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진보 사장 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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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진보 사장 되고자 노력했다"
[인터뷰] 임기 마치고 물러나는 최문순 MBC 사장
  • 오마이뉴스 백병규 기자
  • 승인 2008.02.29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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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어렵다"는 말로 시작했다.
지난 21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평양 공연 때문에 방북을 앞둔 이틀 전 여의도 MBC 경영본부 사장실에서 최문순 사장을 만났다.

이 인터뷰는 꽤 오래전에 잡혔다. 지난 1월 중순 최문순 사장이 연임하지 않겠다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입장'을 밝힌 다음 바로 전화를 했었다. 사장실을 통해 연결된 최문순 사장은 "그만두는 마당에 무슨 인터뷰냐"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사장 취임 후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말했다. 지난 3년을 한 번 정리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 경험을 사람들과 나눠야 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당신의 길을 다시 밟을 때 그 안내자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하되 새 사장이 선임된 뒤에 하자고. 지난 2월 15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은 차기 MBC 사장으로 엄기영 전 앵커를 선임했다. 오늘(29일) MBC는 주총을 갖고 엄기영 전 앵커를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는 절차를 밟는다.

노조위원장 출신 최초의 방송사 사장이자 언론사 사장이었던 최문순은 이제 자연인 최문순으로 돌아온다.

▲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최문순 MBC 사장은 "유능한 진보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자연인으로 돌아온 최문순, 그의 화두는 '진보'

그의 화두는 '진보'였다. '유능한 진보'였다. 왜 진보는 무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기도 했다. '유능한 진보'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었다고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에 고맙다고도 했다. 적어도 인사 압력 같은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정말 없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압력'이라고 느낄 만한 일은 없었던 듯했다.

그의 발언 중에는 언론계, 특히 그의 후배들인 언론노조 운동을 하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민감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주요 쟁점이 되는 방송통신위원회 구성 등에 관해서 '제도'보다는 '사람'에 방점을 찍은 발언 등이다. 하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그가 그런 문제에 대해 결코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진보세력이 여전히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 있지 않느냐고 화두를 던졌다. 기존의 보수와 진보, 공영대 민영, 보수와 진보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진보의 활로를 찾기 어렵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급격한 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서 진보세력이 활로를 찾자면 현실의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속에서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개혁언론들일수록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시대의 변화를 앞서가는 혜안과 인간에 대한 존중,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언론계가 이제는 당파적 대립이라는 소모적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소유와 경영에서 편집의 분리뿐만이 아니라 경영이 편집에서도 분리돼야 한다고도 했다. 서로 지향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논조가 다르고, 서로 다툰다고 하더라도 이제 '경영'은 편집에서 분리해 서로 '공생'의 방안을 찾는데 협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MBC 노조 위원장이던 시절이나, 언론노조 위원장이던 시절에 ‘좋은 사람’으로 통했다. 항상 소탈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양보할 수 없는 지점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기질은 그가 기자로 활약했던 때 주로 치열한 현장 고발에 주력했던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 최문순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인간 최문순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MBC 사장이라는 3년 세월에도 사장실에서 만난 최문순은 기자 최문순, MBC 노조위원장 최문순, 언론노조 위원장 최문순 때와 다르지 않았다. 가끔씩 터트리는 그의 소탈한 웃음도 여전했다. 그것은 인터뷰하는 사람으로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의 3년 재임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린다. 특히 황우석 사태와 X파일 보도 사건 등을 겪으면서 그의 리더십도 큰 상처를 받았다.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공영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는 기대에도 미흡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제 평가는 온전하게 그의 몫으로 남았다. 그에 대한 평가에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금은 긴 인터뷰 기사가 됐다.

▲ 최문순 MBC 사장 ⓒ 오마이뉴스 유성호
인터뷰는 사장 퇴임을 앞둔 인수·인계 문제부터 시작했다.

- 인계작업, 인수작업은 잘되고 있는지요? 인수위 활동에 문제는 없는지요?

  "우리는 잘 되고 있습니다. 원만하게 잘 되고 있습니다."

- 모레 평양에 가시는 거죠?

"23일 갑니다. 뉴욕필이 26일 동평양극장에 공연을 하고, 그 다음 날 한 번 더 공연이 있고, 27일 서울로 와 28일 공연을 갖습니다. 역사적인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의 소련이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뉴욕필이 공연하면서 시작됐는데, 이번 뉴욕필 평양 공연을 계기로 한반도의 지형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다른 방송에서도 하고 싶었을 텐데….

