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샘의 예술이야기] ⑫ 괴벨스와 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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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처럼 나약한 존재가 있을까? 일찍이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85?~BC 414?)가 아니더라도 만물의 영장이자, 신의 위대한 창조물인 인간의 고귀함과 우월성에 대한 찬사는 기록문화가 생겨난 이후,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신의 영역에까지 도전하려고 하는 인간의 오만함은 동시에 주변 환경과 생명체들을 일순간에 파괴시켜 버릴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다.

과연 인간 지성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지성의 방향은 항상 무오류, 무결점의 목표점을 향해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유사 이래 꾸준히 발전해온 인간 사회를 일괄해 본다면 수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성공의 역사, 이성의 역사를 긍정적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동의할 수 있는 결론이다.

이성과 감정의 비율을 수시로 바꿔가며, 결단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인간능력의 유한성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는 역사 속에서 무수히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 그 정도와 범위가 더 심각해져가고 있음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성의 판단과 결정을 대자연의 섭리보다도 더 우위에 놓을 때, 인간은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파괴자가 될 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생리학자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 1849 - 1936)의 조건 반사 이론을 기억할 것이다. 종을 칠 때마다 개에게 먹이를 제공했더니, 나중에 먹이를 제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의 반응이 이전과 동일했다(침을 흘리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비록 개를 대상으로 했지만 육군군의학교의 재직경력을 가지고 있는 파블로프의 실험은 결국 인간 행동을 탐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여졌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이로써 세계는 자극(Stimulus)에 반응(Response)하는 유기체의 패턴 속에서 인간역시 주어진 조건하의 자극에 의해서 행동을 학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음악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문제는 이와 비슷한 시도가 파블로프의 실험과 불과 몇십 년 차이로 문화계에서도 나타났다는 데에 있다. 바로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 - 1883)에 의해서 확립되어진 유도동기(Leitmotif)의 본격적 출현이다.
오페라의 주요 등장인물이나 특정 주제가 나올 때마다 이와 관련된 악구를 되풀이 하여 사용함으로써, 과거의 오페라와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관객의 몰입도가  강화된 이른바 악극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몰입도가 강하다는 것은 어찌보면 주체적인 비판의식을 가지고 관람하는 것이 아닌, 작품이 제시하는 특정 분위기나 주제 속에 빠져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관객은 주어진 조건 - 극장이라는 특정 장소에서 다수 속에 개개인으로 참석하고 있는 - 아래에서 교묘히 제시되고 반복되는 유도 동기라는 자극에 의해 특정 주제나 인물에 서서히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설정된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인간의 주체성이 위협받을 수도, 더 나아가서 그 상황이나 조건을 조장한 사람의 의도에 따라 구체적 행동을 학습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그것을 실제 활용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 ~1945)다. 독일 국민들의 눈과 귀를 한순간에 멀게 했던 선전 선동의 명수이자 군중 심리의 대가였던 괴벨스는 이러한 인간의 약점을 교묘히 활용,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일찍이 바그너 음악의 강력함을 인지한 그는 게르만 민족의 대규모 군중집회나 유태인의 핍박 행사시 그의 작품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어쩌면 나치당의 정치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바그너의 음악이 괴벨스라는 인물에 의해서 새롭게 채색된 것이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이 잘 연주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치시절의 게토 거리에서, 포로수용소에서 확성기를 통해 수시로 들려왔던 바그너의 음악이 그들에게는 단순히 음악만으로는 들리지 않을 듯 싶다.

바그너의 악극과 유도동기(Leitmotif)! 그리고 파블로프의 개와 종소리! 더 나아가 괴벨스의 선전선동과 유태인의 악몽들! 모두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음악이 단순히 감상의 대상일 뿐이라고? 천만에!     
 
오한샘  / EBS 교양문화팀 PD 

1991년 입사해 <예술의 광장> <시네마천국> 등 문화, 공연 예술 프로그램을 주로 연출했다. 그 밖에 대표작으로  <장학퀴즈> <코라아 코리아> 등이 있다. 영화, 음악 그리고 미술 등에 조예가 깊으며 현재 연재하고 있는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미술 이야기'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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