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화의 조준선 정렬] 70년 만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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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화의 조준선 정렬] 70년 만의 ‘귀향’
  • 정길화 MBC 대외협력팀장
  • 승인 2007.10.0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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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을 맞는 해다. 두루 알다시피 70년 전 1937년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다. 1860년대부터 굶주림을 피해 혹은 독립운동을 위하여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에서 개간을 하며 정착생활을 하고 있던 한인들이었다. 그들이 소련 스탈린으로부터 야만적인 폭거를 당했다. 연해주의 한인들이 일제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당치도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18만 명의 한인들은 40여일간의 열차 이동 와중에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식량과 물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인간 이하의 취급이었다. 이동 간에 만 천여 명이 객사를 했을 정도다. 그들이 새롭게 이주를 강요당한 중앙아시아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일대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카레예츠’라고 불렀는데 바로 ‘코리안(Korean)'의 러시아어다. 이를 직역을 하니 '고려인'이 되었다.

한민족의 강인함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동토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상부상조하는 공동체를 건설하였다. 낯선 땅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특유의 생명력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농헙혁명을 이루고 수많은 노동영웅을 배출했다. ‘황만금농장’과 '김병화농장‘은 한때 세계 최고의 수확량을 기록하는 등 지금까지 전설로 남아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중앙아시아의 여러 독립국가에 흩어져 살게 된 고려인들은 신생국의 반소 분위기와 민족주의 정책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의 ‘김병화농장’과 '김병화거리' 등은 그 이름이 박탈되고 ‘김병화박물관’만 간신히 남아 있을 정도라고 한다. 고려인들은 과거의 부와 지위를 잃은 채 궁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내전의 와중에 무국적자가 되거나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고단한 유민(流民)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가.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면 한민족의 핏줄이 아니다. 이들은 일자리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카자흐스탄이나 러시아 등으로 떠나고 그들 중 일부는 애초의 출발지인 연해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할아버지의 땅에서 원점으로 돌아와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유랑에 지쳤다. 더 이상 떠돌 순 없다’며 중앙아시아에 그대로 남으려는 식구와의 갈등도 있다. 떠나온 지 70년이 지난 연해주도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 낯선 타향일 수밖에 없다. 설렘과 기대의 한편으로 두려움과 주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졸지에 화물열차에 실려 영문도 모르고 황무지에 내던져지던 70년 전 그때의 절망과 당혹함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이주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인 강제이주 70년인 올해 MBC에서는 방문진의 지원을 받아 <귀향>이라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중앙아시아에 사는 고려인들이 희망을 찾아 70년 만에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조상들의 고향 연해주로 돌아가는 사연을 담고 있다. 6천 킬로미터 구간을 40여일 만에 이동했던 열차 일정이 이제는 9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열차를 타고 할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가는 전 옥산나(36세 고려인 3세) 가족의 귀향은 자못 눈길을 끈다. 그녀는 딸과 두 아들의 미래를 위해 남편을 설득해 연해주 우수리스크 ‘고향마을’ 정착촌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꿈을 심는다. 여우의 수구초심(首邱初心)이기도 하면서 연어의 회귀이기도 한 그녀의 선택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귀향>은 원래는 10월 5일 세계 한인의 날을 전후해 특집으로 방영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연해주 일정이 늦추어지면서 프로그램은 10월 19일과 26일에 2부작으로 방송될 예정이다. <귀향>을 보면서 고려인들의 장엄한 디아스포라와 엑소더스를 기리고 제1회 세계한인의 날을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역사는 여전히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고 있다.  

 

정길화 / MBC 대외협력팀장 , 12대 PD연합회장


1984년 MBC 입사. <인간시대> <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에네껜> 등 연출. 임종국상, 통일언론상, 방송대상, 한국언론대상 등 수상. MBC 홍보심의국장과 특보겸창사기획단 사무국장 역임. 저서로는 <3인3색 중국기>,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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