"처음부터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에 MBC가 하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북한 대외사업을 하는 대붕실업이라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진행해오던 것이 영 진척이 안 되다가 갑자기 진행이 됐어요. 북한하고 미국 양쪽 입장이 맞아떨어진 것이죠. 미국에서도 흔쾌히 동의를 했는데, 사실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부시 미 대통령이 직접 결정했다, 이렇게 봐야 할 것 같아요."

MBC는 뉴욕필의 평양공연과 서울공연 비용을 댔다. 기술진도 70여 명을 파견했다. 전 세계 생중계를 MBC 기술팀이 모두 맡아 했다. 고화질 화면에 5.1 스테레오 음향의 방송이어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최 사장은 역사적인 일인데 대통령 취임식 등으로 언론의 주목을 잘 받지 못하는 것 같다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의 기우와는 달리 뉴욕필 평양 공연은 역시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본격 인터뷰로 들어갔다.

"처음에 제가 취임할 때 쓰나미라고 했습니다"

- 연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을 때 왜 그랬을까 싶었습니다. 정권교체기여서 상당히 민감한 때이기도 했고, 또 개인적으로는 미진함도 있었을 텐데요.

"연임할 힘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3년 동안 힘을 아껴서 하지 않겠다, 그렇게 이야기했었고, 취임사에서도 이 자리를 내 자리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남들은 미진함을 느끼거나 그러지 않겠느냐고도 하는데 저는 전혀 미진함도 없고, 유감도 없는 상태입니다.

왜 그러느냐면 처음에 제가 취임할 때 쓰나미라고 했습니다. 쓰나미…(예의 '허허허허' 하는 그의 웃음이 터졌다. 그는 민감하거나 혹은 굉장히 어려웠던 이야기를 할 때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노조위원장 출신인데다가, 나이도 49살이면 최연소라고 그러는데, 난 그건 잘 모르겠고, 부장 대우 그래가지고 너무 파격적이다 보니까 너무 부담이 컸었습니다. 그래서 배수의 진을 친 경영을 해야 되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었기 때문에 한번으로 끝내자 그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컸던 것도 부인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스트레스는 제 개인보다도 유능한 진보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것이 사실은 많이 있었습니다. 진보는 무능한가, 무능하다면 왜 무능한가, 진보라는 말 자체가 앞으로 나가는 건데, 앞으로 나가자는 사람들이 왜 뒤로 처지는 건가, 진보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 이런 것은 자본주의와 양립되지 않는가,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인가, 성장과 정의는 양립되지 않는가, 이런 것들 등등에 대한 강박이랄까 실험도 있고, 그런 게 의외로 있더라고요. 나 나름대로는 낙관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 같은 것을 너무 오래 버티기는 좀… (허허허허)."

- 3년이란 기간이 길면 길겠지만 어찌 보면 짧은 기간일 수도 있겠는데요, 또 스트레스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만 어쨌든 최문순 사장이 취임할 때 여러 가지 기대가 많았던 같습니다. 특히 엠비시 위상과 관련해 최 사장 취임 때 공영성을 더욱 강화하지 않겠는가, 그런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최문순 체제가 MBC의 공영성을 과연 얼마나 키웠느냐, 미진했다, 더 가혹하게는 공영성을 크게 기대했는데, 공영성은 도대체 어디 간 것이냐 이런 평가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먹고사는 문제, 시장에서의 방송의 경쟁력이랄까요 이런 점에 대한 주문이랄까 요구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중첩되는 요구, 이런 딜레마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것 같은데, 지난 3년 MBC 사장으로서의 평가 스스로 해보신다면….
"정확한 지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좌파로부터도 공격을 받고, 또 한편으로는 우파로부터도 공격을 받고, 시장주의자로부터도 공격을 받고, 공영론자로부터도 공격을 받는 그런 상황이 됐던 것 같아요. 그거에 대해서는 저도 어떻게 답변을 해야 될 까 고민스러운데,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 내세웠던 구호가 생각납니다. 시장경제는 ‘예스’, 그러나 시장사회는 ‘노’다, 이런 말을 했다는데, 저도 이걸 내놓고 따라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첫 번째 명제가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된다는 것, MBC뿐만 아니라 <오마이뉴스>, <한겨레>든 어디건 우선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경영성과, 회사를 유지해나갈 재정적 안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가 아닌, 시장 사회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시장적인 노력, 즉 공영성도 중요하다고 봤죠. 그것을 얼마나 했느냐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힘닿는 데까지는 노력했다고 봅니다.

