말연속극<달빛가족>을 끝내며 KBS 본관 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달빛가족>은 개성 강한 다섯 형제인 서인석, 길용우, 김주승, 안승훈, 김승진과 큰형수 이휘향이 출연한 가족 드라마였는데 5형제와 가족들이 펼친 정감 있고 우애 깊은 스토리로 당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고 방송 사상 처음으로 홍콩에 수출되는 개가까지 올렸었다.
 
또 1993년에는 미니시리즈<희망>을 제작한 뒤 감나무를, '95년는 <딸 부잣집>을 만든 뒤 <은행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97年, 방송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첫사랑>을 끝낸 후 최수종, 배용준, 이승연, 최지우 등 드라마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이 함께  KBS 별관 뜰에  <모과나무>를  심었다.   지난 가을 그 첫사랑의 <모과나무>엔 주먹만 한 모과가 스무개나 넘게 열렸다고 하는데 50년 후엔 그 모과나무엔 이런 전설이 함께 열릴지 모를 일이다. -편집자 주

방송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봄날, 위대한 한 선배의 죽음을 계기로   프로듀서로서의 '꿈'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우선 글로써 그  꿈을 完工(완공)해 본다.

조연출로 동분서주하던 20여년전의 일이다. 노숙자 행색을 한 중년 사내가  KBS별관 복도를 매일같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기름기 낀 머리엔 새집을 여럿 얹었고 낡은 양복 어깨엔 비듬이 눈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  초라한 행색에도 불구하고 눈빛만은 백두산 호랑이 안광처럼 늘 무섭게 빛났다.
 
어느날  동료에게 사내의 정체를 물어보았더니 그가 바로 전설적인 드라마 '旅路'(여로)를 쓰고 연출한 '이남섭' 선생이라 했다.
 
그순간 얼마나 황홀 경악 했던지! 셰익스피어를 마주친 듯 전율했고  생의 푯대를 만난 듯 황홀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몇 년 뒤 선생은 삶의 동반자이며 방송의 도반이었던 탤런트 김난영 여사가 돌아가시자 뒤따라서 저 세상으로 훌쩍 가버리셨다. 안타까운 오십대 중반! 하나님은 천재 프로듀서 한명을  일찍 데려가신 것이었다.
 
그런데 참 기이했다. 그가 떠나자 방송국 어디에도 그 기념비적인 드라마 <여로>에 관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테이프도 없었고 대본도 없었고 관련 자료도 전무 하다시피 했다.
 
한때 이 땅의 대중들을  희비의 바다에 표류시켰던 드라마<여로>는 방송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곤 짧디 짧은 필름조각 뿐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속한 집단의 文化(문화)를 눈치 채게 되었다. 
"방송이 끝나면 모든 게 끝난다!"
만들 때는 천하 명약이라도 만들듯 구증구포하며 모두들 목숨을 걸지만, 방송이 끝나면  내팽개쳐 버리는 반문화적 문화를 엿보게 되었다. 그런 풍토 속에서  드라마 <여로>도  주인공과 함께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선배의 죽음과 여로의 멸종을 보면서  떠올랐던 내 꿈은 이런 것이었다.
드라마<여로>를 끝내며 장욱제와 태현실, PD와 스태프들이 모여  어린 느티나무 한그루를 심었더라면 지금 우리 앞에는 거목이 된 <여로의 느티나무>가 한그루 우뚝 서 있지 않았을까!
 
그 느티나무 주위엔 방방곡곡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견학 온 시청자들이 둘러서서  장욱제의 바보짓을 흉내 내며  그 시절 삶을 추억하고 있지 않았을까?
 
보름달 뜬 날 밤 <바보나무>에 백배 절을 하면 '태현실' 같은 착한 색시를 얻는다는 '전설'이 주렁주렁 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80년 방송사에 기념하여 나무를 심을만한 명작이 어디 ‘여로’ 뿐이었으랴? 그간 한국의 프로듀서들은 수많은 명작을 만들었고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아왔다. 그때마다 그것을 기념하는 나무를 심고 그럴듯한 명찰하나 달아주었더라면 지금쯤 방송사들의 정원은 울창한 ‘방송의 숲’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 숲에는  방송의 80년 역사가 자라고 지금쯤은 <전설>이 잉태되고 있지 않았을까?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면 나무를 심자. 그러면 언젠가는 숲을 이룰 것이다. 물론  그 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 밑에는 TV모니터가 설치되고 그들을  잉태시킨 프로그램이 폐쇄회로를 통해 흘러나와야 더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면 먼 훗날,  방방곡곡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방송국에 놀러온 우리의 후손들이 그  방송의 숲 속에서 추억이 살아 숨쉬고 역사가 살아 움직이는 또 하나의  감동적인 프로그램을 만날 것이다
 
이것이 내가 건설하고 싶었던  '꿈'이었다. 
이 꿈이  미완으로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꿈'을 품고 18년 전부터  나무를 심었고 또 앞으로도 심을 것이다.

