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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화제의 한일합작 드라마 〈시티헌터〉 주인공이 톱스타 정우성으로 낙점됐다. 좋은 선택이다. 정우성은 일본에서 가장 히트한 한국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일본 내 인지도가 높다. 여배우를 일본에서 고른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 2002년 MBC에서 방영된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도 같은 패턴이었다. 여주인공은 일본에서, 남주인공은 아시아 각국에서 고르는 것은 일본과 한국 시장 모두에서 윈윈 방향이다. 물론 몇몇 가지 의아한 구석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프로덕션 밸류 자체는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기획의 근간이 되는 합작 형식은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시티헌터〉의 합작은 〈프렌즈〉 당시와는 성격이 다르다. 〈프렌즈〉는 MBC와 TBS, 한일 양국 방송사가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뭉친 드라마였다. 합작 자체에 이벤트적 성격이 강했다.

〈시티헌터〉는 경우가 다르다. 일단 한국 시장을 벗어난 상업적 기대가 역력하다. 소위 ‘한류 기대’다. 따라서 다국적 시장에 어필하기 위한 전략으로 거대 규모 블록버스터를 기획하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합작형식을 취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더군다나 〈태왕사신기〉로 일본수출 재미를 본 제작사 TSG컴퍼니와 김종학 프로덕션의 합작회사 SSD 작품이다.

이런 식의 합작 형태는 사실 위험성이 크다. 형식상으로 제약이 많아진다. 일단 드라마에 국지색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 국지적 사고, 현실 반영은 ‘다국적으로 먹혀야 하는’ 합작 드라마 콘셉트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어느 국가, 어느 문화권에서나 통용될 만한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내용은 차츰 평이해지고 진부해지기 쉽다. 궁극적으로는, 만국에서 공통으로 먹히는 시각적 쾌감에 주력하게 된다. 내러티브적 재미는 ‘볼거리’에 종속돼 밀려나 버리고, 규모만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결국 만족도 떨어지는 콘텐츠로 이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극예술 장르에서 다국적 합작의 위험성은 이미 영화계가 증명했다. 어느 국가 성격도 드러나지 않는 콘텐츠는, 결국 어느 국가에서도 딱히 어필하지 못한다. 여기서부터는 온전히 프로덕션 밸류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할리우드의 방향성과 정확히 일치해버린다. 가장 상대하기 싫은 적수가 오랜 기간 차지하고 있는 레드오션에 제 발로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최악의 시장 발상이다.

어찌됐건, 마르고 닳도록 트렌디만 팔다 한류 시장을 괴멸 직전으로까지 이끈 지금, 장르 드라마에 대한 시도가 계속된다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시티헌터〉의 위험성은, 여기에 한류라는 개념이 섞이다 보니 혼선이 생긴 것이라 봐야한다. ‘해외에 팔아야 할 장르 드라마’라는 것이다. 장르 드라마 개척만 해도 무리수인데, 무리수 두 가지가 얽혔다. 무리수가 늘어나니, 합작이라는 더 큰 무리수까지 불렀다.

하나씩 시도해야 한다. 장르 드라마를 시도하려면, 한국 시장에 맞는 규모로 섬세히 들어가야 한다. 한류를 원한다면, 한류의 본질이 그러하듯, 국지적 이질감과 범아시아적 정서공감대를 동시에 건드리는 기획을 생각해봐야 한다. 합작은 여전히, 콘텐츠 내적 차원이 아니라 제작지원만 오고가는 형태여야 한다. 이를 단번에 뛰어넘는 선구적 시도란, 적어도 대중문화산업이라는 감성상품 시장 영역 내에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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