뉴욕 필 평양 공연이랄까, 돈이 전혀 안 드는 황우석 사태라든가, 사회공헌센터, 전임 사장이 만들었지만, 이를 통해서 하는 데까지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미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실제 미진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뉴욕 필 평양 공연 같은 경우는 저 나름대로는 역사에 남을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물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이 점에서 확연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 비판적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뉴스나 프로그램에서 공영성을 높이는데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던 게 아닌가 지적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우리나라 공영성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공영성은 원래는 소유구조를 의미하는 것이죠. 국가의 소유로부터도 벗어나고, 개인의 소유에서도 벗어나 있는 그런 소유구조를 말하는 것인데 그런 뜻에서는 점에서 MBC는 완벽하게 공영방송입니다. 그게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연결되느냐, 그런 점에서는 공영성의 개념도 계속 바뀌어나가고 있는데, 군사정권 시절을 거쳐나가면서 공영성이라고 한다면 주로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었죠. 그런 점에서는 결코 양은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 최문순 사장 ⓒ오마이뉴스 유성호
<뉴스 후>라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졌고,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도 새로 선을 보였죠. 황우석 사태 같은 경우도 회사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했지만, 그것이 드라마나 예능처럼 급격한 변화를 확실하게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보도 분야에서도 변화를 추구했는데, 세트도 바꾸고 심층보도를 늘리고 출연료를 늘리긴 했지만 아마 시청자들에게 큰 소구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템포가 좀 다른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예능은 좀 빨리 가고 보도는 좀 속도가 늦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점은 차기 경영진에 잘 인수인계해서 시청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그런 점에서 기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드라마 쪽에 더 신경을 많이 쓰신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한때 그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와 '최문순'이라는 이름을 연결지어 '사순이'로 통한 적도 있다).

"그런 것은 아니고 보도는 물론 시사, 예능, 드라마나 기술, 경영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추구해왔는데, 조직 특성에 따라서 그 속도가 다른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예능은 시류를 빨리 따라가는 장르이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가 빠른 반면 보도나 시사는 조금은 늦는다고나 할까요."

"조직 내에는 우파적 억압이 있기 마련... 우파적인 억압은 바로 자본과 권력"

- 3년 전 사장직에 출마하실 때 제시했던 10대 목표가 있었지 않습니까. 목표 달성 어떻다고 자평하시는지, 또 그때와 견주어 방송 환경은 어떻게 달라지셨다고 보는지, MBC의 위상이나 내부 조건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시는지?

"제가 그때 조직의 활력과 자신감을 살려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활력과 자신감 문제는 바로 MBC든 어디든 억압이 있다는 것이죠. 조직의 억압 문제와 직결됩니다. 조직 내에는 우파적인 억압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파적인 억압은 바로 자본과 권력이죠.

좌파적인 억압이 있는데 엄숙주의, 도덕주의, 공영성에 대한 교조적 해석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억압을 사장, 경영진이 제거를 해주어야 조직의 활력이 살아난다고 봅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일선 제작진을 완전히 지켜주는 것, 좌파적인 억압에서 지켜주는 것 나름대로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활력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많이 살아났다고 봅니다.

특권의식에 관해서도 관계의 역전이란 말을 했습니다. 독과점적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잘 아시다시피 특권의식이 생긴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오랜 군사독재정권 시절 권언유착을 하면서, 생존과 독과점을 보장받으면서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하면서 언론인들이 호가호위하고 특권의식을 가지게 된 거죠. 권력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다행히 참여정부에서는 완전히 결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에 정권이 방송에 대해서 권력이 프로그램 편성이나 인사에 많이 개입을 해왔는데, 참여정부에서는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인사건 같은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는데, 이런 점은 참여정부를 높게 평가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참여정부가 다른 언론과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이 부문만큼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하다 하다가 완결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 문제는 언론이 권력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것은 잘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하고 많이 이야기했지만, 권력이 우리에게서 손을 뗀 만큼 우리도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된다, 호가호위상태를 빨리 벗어나야 된다고 했지만 완전히 내려오지는 않았지 않느냐, 완전히 권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고 있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더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시청자들과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도 국민들을 교화대상으로 삼고 있거나 시청자들에 대한 우월주의 이런 게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 권력과 방송의 관계에서 권력은 손을 뗐다고 하셨는데, 회사 내부의 권력관계는 어떨까 싶습니다. 외부에서는 이런 시각이 있습니다. 권력이 손을 뗐다고 하지만 경영진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시각 말이죠. 가령 탄핵방송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편파 시비가 있지 않았습니까. 또 KBS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노조에서도 방송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바로 경영진이 권력을 대리해, 혹은 경영진이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방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텐데요. 보도의 방향이나 논조에 대해서 얼마나 개입을 하셨는지….