  방송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봄날, 위대한 한 선배의 죽음을 계기로   프로듀서로서의 '꿈'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우선 글로써 그  꿈을 完工(완공)해 본다. …조연출로 동분서주하던 20여년전의 일이다. 노숙자 행색을 한 중년 사내가  KBS별관 복도를 매일같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기름기 낀 머리엔 새집을 여럿 얹었고 낡은 양복 어깨엔 비듬이 눈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  초라한 행색에도 불구하고 눈빛만은 백두산 호랑이 안광처럼 늘 무섭게 빛났다. 어느날  동료에게 사내의 정체를 물어보았더니 그가 바로 전설적인 드라마 '旅路'(여로)를 쓰고 연출한 '이남섭' 선생이라 했다. 그순간 얼마나 황홀 경악 했던지! 셰익스피어를 마주친 듯 전율했고  생의 푯대를 만난 듯 황홀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몇 년 뒤 선생은 삶의 동반자이며 방송의 도반이었던 탤런트 김난영 여사가 돌아가시자 뒤따라서 저 세상으로 훌쩍 가버리셨다. 안타까운 오십대 중반! 하나님은 천재 프로듀서 한명을  일찍 데려가신 것이었다. 그런데 참 기이했다. 그가 떠나자 방송국 어디에도 그 기념비적인 드라마 <여로>에 관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테이프도 없었고 대본도 없었고 관련 자료도 전무 하다시피 했다. 한때 이 땅의 대중들을  희비의 바다에 표류시켰던 드라마<여로>는 방송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곤 짧디 짧은 필름조각 뿐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속한 집단의 文化(문화)를 눈치 채게 되었다.  "방송이 끝나면 모든 게 끝난다!"만들 때는 천하 명약이라도 만들듯 구증구포하며 모두들 목숨을 걸지만, 방송이 끝나면  내팽개쳐 버리는 반문화적 문화를 엿보게 되었다. 그런 풍토 속에서  드라마 <여로>도  주인공과 함께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선배의 죽음과 여로의 멸종을 보면서  떠올랐던 내 꿈은 이런 것이었다.드라마<여로>를 끝내며 장욱제와 태현실, PD와 스태프들이 모여  어린 느티나무 한그루를 심었더라면 지금 우리 앞에는 거목이 된 <여로의 느티나무>가 한그루 우뚝 서 있지 않았을까! 그 느티나무 주위엔 방방곡곡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견학 온 시청자들이 둘러서서  장욱제의 바보짓을 흉내 내며  그 시절 삶을 추억하고 있지 않았을까? 보름달 뜬 날 밤 <바보나무>에 백배 절을 하면 '태현실' 같은 착한 색시를 얻는다는 '전설'이 주렁주렁 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80년 방송사에 기념하여 나무를 심을만한 명작이 어디 ‘여로’ 뿐이었으랴? 그간 한국의 프로듀서들은 수많은 명작을 만들었고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아왔다. 그때마다 그것을 기념하는 나무를 심고 그럴듯한 명찰하나 달아주었더라면 지금쯤 방송사들의 정원은 울창한 ‘방송의 숲’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 숲에는  방송의 80년 역사가 자라고 지금쯤은 <전설>이 잉태되고 있지 않았을까?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면 나무를 심자. 그러면 언젠가는 숲을 이룰 것이다. 물론  그 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 밑에는 TV모니터가 설치되고 그들을  잉태시킨 프로그램이 폐쇄회로를 통해 흘러나와야 더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면 먼 훗날,  방방곡곡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방송국에 놀러온 우리의 후손들이 그  방송의 숲 속에서 추억이 살아 숨쉬고 역사가 살아 움직이는 또 하나의  감동적인 프로그램을 만날 것이다 이것이 내가 건설하고 싶었던  '꿈'이었다.  이 꿈이  미완으로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꿈'을 품고 18년 전부터  나무를 심었고 또 앞으로도 심을 것이다.

 

 

"함께 역사를 심자!! 함께 전설을 만들자!! ""
 

이응진 / KBS 드라마팀 PD , 문화칼럼니스트


 대표작으로 1994년 최수종과 배용준. 그리고 이승연,최지우가 출연한드라마 <첫사랑>과 <딸부자집> 등이 있으며  2004년 KBS 연수원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HDTV 문학관' 을 제작 중이다.  '타블라 라싸'는  흰 백지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순백의 상태를 말하듯 철학자 루소는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 말을 사용했다. 흰백지 위에 생각을 쓰자는 의미에서 이 칼럼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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