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화의 조준선 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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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화의 조준선 정렬]
  • 정길화 MBC 대외협력팀장
  • 승인 2007.11.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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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감독의 영화 <색, 계>가 극장가에서 연일 흥행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영화 <식객>을 제치고 1위에 올랐는데 이제 경쟁작은 헐리우드 영화 <베오울프> 정도다. 감독의 명성(와호장룡, 브로크백마운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등 유명세에다 미인계와 첩보전이 숨막히게 구성된 플롯 등 영화를 볼 만한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역시 범인들에게 공전의 화제가 되는 것은 영화에 나오는 대담한 성애장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소문을 듣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영화를 보았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상영시간 내내 화면에서 눈에 떼지 못하고 시선집중이다.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이렇게 과감한 노출과 체위를 생생히 보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객석에서 그 신경질 나는 핸드폰 소리 한번 안 들렸다. 베드신이 나오는데 화면에 현혹(?)당하지 않고 스토리에 집중하기는 <터미네이터 1편> 이후 처음이다. 중국에서 30분이 삭제되었다는데 한국에서는 무삭제 상영이란다. 우리나라의 만개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감사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스포일러'가 될까봐 일부러 관련 기사를 안 보았다.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니 단연 내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다. 영화 <색, 계>가 중국에서의 실화를 모델로 한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1939년 중국 상하이에서 친일괴뢰정권(왕징웨이 정부), 국민당, 공산당 등이 숨 막히는 첩보전을 전개할 때, 친일괴뢰정권의  비밀공작조직 '76호'의 책임자로 악명을 떨치던 딩모춘을 제거하기 위해 국민당측이 동원한 미인 정보원 정핑루와의 실화가 소설과 영화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앗! 딩모춘이라면 어디서 들어본 내가 아는 이다. 2002년에 방송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53년 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편을 제작하면서 중국의 친일파 처단 실태를 현지 취재한 적이 있다. 흔히 우리는 해방 직후 남북이 분단되어 대립하느라 친일파 청산을 못했다는데 그러면 국공내전을 거친 중국은 어떠했을까를 알아보는 취지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중국의 친일파(漢肝) 처단은 45년 종전 이후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 정부에서 각각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진행을 했다. 난징의 장개석 정부에서 처단대상으로 꼽은 1급 친일파 중의 한 사람이 딩모춘이었다. 그의 자취를 취재하기 위해 상하이 이곳저곳을 다녔으며, 심지어 그에게 암살된 강소성 지방법원 재판장의 유족도 만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량챠오웨이의 실제 모델이라니.  

딩모춘은 친일정권이 세운 비밀공작기관 '76호'의 책임자다. 기관의 본거지를 상하이 정안사로 서쪽 제스필드로 76호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생긴 명칭이라고 한다. 나는 2002년 당시 상하이에서 지금은 민가와 학교로 변한 이곳을 찾아내 촬영한 적이 있다. 딩모춘은 원래는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국민당으로 변절해 국민당의 공작조직인 남의사(藍衣社)를 지휘했다(우리 해방공간에 있었던 우익 테러조직 '백의사(白衣社)'는 이를 본 딴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다가 조직에서 밀려나자 다시 변절해 국민당측 지하공작원 조직을 분쇄하는 특무공작을 지휘했다. '특공마왕'이라는 별명의 리사쥔과 함께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얼굴은 '쥐상'인데 별명으로는 피스톨왕, 암살왕, 살인마가 있고, 여자를 좋아해 '색정광'이라는 호칭도 있었다고 한다. 바로 영화 속 량챠오웨이가 분한 이(易)선생 역이다. 좀 깨지 않는가.

정핑루는 전 상하이 고등법원 수석검찰관 정보쯩의 딸이다. 그녀는 일본인 모친 덕택에 일본어가 능통하고 미모였다고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 그녀는 같은 모습의 머리 모양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치장에 신경을 많이 썼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정핑루는 16세 때 남의사 지하공작원이 되어 애초에는 딩모춘의 부하로서 상하이에서 일본군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바로 영화 속 탕웨이가 분한 왕치아즈 역이다. 정핑루의 실제와 왕치아즈 이미지 사이의 간극은 실화에 소설과 영화로 더해진 상상력의 결과다.

딩모춘이 친일파로 변절한 후 국민당측 지하 공작 조직이 궤멸 직전에 이르자 상하이 주재 국민당 조사통계실(국민당 정보기관의 공식명칭) 책임자가 접근해 그녀를 포섭했다. 정핑루를 이용해 딩모춘을 제거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딩모춘에게 접근해 미인계로 그를 사로잡았다. 딩은 그녀를 비서(실제로는 첩)로 76호에 끌어들였다. 1939년 12월 정핑루는 크리스마스선물을 사달라고 졸라 상하이 제스필드로 동쪽 시베리아 잡화공사로 갔다. 그녀는 딩에게 새로 유행하는 오버코트를 사달라고 했다. 영화 <색 계>에서는 이것이 6캐럿 다이아몬드로 바뀌었다. 오버코트로는 요즘 관객을 호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량차오웨이는 "반지를 낀 당신 손을 보고 싶다"는 절묘한 대사로 마무리했다. 문득 심순애를 농락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반지가 생각났다.