"저는 보도의 방향에 대해서 결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대목에 이어 말한다면 정치는 분명히 손을 뗐습니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들은 아직도 탈정치화가 안 돼 있는 거예요.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탄핵방송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대선 때 보도 역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구성원들은 정치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고, 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도 정치적으로 사고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다만 언론사에 따라서 자기 성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다르듯이 MBC와 SBS가 다 각각의 성향이 있는데 이를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재단해서는 언론의 발전을 억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할 수 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과 편집의 분리, 이것은 언론의 글로벌 스탠다드"

-조금 다른 시각입니다만, 일부에서는 MBC는 노영방송이다, 주인이 없는 회사란 외부의 시각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공영방송의 최종적인 리더십은 그러면 누가 행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공영방송에 대해 주인이 없어 문제다, 이런 식의 문제 제기도 한편에서는 있지 않습니까. 좀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과 편집의 분리, 이것은 언론의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입니다. MBC 같은 경우는 완전히 돼 있습니다. 소유가 경영, 저한테 간섭하지 않고, 제가 경영의 필요에 따라서 편집 편성에 간섭하지 않는 것은 거의 100% 완벽하게 돼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제작 일선에서는 정치적인 시각이나 경제적인 시각 면에서 다양한 시각이 표현될 수 있는데, 그것을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고 참아야 하지 사장이 나서서 전부 간섭하거나 개입한다면 그것은 퇴보고 군사정권시대로 되돌아가는 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논조가 못마땅하다거나 생각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내하고 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 어찌 보면 MBC 같은 경우는 전례가 없는 내부 민주주의의 실험을 해나가는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구성원들의 자율성 못지않게 책임성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노영방송이다, 이런 외부적인 시각에는 당신들 편한 대로만 하는 것 아닌가, 쇄신이나 시대적 요청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려는 노력이 소홀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요.

"그 부분은 편집 편성권과 관련 없이 경영상 방만함 같은 게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그런 방만한 구조는 대부분 해소가 됐고, 또 지금의 구조가 과거의 독과점적 구조 때와는 많이 달라 그런 방만함은 많이 줄었습니다. 또 그런 점이 있다면 사회적 감시에 의해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편집 편성 문제나 민주주의 기본원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 노조위원장을 지냈던 분으로 MBC 경영 총책임을 맡으셨는데,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협조와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또 그런 점에서는 구성원들에 대한 섭섭함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자발적인 동의, 자발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외부로부터 간섭이 없어야 합니다. 정치적 독립, 재정적 독립, 어떤 언론이든 언론을 정상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두 개의 바퀴인 거죠. 그래서 저도 이 두 가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경영의 핵심으로 삼았고 어느 정도 발전이 됐다고 봅니다. 그게 되니까 자체 내에서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지고 조직의 활력도 살아났다고 봅니다.

정치적인 개입 등이 있게 되면 의사결정이 왜곡되고, 조직이 분열돼 단합된 힘을 내지 못하게 됩니다. 경영진이 옛날에는 노조가 했던 일을 경영진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함으로써 완전히 됐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MBC의 활력과 자율성을 어느 정도는 살려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직의 활력을 살려내는 일, 언론사 경영의 가장 핵심적인 일 가운데 하나인데,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경영진과 위에 몰려 있던 권한을 대부분 밑으로 내렸습니다. 예산권, 인사권, 재정권, 여러 가지 의사결정 구조를 과감하게 위임했습니다. 각 조직 단위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구조로 하고, 경영진에서는 전체적인 방향을 조정하는 이런 방향으로 해 왔습니다. 아직 다 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상당히 진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젊은 CEO가 취임하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연배가 많으신 분들이 치인다거나 조직상으로나 소통상의 문제나 이런 점은 없었는지요?

