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월급쟁이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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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월급쟁이 블루스
  • 김현정 CBS PD
  • 승인 2008.02.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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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CBS〈이슈와 사람〉PD

#1 “자, 생활비는 이 정도, 관리비에 우유값, 보험… 이만큼은 주택청약 붓고, 이만큼은 정기예금에 넣어두어야지. 근데 정기예금 이율은 어디가 높을까? 어디 보자….”

▲ 김현정 CBS PD

갑자기 발동이 걸렸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고 온 날이면 그네들의 교육비 타령, 집값 타령 등등을 듣다가 상당한 자극을 받곤 한다. 그래, 올해부터는 나도 돈이란 걸 좀 모아보자. (통장을 붙들고 씨름을 시작한다. 도대체 열심히 벌고 허투로 쓴 일 없는 데 어째 이리 돈이 안 모였을까?) 아무래도 목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정기예금을 이용해야 되는가보다. 이율 비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나 같은 월급쟁이들이 수두룩하게 모여서 이 은행의 이 상품이 이러니저러니 토론중이다. 0.1%라도 더 주는 은행을 찾겠다고 전국 은행을 다 뒤질 태세다. 천만 원을 1년 넣어둔다고 했을 때 이자로 사십 몇 만원을 받는 데에서 ‘몇 만원’이 얼마가 되는 가는 기분 상 상당히 중요하다나. 1년 후면 얼마, 2년 후면 얼마… 흐뭇한 웃음이 절로난다. 

#2  “새 정부 장관 내정자들의 평균 재산은 39억 원으로 최대 자산가 문화부 장관 내정자는 140억 원을, 여성부장관 내정자는 전국에 40여 건의 부동산을, 환경부 장관 내정자는 골프장 회원권 3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뉴스만 아니었어도 나는 계속 흐뭇했을 것이다. 그 다음 해명은 나를 더 초라하게 했다.

“유방암 검사를 했는데 암이 아니라는 결과를 보고 남편이 기뻐하며 서초동 오피스텔을 사줬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교수 부부가 30억이면 양호한 것 아닌가”

월급쟁이가 열심히 벌어 39억, 심하면 100억도 모았다는데 박수대신 허탈한 감정이 밀려오는 건 왜일까. 20년 동안 월급쟁이 했으면서 아직도 교육비를 걱정하는 옆 자리 선배와 30년 벌었는데도 집이 한 채 밖에 없는 우리 상사와 골프클럽 회원권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해본 부모님이 ‘천하의 게으른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3  가난이 죄가 아니듯 부유한 것도 죄는 아니다. 편법, 불법 그리고 직위를 이용한 고급정보를 통해 축적한 것만 아니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부(富)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동안 편법, 불법에 의한 부(富)를 너무도 자주 목격해온 우리는 장관 내정자들의 그것을 보며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제 인사청문회가 시작된다. 아무쪼록 그들의 부에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그래서 ‘월급쟁이가 떳떳하게 이만큼 모으는 법’이라는 공개 강의라도 편성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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