 ▲ 영화 <색, 계>의 한 장면

다시 실화로 돌아가자. 딩이 계산을 끝내고 나오는 순간 잠복조가 권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재수없는 통행인 몇 사람이 걸려들어 쓰러졌을 뿐, 그는 특무공작의 두목답게 번개같이 달아났다. 이렇게 해서 딩모춘 암살 공작은 실패로 돌아갔다. 정핑루는 체포돼 이듬해 처형되었다. 조직의 라이벌이었던 리사쥔은 이 사건을 기화로 딩모춘을 실각시켰다. 리사쥔 일파는 적의 여공작원을 '76호'에 끌어들인 책임을 물어 딩을 몰아냈다. 그는 '76호'를 떠나 한직인 사회복지부장 자리로 가야 했다.

딩은 요행히 미인계에서는 벗어났으나 법정의 단죄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딩모춘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장개석 국민당 정부에 의해 일본 부역자로 체포돼 재판을 받았다. 국공내전의 와중에도 국민당 정부는 할 일을 하였다. '왕징웨이 정부의 히믈러(나치의 친위대장)'라는 칭호까지 들은 그에 대한 판결은 "사형에 처한다. 종신공권을 박탈하고 가족의 필요생활비를 제외하고 전 재산을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딩은 왕징정부의 항복 직후 국민당군의 접수에 협력하였다. 그리고 정상참작에 반영해 달라고 몸부림치며 상소했다. 최고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딩모춘은 47년 7월 난징 교도소에서 46세로 총살형을 당했다.  (이상 내용은 마스이 야스이치 저, 정운현 역. <중국, 대만 친일파 재판사>에 근거함)

영화를 보기 전에 관련 기사들을 보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안 감독의 의도는 짐작이 간다. 미인계의 스파이로 잠입한 여자와 암살위협에 시달리는 특무공작대장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감독의 주제인 듯하다. 각자가 처한 본연의 현실적인 위치와 시간이 지날수록 통제할 수 없는 애정에서 오는 동요 즉 이성(戒)과 감정(色)의 경계에 대해 감독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물음은 영화적으로 거의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열정을 다한 배우의 연기, 완성도 높은 연출로 과다한 노출 묘사의 당위성이 승화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실제가 악명높은 딩모춘이며, 전문공작요원 정핑루임을 알았다면 내가 받은 영화의 감동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2002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53년 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편 제작 당시 나는 딩모춘에 의해 암살된 강소성 고등법원 제2분원 재판장 위화션의 유가족을 찾았다. 위화션은 친일괴뢰정권인 왕징웨이 정부의 이른바 화평운동 참가를 거부해 딩모춘의 테러공작 대상이 되었다. 수소문 끝에 위재판장의 두 딸을 베이징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70대, 80대 할머니가 된 두 딸은 아직도 그날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39년 11월 23일 아침 위재판장은 상하이 프랑스 조계 선종로에 있는 자택으로부터 출근하다가 잠복하고 있던 딩과 그의 76호 조직원에 의해 권총으로 암살당했다. 그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였다. 두 딸은 그 때본 핏자국이 생생하고 아직도 화약냄새가 기억난다며 몸서리쳤다. 두 자매의 늙은 얼굴에 치유되지 않은 분노가 문득 서리면서, "악은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며 전율하던 것이 새삼스럽다.

영화를 아직 보시지 않은 분에게는 죄송하다. 이 글이 악성 트레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색, 계>의 상영이 끝나기 전에 이 내용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해석과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영화적 상상력간에 경계와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혹은 사실의 규정력이 영화의 감상을 방해하는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물론 다큐멘터리와 영화는 다르다. 영화에서는 더 자유로운 해석과 상상이 가능하고 또 그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조금 달리 생각도 해 본다. 실제의 딩모춘이 친일파 처단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형이 집행되었기에 이 사건을 소재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더해 <색, 계>와 같은 영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이런 영화가 관객들, 특히 중국의 관객들에게 용납이 되겠는가 말이다. 가령 우리 영화에서 딩모춘 자리에 노덕술이나 하판락 같은 악질 친일경찰을 대입시키고 아리따운 여배우를 상대역으로 해서 <색, 계>같은 작품을 하는 것이 아마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장개석 정부가 딩모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친일파는 때를 놓치지 않고 단죄되어야 했다. 잘못 끼어진 첫단추의 업보는 지금도 계속된다. 청산의 미완은 상상력의 구속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색, 계>는 언제나 가능할 것인가.
 

정길화 / MBC 대외협력팀장 , 12대 PD연합회장


1984년 MBC 입사. <인간시대> <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에네껜> 등 연출. 임종국상, 통일언론상, 방송대상, 한국언론대상 등 수상. MBC 홍보심의국장과 특보겸창사기획단 사무국장 역임. 저서로는 <3인3색 중국기>,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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