"있었습니다. 제가 취임하면서 저보다 선배분들이 2백여 분 계셨는데…. 그분들이 현장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잘 모셨어야 되는데, 회사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그분들이 많이 불편했을 것 같고,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MBC가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회사 차원에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최근 들어 MBC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이 무척 강세를 보인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MBC의 강점으로 평가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특히 드라마 쪽에 신경을 많이 쓰시지 않았나 싶은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은 아닙니다. 다만 드라마나 연예의 경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속도가 빨랐던 것이고, 반면 보도나 시사는 비교적 원칙을 지켜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변화가 조금 더뎌 보일 뿐이지 시대 변화를 따라가기 위한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만 드라마나 연예 분야가 그동안에는 조금 사회적으로 평가 절하돼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 같은 경우 한류의 핵심 원동력이고, 국가와 기업 발전에 중차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장금> 같은 경우 전 세계 70개국에 보급됐는데, 이란 이스라엘 터키 헝가리 짐바브웨, 러시아 등등에 다 나가 있습니다. 그런 지역에 가면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고 기업의 매출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공영 장르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가능하죠. 그동안 드라마나 예능은 비공영장르이고, 조금은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고쳐야 할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에서도 정책적으로 지원이 필요합니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도 외국에 포맷을 수출하고 있는데, 이런 것도 잘 키워야 할 장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 시청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방송 드라마 소재를 보면 너무 제한돼 있지 않나 싶기도 한데요.

"초창기의 한류가 독이 된 측면이 있습니다. 초창기 한류를 불러일으킨 드라마들이 주로 애정관계 중심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들이었는데, 그것이 히트를 치니까 전부 다 2~3년 한동안 그런 쪽으로 만들다가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싶어 이제 전환을 하는 중입니다. 소재도 다양화하고 작가도 새롭게 발굴하고, 수출선도 새롭게 찾는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 소재발굴 새로운 포맷 등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특히 MBC가 주력하고 있는 부문이 있는지요?

"CSI라고 있잖습니까.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수출된 드라마인데, 우리도 그런 시즌제 드라마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옥션하우스>니 <비포앤애프터 성형외과> 같은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또 새로운 작가 발굴을 위해 사내벤처를 만들어서 운영하고도 있는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국과수 문서 검증이 잘못됐다는 것을 고발했던 홍순관 기자가 그 사장을 맡아서 드라마를 만들고 있습니다."

최문순 사장 인터뷰 얼마 전에 외부 제작사들이 연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드라마 등의 저작권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연히 저작권은 자신들에게 있어야 하는데도 방송사들이 해외 판매 저작권을 갖는 등 불평등한 계약을 강제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 프로덕션 제작사들이 저작권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구조적인 문제인데요, 드라마를 만드는 재원이라는 것이 광고공사에서 정해져 있는 광고의 가격을 가지고 지불을 하고 있는데, 그 광고 수입이 제작가격을 낮습니다. 탤런트들이나 작가들에게 지불하는 비용을 비롯해 제반 제작비용을 지불할 수 있지 못합니다. 하나는 완전히 시장의 지배를 받고 있고, 하나는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는데, 시장과 국가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지점에 외주사와 방송사들의 갈등이 있습니다. 문화관광부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외주사는 외주사대로, 방송사는 방송사대로 힘든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언론의 존엄 훼손, 언론의 존엄 유지하기가 아주 어려운 상황", 그 해법은?

