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관 전 MBC 기자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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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그들이 생각난 것은 아마도 거꾸로 가는 듯한 세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짓이 당당하게 위세를 부리는 세상, 거짓이 드러나도 막무가내로 우기면 통하는 세상, 거짓이라도 좋다는 세상 때문에 그들이 더 생각났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도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던 이들이 있었고, 그런 그들 때문에 비록 16년의 세월이 흐른 뒤라도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실마리나마 잡아낼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하는 한 가닥 희망마저 놓아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5년 전 기자였던 그들은 이제 모두 사장이 돼 있다. 한사람은 MBC 사내 벤처 회사 사장, 또 한 사람은 전주방송의 사장이다. 그 둘은 15년 전 MBC 사회부 기자였고, 차장이었다. 당시 홍순관 기자, 그리고 김택곤 차장이 바로 그들이다. 

1992년 2월 9일, 의 기사 하나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문서위조단이 적발됐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그러나 단순한 사기사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까지 연루된 사건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 전문가가 문서를 허위 감정해주고 돈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됐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기사  

그동안 국과수가 내놓은 숱한 문서감정의 진실성이 송두리째 의심받을 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국과수의 문서감정 결과를 유일한 증거로 채택한 수많은 민·형사 판결의 정당성 또한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돈을 받고 문서를 허위 감정해줬다는 의혹의 주인공이 또 김형영 문서분석실장이었다. 당시 한창 항소심 공판이 진행 중이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결정적 물증인 유서 대필 감정을 했던 장본인이었다.  

노태우 정권 말기 최대의 공안사건이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토대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었다. 돈을 받고 문서를 허위로 감정해주었다면, 어떻게 그가 내놓은 필적 감정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파장의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당시 검찰 등 법조를 출입하던 홍순관 기자는 이날 보도 때까지 수개월을 잠행 취재했다. 노태우 정권 때였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지만, 방송에 대한 정부의 입김은 여전했다. 통제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사건팀장인 김택곤 차장만 취재 사실을 알았다.  

주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다른 출장 건으로 위장해 지방취재를 가기도 했다. 수개월간의 잠행 취재 끝에 국과수 김형영 실장에게 허위 감정 청탁을 알선해 준 사설감정인의 증언을 녹취하는 등 보도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그러나 넘어야 할 고비가 많았다. 뒤늦게 이 같은 취재사실을 알게 된 방송사 윗선에서는 기사 내용과 그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기사를 내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일요일이 거사일로 잡혔다. 일요일은 방송사는 물론 권력기구의 시스템이 잠시 쉬고 있는 때니까. 적어도 숨 돌릴 여유는 벌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문서 전문위조단 사건 용의자 '국과수 김형영 문서분석실장'  

기사 파장은 컸다. 새로운 사실들도 드러났다. 국과수 김형영 문서분석실이 바로 1년 전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서 전문위조단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경찰 수사는 상당히 깊숙이 진행됐다. 김씨를 직접 불러 조사할 정도였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돌연 중단됐다. 당시 경찰은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수사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됐다는 것이다. 

김형영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MBC 홍순관 기자의 보도가 있은 지 채 열흘도 되지 않아 김형영씨 등 6명이 구속됐다. 뇌물 수수 및 뇌물 공여 혐의였다. 전광석화 같은 신속한 수사였다.  

하지만 검찰은 김형영씨가 "허위 감정은 하지 않았다"고 수사 결론을 발표했다. 돈을 받은 것은 "사례비로 알고 받은 것이지 허위 감정의 대가로 받은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이었다. "돈을 주면 김씨로부터 허위감정을 받을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는 브로커의 녹취는 무시됐다.  

김씨는 1심에선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당시 서울형사지법 항소1부(재판장 송기홍 부장판사)는 92년 9월 김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김씨를 풀어주었다. 국가공무원으로 20년간 근무한 것, 면직 처분 등 '사실상 처벌'을 받은 점을 참작하고, 앞으로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결정적인 물증이었던 필적 감정을 한 장본인이 사건 관계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까지 됐지만 강기훈씨는 결국 유죄가 확정됐다. 정의는 바로 집 앞에서 길을 잃었다. 다시 제 길로 들어서는 데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사람들 뭐라고 그래요? 김형영씨, 그 때 강기훈씨 수사했던 검사, 그리고 판결 내린 판사, 그 분들 뭐라고 그래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공동대표 함세웅).
ⓒ 안윤학
 

강기훈씨의 유죄확정... 집 앞에서 길 잃은 '정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13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해 국가의 재심을 요구하는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은 후 전화로 연결된 홍순관 MBC 스토리 허브 사장의 첫 반응은 바로 이랬다.  

