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현 PD의 영상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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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현 PD의 영상경제학
  • 승인 1999.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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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시장의 독점과 경쟁시장을 지키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다공중파 방송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원죄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경쟁은 좋은 것, 독점은 나쁜 것이라는 경제원칙에 익숙한 이들은, 공중파 방송사가 독과점업체이며, TV시장 내에서 마켓파워를 행사하는 존재라는 지적을 받을 때면 마음이 편치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상시장에서의 독점과 경쟁은 프로그램의 공공재(public goods)라는 속성 때문에 사적재(private goods)와는 다른 모습을 지니며, 때로는 경쟁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독점이 풀어주기도 한다.공중파 방송 채널의 경우 주파수라는 제한된 자원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널의 수가 물리적으로 제한되어 왔다. (물론 디지털화 되면 많은 부분 해소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한된 자원이다.) 특히 소수의 제한된 채널 하에서는, 경쟁은 시청자를 차지하기 위해 인기 있는 장르를 중복 편성하지만, 독점의 경우는 시청자 중복(Audience duplication)을 피하기 위해 경쟁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제한된 채널 하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3대 메이저 네트워크의 프라임 타임 편성표가 거의 동일하며, 마이너 네트워크들도 그다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KBS와 BBC와 같이 한 주체가 2개의 채널을 소유한 경우, 보다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두 채널이 서로 다른 프로그램유형으로 대응편성(counter-programming)하여, 경쟁 때보다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그리고 무제한적 채널증가도 시청자의 복지를 위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채널이 무한정 증가하면, 기존의 제한된 채널 하에서 소외받던 소수취향의 프로그램들이 편성될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 파편화 현상이 일어나고, 이때 광고 시장이 채널 수만큼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채널당 수입이 줄어들고, 결국 제작비도 줄어든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다양성은 확보되지만, 그 대가로 프로그램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채널의 증가는 양과 질 사이에 교환현상(trade-off)이 일어나, 영상시장의 경우 독점은 나쁜 것, 경쟁은 좋은 것이라는 단순 모델이 적용되지 않는다.미국 영상물이 지배적인 세계 영상시장에서 자국 시장을 지키고 나아가 수출산업까지 활발히 벌이고 있는 경우로, Global Television and Film의 저자 Hoskins는 브라질의 Globo network을 들고 있다. Globo의 선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1998년 TV재정 규모로 볼 때, Globo는 세계 10위의 회사로 선정되었다. 10위권내에 든 업체 중 7개가 미국의 업체들이고, 일본의 NHK, 호주의 News Corp. 그리고 Globo가 각각 4위, 9위, 10위로 뽑혔다. News Corp의 경우 Fox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활동 기반이 미국인 점을 감안하면, 10대 기업 중 비미국 업체는 NHK와 Globo 둘뿐이다. Globo는 자국 내에서 약 8천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시청자 규모로는 세계 4대 네트워크이다. 90년대 중반 30위 권에서 꾸준히 성장해 10위 권에 진입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언어권으로 8위 언어시장에 속한다. 이러한 제3세계의 선전을 Hoskins는 제3세계 자국 시장의 시청자 집중과 미국 시장의 시청자 파편화 현상에서 찾고 있다.Globo의 경우 브라질 시청자의 약 49%를 점유하고 있어 자국내 자본집중을 이룰 수 있었다. 즉 많은 시청자 규모 때문에 고단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시청자 파편화가 심해, 채널당 시청자 수가 줄고, 결국 자본의 집중이 언어시장 규모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작은 언어시장에 속하더라도, 자국내 자본 집중으로 시장크기의 협소성이란 단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시장으로 보았을 때, 브라질이 속한 포르투갈어 시장은 영어권보다 16배나 작지만, 미국의 Walt Disney/ABC와 비교하면 Globo의 재정 규모는 절반이다. 즉 미국 등 선진국의 파편화된 시장이 3세계에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 시장은 영어권 시장의 1/44이지만, KBS의 재정수입은 1/11이다. Globo의 경우 미국 시장으로는 진입하지 못하지만, 국내 집중을 토대로 다른 언어시장에서 미국의 프로그램과 경쟁해 스페인, 프랑스, 독일, 중국 등으로 프로그램을 수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KBS와 MBC가 Top 100 company에 속하는데, 최근 우리보다 상위 언어시장에 있는 중국에 프로그램을 수출한 것도, 국내시장은 집중이 이루어져 있고 중국시장은 약1000개의 지방방송국들이 혼재, 시장이 파편화되어 있어서, 우리의 프로그램 제작비가 상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처럼, 영상물의 시장 지키기, 나아가 제한적이나마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자국 시장규모가 작은 한국의 경우, 자본의 집중은 필수적이며, 현재의 독과점적인 공중파 방송사들의 위치가 국제 경쟁력에 방해가 되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플러스가 되고 있다. KBS, MBC 그리고 SBS가 국내 시장에서는 공룡으로 지탄받고 있지만, 세계영상 시장에서 보면 결코 큰 덩치가 아니다.공중파 방송사들이 오랫동안 정부의 보호 하에 독과점적인 위치를 누리며 비효율적인 경영을 해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사의 크기가 크다는 것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어서는 안된다. 특히, 자본의 집중과 자국 시장의 크기가 성공 가능성을 좌우하는 세계 영상시장의 현실을 고려할 때, 현재 한국의 공중파들의 독과점적인 위치는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문화관광부의 안처럼, 만일 공중파 방송의 편성과 제작 기능을 분리하여 공중파 방송사를 단순히 편성만 담당하는 작은 단위로 바꾸고, 한국의 TV시장을 군소업체들로 나누었을 때, 그것이 과연 국제 경쟁력을 위한 길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경우, 세계 영상시장에서의 국제경쟁력이란, 미국과 같은 거대시장과 싸워 이긴다는 개념이 아니라, 시장을 지키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 우리보다 작은 시장으로의 진출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173호(1999년 8월 19일)부터 연재했던 ‘윤미현 PD의 영상경제학’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관심을 가져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영상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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