- 취임하실 때 전환의 시점에 서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방송환경 급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방송환경의 변화에 지상파로서, 또 공·민영 체제 속에서 MBC의 진로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정치권에서는 민영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언론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밀레니엄 2000년을 기점으로 아주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채널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 금융자본을 앞세운 자본주의의 역동성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올해 IPTV가 되면 채널이 천개 정도 될 것입니다. 또 글로벌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미디어시장이 3대 메이저에 의해 재편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급격한 팽창, 다른 한편으론 글로벌화 추세가 모든 언론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신문 방송을 가리지 않고, 온라인 오프라인을 망라해 우리나라 언론을 규정하고 있는 단어는 영세성, 재정적 어려움, 생존의 어려움입니다. 언론의 존엄이 훼손되고 있고 언론의 존엄을 유지하기가 아주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해법은 우선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각각 언론사마다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장이 작기 때문에 글로벌화 노력이 필요합니다. MBC 같은 경우 다큐멘터리 등을 해외에 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또 고급화가 필요합니다. 개별적으로 이를 이겨나갈 수 없기 때문에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철저하게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국가 전략으로 풀어주어야 합니다. 방송이나 언론은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 정책은 기본이 채널정책으로 돼 있습니다. 케이블 채널을 늘릴 거냐, IPTV를 늘릴 거냐, DMB를 늘릴 거냐 하는 식이죠. 그러나 정작 콘텐츠 정책은 없습니다. 어떻게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거나, 그러자면 소프트웨어와 사람을 키워야 하는 데 이게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질평준화 하향평준화가 되고 있습니다. 채널정책을 콘텐츠 정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 규모의 영세성 문제, 규제의 장벽을 낮추고 언어의 장벽이 있다고 하더라도 글로벌화에 상당한 한계가 있지 않는가 싶은데. 방송도 그렇지만 특히 종이신문 같은 경우에 방송에 비해 생존의 여건이 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신문 방송 겸영 문제, 이런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는 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정책을 보면 아주 단편적이고 파편적이고 단말마적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굉장히 중층적이고 입체적이고 다기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우리 언론계가 겪고 있는 문제 전반을 놓고 어떻게 입체적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MBC 민영화를 하면 해결이 되느냐, 신문 방송 겸영을 허용하면 해결이 되느냐? 안됩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죠. 우리 언론이 겪고 있는 문제들 공·민영 이분법이나 민주 반민주 이분법으로 해결이 되느냐? 안됩니다. 그래서 국가, 당사자, 독자 시청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다 같이 생각하는 그런 모색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그런 입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면 폭넓은 합의가 필요할 텐데요. 그런 논의나 합의를 가로막는 것이 정치권의 당파적 이해다툼, 언론이나 우리 사회의 당파적 대결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이 있을지요?

"당파성이 서로의 발목을 잡고, 서로를 죽어가는 이런 것인데, 그것도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봅니다. 경영과 편집을 분리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야기할 때 경영에서부터 편집이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편집으로부터 경영도 분리돼야 한다고 봅니다. 각각의 논조는 서로 다르고 싸우더라도 경영적 위기만큼은 같이 해결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힘을 모으고 같이 풀어나가는 그런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편집에서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 무슨 말인가. 언론사 차원에서는 물론 언론계 전반이 공생을 위해 논조나 입장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계 최대의 현안이 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법에 대해 물었다.

"방통위가 앞으로 정파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부터 위원들은 정파적으로 행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이, 혹은 여당이, 야당이 임명했다고 하더라도 방통위원들이 독립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 할 수 없게 됩니다. 방통위원회, 즉 위원회라는 존립 근거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죠. 영국의 BBC 같은 경우 사장을 여왕이 임명하지만 임명되는 순간 딱 돌아섭니다. 그 순간 중립지대로 가버립니다. 그것은 문화와 관련된 일인데, 방통위원으로 임명된 5명이 정파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정말 우리나라의 방송과 통신 전체를 보고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봐주었으면 합니다."

▲ 최문순 사장 ⓒ오마이뉴스 유성호
- 기존의 방송위원회를 보면 바로 갈수록 더 당파성이 더 심해졌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

"방송위원회라는 게 정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정치의 통로가 돼버린 것이죠."

그가 제도의 문제보다는 사람의 문제를 강조했던 점도 바로 이런 방송위의 파행 운영 때문인 듯했다. 제도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문제, 문화의 문제라는 문제의식의 반영인 듯했다.

"방통위 문제 정파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황우석 사태 때 가장 어려웠다"

- 새 정부, 새 정권에 꼭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까지는 간섭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다고 봅니다. 되돌려서는 안 됩니다. 방통위원회에서도 정파적으로 행동하면 아주 무능하게 됩니다. 이것을 통렬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정파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유능하게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우리보다 후진국도 다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에도 IPTV 이미 시작이 됐고, 중국도 우리보다 기술은 늦었지만 정책은 빨라서 먼저 가고 있습니다.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자면 이 분야만큼은 정파적, 당파적 이해를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그런 기대는 기대로 끝날 것 같다. 최문순 사장과의 인터뷰 이후 새 정부가 초대 방통위원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라는 말까지 듣는 최측근 인사인 최시중 전 갤럽 회장을 내정했기 때문이다. 최문순 사장의 말처럼 이명박 정부는 '무능한 쪽'을 선택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물었다.