"그 사람들, 지금 뭐라고 그러느냐?"

그 사람들은 지금 뭐라 하고 있을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을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실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을까?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지휘했던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이었던 강신욱 변호사는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난센스"이며 "특정 단체가 입맛에 맞는 결론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다른 수사 검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법원에서 이미 유죄로 확정해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게 없다는 것이다. 

강기훈씨가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거의 유일한 물증은 필적 감정 결과다. 그 물증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이들은 막무가내로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필적 감정을 했던 김형영씨는? 더 꿋꿋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을 절대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감정 때 "어떤 외압도, 의심받을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비교 감정한 것은 그 때 비교 감정한 것과 다른 것이기 때문에 감정 결과가 번복됐다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홍순관 사장이 그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했던 것은. 사실은 15년 전 당시 홍순관 기자가 취재 보도한 사실만으로도 그 결과가 달라졌어야 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때 달라진 게 뭐가 있던가? 

"파장이 아주 큰 사건이라는 것은 취재 처음부터 직감했어요. 그러다가 김영형씨가 튀어나오고, 그가 바로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의 필적 감정을 맡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강기훈씨 사건이 뒤집힐 수도 있겠다 싶었죠." 

하지만, 검찰은 김형영씨가 사건 관계자로부터 돈은 받았지만, 허위 감정은 없었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니 강기훈씨 유서대필 필적 감정도 문제될 게 없었다.  

당시 참 어려웠다고 했다. 취재하는 것이 어려웠던 게 아니라, 보도하는 과정이 어려웠고, 보도한 이후가 더 어려웠다. 김형영씨는 보도 내용이 사실 무근이라며 되레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취재가 어려운 게 아니라 보도가 어려워? 

회사 안에서도 칭찬과 격려보다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이 더 많았다. 자신을 믿어주고 전적으로 지원해준, 끝까지 같이해 준 당시 김택곤 차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 모를 취재였다고 했다. 또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 팀이 자신의 보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적극적인 후속보도를 해주지 않았다면 참 어려웠을 것 같다고 회고했다. 

당시 허위 감정 사건이 결국은 단순 뇌물 사건으로 처리된 데 대해,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의 진상 규명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데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보도가 있은 다음 판사들 가운데는 감정제도의 문제점을 아주 잘 드러냈다고 말해준 분들이 꽤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필적 감정이란 것이 지극히 애매모호한 것입니다. 그 조사방법도 그렇지만, 유사성이 70% 이상이면 동일하다는 식의 판정 기준 자체도 그렇지만, 판정 기법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이나 법원이 이 같은 엉성한 감정 결과를 유일한 증거로 삼아 재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말이 안 됩니다." 

그런 말이 안 되는 일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강기훈 사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지만, 그는 이 말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 것 같았다. 한마디로 말이 안되는 결과였다. 무엇보다 그 유일한 증거의 신뢰성을 유일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감정인의 '양심'과 '양식'을 이미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밀고 나간 것에 대해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바로 그런 점에 대해선 언론이 끝까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감정 제도와 그 법적 운용의 문제점, 그리고 사건 관계자로부터 뇌물까지 받은 국과수 김형영 문서분석실장의 바닥난 도덕성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도 당시에 많은 지적들이 있었다. 김형영 뇌물 수수 사건이 터진 뒤 <한겨레>에 쓴 박연철 변호사의 '국과수 감정이 공신력을 잃었다면…'도 그런 글 가운데 하나다.  

강기훈씨 변호인이기도 했던 박연철 변호사는 이 글에서 당시 필적 감정 자체가 지극히 신뢰하기 어려운 비과학적 방법일 뿐만 아니라 뇌물을 받고 거짓 감정을 해준 사람의 감정 결과를 도대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었다(<한겨레> 1992년 2월 16일자).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15년이 더 걸렸는데... 

