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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 살 때부터 넥타이를 매기 시작한 사람이다.

놀라진 마시라! 그렇다고 내가 재벌이나 갑부집 아들이란 뜻은 전혀 아니다. 열 살짜리 내게 넥타이를 매어 준 사람은 물론 어머니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의 중고 넥타이를 질끈 묶어주시고 내 등을 툭 치며 말씀하셨다.

“나가서 열심히 뛰어 놀아라!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때 어머니가 넥타이를 매어 준 곳은 내 목이 아니라 내 여린 허리였다.

혁대 대신 바지 허리춤에 아버지의 낡은 넥타이를 꽉 묶어주시며 안심하고 뛰어놀라 하셨던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세대의 바지는 대개 고무줄로 된 허리띠였다. 그 고무줄이 갑작스레 끊어져 겪어야 했던 ‘싸나이’로서의 황당한 추억들! 내가 처음 만난 ‘넥타이’는 그런 낭패를 막아준 고마운 허리띠로서의 넥타이였다. 얼쑤!

그 후 언제, 어떤 이유로 넥타이를 매기 시작 했는진 정확치 않다.

짐작컨대 대학 입학하던 해, ‘첫 미팅’ 때가 거의 확실하다. 당시의 미팅은 애국가만 안 불렀지 아주 경건한 경축 행사 같았다. 그 경축 이벤트를 위해서 나는 삼촌 방에 잠입(潛入)해 넥타이를 훔쳤고, 그 문화적 장물로 촌놈을 신사인양 위장했던 기억이 난다.

사족을 달자면 그때 내 넥타이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내 이성 교제의 첫 파트너인 그녀가 아예 다방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좌절감이란! 나는 홀로 주점에 앉아 미팅에 성공한 친구들이 파(罷)하기를 기다리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물론 술집 한 구석엔 삼촌의 넥타이가 저 홀로 팽개쳐져 괄시를 당하고 있었다.

사회인이 된 후에도 넥타이는 여전히 내게서 괄시받는 존재였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은 전투를 치루는 일과 무척이나 흡사하다. 그래서 드라마장이에게 넥타이란 마치 전투장이가 애인에게 받은 향수 선물 같은 것이랄까? 늘 곁에 스탠바이하고 있지만 왕의 내방을 받지 못하는 궁녀 같은 신세가 드라마 감독들의 옷장에 걸린 넥타이가 아닐까 싶다.

근데 몇 년 전 글쟁이 후배 때문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시인(詩人)인 후배는 유명출판사의 부탁으로 3개월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멋진 여행가이드북을 냈다. 그는 책 서두에 큼직한 글씨로 결론부터 써버렸다.

“여행에서 대접을 원하면 넥타이를 매라!”

저 북유럽의 스톡홀름에서 스페인 남단 안달루시아까지 온갖 문화유물과 다양한 사람들을 탐색하며 다닌 그가 쓴 여행기의 한 대목은 이렇다.

“여행에 지쳐 공원 벤치에 앉을라치면 옆자리 여인이 얼른 자신의 소지품을 가슴팍에 끌어안는다. 그런 일은 유럽의 모든 곳에서 벌어진다. 처음엔 못된 차별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마주쳤다. T셔츠에 등산 조끼를 걸치고 운동모를 눌러 썬 홈리스 같은 사내. 나라도 내 가방을 가슴팍에 끌어안을 만 했다.

다음 날 멋진 넥타이를 매고 여자들 옆에 앉아 보았다. 그리곤 내 여행기의 결론을 얻었다! ”

그렇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세상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마주쳤던 일상이고 경험이었다.

후배 글을 읽고 난 몇 일 후, 나는 그 동안 괄시했던 내 옷장 속의 넥타이를 주섬주섬 끄집어냈다.


남자가 넥타이를 맨다는 것은 신사(紳士)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예의와 명예를 중히 여기며 늘 약자 편에 서고 여자를 보호하겠다는 다짐의 매듭이다.

5백년 된 고목에 영혼이 살듯, 이제 5백 살 된 넥타이에도 영혼이 살아간다.

옛날 여인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가 간통의『낙인』이었다면, 이 시대 남성의 목에 매여진 넥타이는 신사의『낙관』이다.

그래서 나는 곧 세상으로 나갈 내 아들에게도 내 어머니처럼 넥타이를 매어주며 말하려 한다.


“나가서 열심히 살아라.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된다, 네가 신사라는 사실을!”

이응진 / KBS 드라마팀 PD , 문화칼럼니스트
대표작으로 1994년 최수종과 배용준. 그리고 이승연,최지우가 출연한드라마 <첫사랑>과 <딸부자집> 등이 있으며  2004년 KBS 연수원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HDTV 문학관' 을 제작 중이다.  '타블라 라싸'는  흰 백지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순백의 상태를 말하듯 철학자 루소는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 말을 사용했다. 흰백지 위에 생각을 쓰자는 의미에서 이 칼럼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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