-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언제였는지요?

"황우석 사태 때가 역시 가장 어려웠습니다. 황우석 사태 때는 저도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제보가 들어오면 내도 죽고, 안 내도 죽고 이렇게 돼 버리죠(허허허). 1차 보도가 나간 다음에 엄청난 역풍이 불고 내부도 분열이 되고 2차 보도를 결정을 못 하고 있었죠. 2차 보도를 낼 때 경영진이 이 방에 모여 2차 보도를 내고 전원 사퇴를 하기로 결정을 했죠. 그날 저녁에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이 줄기세포 없다, 이렇게 발표를 해 다행히 제가 여태까지 사퇴를 안 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이냐, 진실보도를 할 거냐, 회사를 위기에서 구할 것이냐, 이런 고민이 있었는데 진실보도를 하는 쪽으로 경영진이 선택한 것이 지금 와서는 잘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때 우리 사회에 아직도 파시즘의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런 흐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봅니다. 어렵고 이런 때에 잘못하면 파시즘으로 갈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걱정이 됩니다. 그때 제보자들이 취직을 못 해서 MBC에 취직을 시켰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런 점에서는 덜 성숙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는 그때가 MBC가 창사 46년 동안 겪었던 위기 가운데 가장 어려운 위기였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존립의 위기를 느꼈다고까지 했다. 인터뷰 내내 웃음 띤 표정을 잃지 않았던 최문순 사장이지만 이때 만은 조금 달랐다. 그만큼 상처가 깊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 그때는 잠 잘 못 잤겠어요?

"(아하하) 제일 어려운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나나 경영진이 날아가는 거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더라고요.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는 거니까, 그런 점이 사실 제일 고통스럽다고나 할까. 내가 하나 뭐 책임을 지고 끝나면 좋은데, 그게 아니니까…."

차기 사장에 대해 가장 필요한 덕목, 리더십이 무어냐고 물었다. 기자의 질문에 유일하게 그가 답변을 꺼렸던 질문이다. 그래서 재차 묻자 그는 차기 사장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것으로 돌려 답변했다.

"MBC의 사장 자리가 정말 어려운 자리인데, 리더십을 요구하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따라가는 팔로우십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참여 정부 이후 리더들은 아주 독립적으로 선임된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정치적으로도 독립돼 있는 분들이어서 정치적으로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분들을 공격하는 외부의 관점이나 구성원들의 시각에는 지금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들이 빨리 해소가 돼서 MBC든 다른 언론사든 언론사들이 힘을 합쳐서 다들 겪고 있는 경영의 위기, 재정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겨레신문>에도 직선제 같은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젠 정통성 있는 사장들이 다 올라오기 때문에 옛날처럼 정치적인 독립을 확보하는 점보다는 경제적인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게 됐다고, 이슈가 이전됐다고 봅니다." 

▲ 최문순 MBC 사장이 21일 MBC 문화경영 센터 사장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백병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유성호

이야기가 나온 김에 노조위원장 출신에서 사장으로 그 처지가 뒤바뀌어 MBC 구성원들에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 노조위원장 출신이라는 것이 노사관계에 도움이 됐는지요? 경영진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 조금은 가혹할 수도 있는, 냉정해야 하는 그런 대목도 있었을 텐데요. 그런 점에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요.

"처음에는 서로 상당히 어색함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아주 보편화 돼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노조 출신과 비노조 출신이 서로 교대로 사장을 하는 경우가 아주 흔합니다. 또 제가 노조위원장으로서 추구하던 바와 경영진으로서 추구하는 바가 같습니다. 제가 말을 바꾸거나 정책을 번복하거나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정치적인 독립, 경제적인 독립, 이게 기본이고, 더 크게는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 행복추구권을 지향하는 과정에는 어느 자리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일관되게 해왔다, 이를 대립적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노조위원장으로 주장해왔던 것을 사장으로 집행했다,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취임할 때 제시했던 10대 과제도 노조위원장 때 주장했던 그대롭니다."