박 변호사는 그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불이 훤히 켜져 있는 사회에서 진실은 결코 우회하지 않는다. 유서 대필 사건은 검찰의 단계에서, 감정인의 단계에서 이미 결론지어지고, 법원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어야 한다. 진실하지 못한 증언으로 무고한 청년을 감옥에 가두어 둔 채 편안한 잠을 청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순한 진실을 밝히지 못해 우회하고 표류하는 사회현상은 시급히 극복돼야 한다."

하지만 그 단순한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까지는 그 때부터도 15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그 단순한 진실이 확정되기 까지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박연철 변호사의 글처럼 그것은 검찰의 단계에서 끝나야 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늘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김경준-이명박 공방의 진실 찾기는 또 얼마나 걸릴까? 그 역시 검찰의 단계에서, 아니 그 이전에 상식의 수준에서 끝나야 할 일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은 세월이다. 단순한 진실을 밝히지 못해 우회하고 표류하고 있는 사회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역사의 흐름에 결코 낙관적일 수 없는 까닭일 수 있다. 그런 역사의 흐름은 그 누구 탓도 아니고, 바로 우리들 책임임을 새감 절감하게 된다.  

파리 특파원, 저녁뉴스 앵커로 잘 나가던 홍순관 기자는 1년여 전 사내 벤처 스토리허브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왜 한국의 TV 드라마에는 멜로물 이외에는 찾아볼 게 없을까 싶어 새로운 드라마 장르를 개척하자고 작심했다. 기자의 장점이라면 일반인 보다 사회의 이면을 많이 접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데 착안한 것.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는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도 주된 목표 가운데 하나다.  

검찰청 검사와 수사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MBC 일일 드라마 '아현동마님'이 스토리허브 작품이다. 내년 초 방영 예정인 '스포트라이트(가제)'는 홍순관 사장이 직접 스토리를 썼다. 보도국 기자들의 이면을 다룬 것이다. 그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누구라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홍순관 사장과 만난 저녁, 잠시 만난 한 MBC 관계자는 인터뷰 내용을 듣곤 "바로 그 이야기로 만들어도 되겠다"고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김경준-이명박 진실 공방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드라마 소재일 듯싶다. 사실 기다릴 필요도 없겠다.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지 않은가. 한 대목 한 대목 리얼 타임으로 가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너무 엉뚱한 상상일까. 

'유서대필 의혹 사건' 무엇이 진실인가
  
강기훈씨.
ⓒ 안윤학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의 수사 주역들인 그 때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때 비교한 필적과 이번에 비교한 필적은 서로 다른 것이라며, 진실화해위원회가 내놓은 이번 국과수 재감정 결과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형식논리만으로 따지자면 그들의 그런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국과수는 얼만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감정 자체를 거부했다. 결론이 난 감정을 다시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때문에 우회로를 선택했다. 먼저 당시 감정을 하지 않은 강기훈의 필적과 유서를 국과수와 사설감정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강기훈의 필적과 유서는 '상이하다'는 일치된 결과가 나왔다.  

새롭게 발견된 김기설 필적인 '전대협노트'와 낙서장 등 3개 문건의 필적과 유서의 필적 감정도 역시 국과수와 7개 사설감정원에 의뢰했다. 국과수와 3개 사설감정원에서 모두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국과수가 감정한 문건들에 대해서는 3개 사설감정기관에 필적 감정을 의뢰한 결과 당시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와는 달리 모두 '상이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감정을 의뢰한 강기훈씨의 필체는 모두 법정 수사기록에 첨부됐던 것들이다.  

무엇보다 이번 국과수 감정에는 당시 공동감정인을 포함해 5인의 감정인이 참여했으며, 당시 감정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자인했다. 필체가 달라져 감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 속필체와 정자체를 구분하지 않고 비교 감정했다는 것이다. 김기훈씨의 속필체와 정자체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모두 정자체로 상정해 감정한 것이다. 결정적인 실책이었음을 국과수 감정인들이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수사및 감정 관련자들이 필적 비교 대상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필적 감정의 기본과 신뢰성 자체를 스스로 부인한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적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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