-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냈던 분으로서 언론사 경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노조나 노조운동을 바라보았을 때 조금은 색다른 느낌, 생각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또 노조 활동이 변화된 대목도 있을 수 있고, 나아가 세대나 문화의 차이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노조보다는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가 오면서 기술의 발전, 자본주의의 역동성 이 두 개가 결합되면서 패러다임이 바뀌어서 지금 언론을 규정하는 가장 큰 어려움이 영세성, 재정적 어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점이 이슈로 이제 들어왔습니다. 시장에서 생존하면서도 공영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제일 어려운 문제가 돼 있는데, 진보진영은 여전히 보수적으로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민주·반민주, 공영과 민영 보수와 진보 이런 식으로는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가령 MBC를 민영화한대서, 우파적 억압이지만, 그렇게 한다 해서 그런 문제가 풀어지지 않습니다. 한겨레를 어디 누구한테 준다 해서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원래 진보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진보라는 게 시대의 변화에 앞서 가는 것인데, 세상의 변화를 명민하게 관찰하고 입체적으로 내려다보고 입체적으로 대응방안을 만들고 사회적으로 똑바르게 움직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바탕에는 진보의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보수 진영에서는 성장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인간이 사라진 그런 모습들 아닙니까. 성장을 위해서는 인간의 가치를 좀 무시해도 된다, 이런 건데 인간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그런 모임과 토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론의 전망이 밝지 않다, 사회적인 존경심도 많이 줄어들었다"

최문순 사장과의 인터뷰 후에 한 언론계 모임에서 최문순 사장 이야기가 나왔다. 그의 퇴임 뒤 행보가 역시 관심거리였다. 모임 중에 있던 한 분이 "최문순 사장이 '비욘드 더 레프트(beyond the left)', 즉 좌파를 넘어서는 활동을 하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들 그게 무슨 말일까 궁금해했지만,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가 인터뷰 내내 밝혔던 '유능한 진보'의 문제가 그의 화두인 것은 분명했다.

- 김은혜 기자가 청와대로 갔는데요. MBC 안에서 많이 아꼈던 기자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비단 MBC뿐만이 아니라 여러 언론사에서 젊은 기자들, 능력 있는 기자들이 떠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기자니 언론의 위상과 관련된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깊이 관련돼 있는 문제죠. 언론의 전망이 밝지 않다, 사회적인 존경심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봐야겠죠. 그것을 제일 먼저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언론인들 자신이어야 하겠죠. 지금처럼 정파적으로 분열돼 있어서는 안 되고 다시 한 번 추슬러서 스스로 언론의 존엄을, 인간의 존엄을 좀 더 고양시키기 위한 언론의 존엄을 확보하는 일을 스스로 먼저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MBC에 있으면서 제일 못했던 것이 그것을 MBC 사장으로서만 진행했다는 것인데요, 방송협회 회장까지 했으면서도 언론계 전체적으로 그런 일을 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습니다."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됐다.

- 지금 다시 기자를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지요. 기자 최문순 상당히 근성이 있고 고발성·현장성에 주목했다는 기자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다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하하하하) 말씀하신 것처럼 주로 그런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칼잡이라는 별명까지 있었는데요, 남을 고발하고 하는 일이 그 당사자로서는 굉장히 괴로운 일입니다. 이제는 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 어떨지요. 사모님께서는 기자 최문순, 노조위원장 최문순, 사장 최문순 가운데 어떤 모습을 가장 좋아했는지요. 사장 최문순에 대한 평가는 어땠는지요?

"우리 집사람은 저 노조위원장과 사장 중에 사장을 더 반대하더라고요. 노조위원장은 정규직인데, 사장은 비정규직이라고요. (하하하하) 그 관점이 저희하고는 좀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 관점이 기본적으로는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더라고요."

- 젊은 CEO였고, 그래서 한참 일할 나이이기도 한데요. 주변에서는 최문순 사장께서 MBC 사장을 그만두고 무엇을 하실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노조위원장 출신의 사장, 그 이후에 대해 궁금한 분들도 많고 또 걱정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는 즉각 '세일즈'에 나섰다. 누구 '최문순' 필요한 사람 없느냐고.

"제가 사장 취임하고 인터뷰를 한 번도 안 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하는 이유는 인터뷰 기사 잘 써 주셔서 그것 읽어보고 저 쓰실 분 연락 좀 주시라고…(하하하하) 아직 특별히 구상은 없고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같이 또 서로 모색을 하면서 잘한 점도 있고 못한 점도 있는 데 서로 많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또 서로 정비해서 반성할 것 반성하고 얻은 것 정리해서 사회를 위한 일 잘해야겠죠."

그가 필요한 분들은 즉각 연락을 주면 되겠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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