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작기]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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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묵〈MBC스페셜〉'대한민국 대통령' PD

〈MBC 스페셜〉 ‘대한민국 대통령’ 2부작이 방송된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무슨 재주와 연줄로 청와대를 뚫었나?”였다.

권력의 중심이자 구중심처로 표현되는 청와대는 그 동안 방송에 노출된 적이 없다. 아니 대통령과 청와대라는 존재를 애초에 카메라를 들고 줄창 쫓아다닐 수 있을 거라는 엄두를 낸 적이 없었다. 그 만큼 뭔가 특별한 섭외 스토리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할 법 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나는 시작은 불행히도 세간의 관심을 충족시킬 만큼 드라마틱한 속내가 숨겨져 있지 않다. 지난 10월 나는 남북 정상회담에 운 좋게 따라나설 수 있었고, 정상회담 기간 동안 PD 풀단으로 참가하면서 회담장 뒤켠에서 하루 종일 밥을 굶거나, 책상에 엎드려 선잠을 자는 비서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친해진―좀 더 정확히는 부딪히다 친해진―몇몇 비서관과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웨스트 윙〉 정도는 안 되겠지만, 최초로 대통령과 청와대를 밀착 촬영하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자고 제안했다.

그러고는 몇 번의 양측 제안서가 오고 간 후 어느 일요일, 갑자기 대통령이 관저로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최소한 어떤 녀석들이 달려들었는지 알고나 시작하자는 의미로 차나 한잔 하자는 자리라고 했다. ‘그럼 뭐 이제 촬영은 시작하는 거구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중순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 지난달 21일, 23일 방송된 MBC스페셜 정치다큐멘터리 2부작 '대한민국 대통령'의 한 장면 ⓒMBC
청와대 측은 혹시 촬영이 될까 하는 곳―NSC 사무처 같은―까지 포함된 많은 곳을 전폭적으로 공개했다. 처음으로 조명 불빛이 비춰지는 곳들이었다. 대통령이 집무를 보고, 국무회의와 각종 공식 행사가 열리는 본관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살림집인 관저, 비서들의 일상 공간인 여민관까지 카메라를 들이 밀면서 이제까지 청와대 담 밖으로는 흘러나온 적 없는 낯선 그림과 비밀스런 이야기를 담았다. 청와대 구내식당은 MBC 구내식당과 비슷했고, 대통령이 사용하는 식기도 봉황 무늬를 제외하고는 약간 고풍스러울 뿐 여염집 식기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모든 처음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는 경찰들인 101단―이들은 작감(작업감독)이라 불린다― 없이는 한군데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고, 경호실 직원들은 촬영팀이 대통령 뒤로 다가서거나, 대통령을 가로막고 서서 인터뷰 할 때 마다 등 뒤에서 허리띠를 잡아끌었다. 특히 대통령 근접 촬영은 대통령의 공식 일정과 동선 자체가 2급 비밀에 해당되고, 분당으로 꼼꼼히 짜여있는 ‘우연’이 없는 자리인데다,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 대통령이 하는 말은 아무리 최대한 공개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복잡함이 있었다. 우린 공개와 비공개의 시간을 반복하면서 겨울 내내 청와대로 출퇴근 촬영을 했다.

촬영의 시작은 단순했는데, 프로그램의 진행은 복잡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겠다고, 비밀의 공간 청와대의 속살을 보여 주겠다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그 화자가 현직 대통령이고, 5년간 국정을 수행한 비서관들인지라 어떤 이야기를 끌어가도 정치적인 편향의 시선을 벗어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말해도 욕먹기 딱 좋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 지난달 21일, 23일 방송된 MBC스페셜 정치다큐멘터리 2부작 '대한민국 대통령'의 한 장면 ⓒMBC
예를 들어 참여정부 들어서서 소수의 실세가 독점적으로 행하는 인사권이 아닌 추천과 검증의 과정을 분리하는 인사 절차를 만든 ‘인사 추천위원회’를 보여준다 하더라도―애초에 이런 편집 과정에 ‘객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의문이지만―이는 참여정부라는 5년을 끌어간 한 정권의 업적으로 일종의 ‘홍보’로만 보일 수도 있고, 한편으론 대통령이 가진 권력 중 하나인 인사권조차도 소수의 독점에서 시스템화 하기 시작한 일종의 대통령 권력의 제자리 찾기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프로그램 조진 것 같아요”라며 내가 애꿎은 전봇대를 붙들고 술주정을 할 때 선배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등 뒤에서 “어깨에 힘 빼고 만들어라”, “유려한 프로그램을 생각해라” 등의 말들을 던져댔다. 난 이 뱃속 편한 훈수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사실을 나열한다고 해서 객관적인 전달이라 할 수 없다. 자료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댄다고 해서 명확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5년의 시간을 짚어주는 것만이 시청자들에게 한 시대의 역사인 대통령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보게 하고, 청와대에서 일한다는 의미를 돌아보는 유일한 방식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통령과 보낸 2007년 겨울. 시청자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에서 무엇을 얼마나 느꼈

▲ 조준묵 'MBC스페셜' PD
는지 난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제작하면서 무엇을 얼마나 느꼈는지는 알듯하다. 어느 날 아침, 조연출은 아직도 내 입에서 술 냄새가 난다면서 대통령한테 술 냄새 피우는 선배가 부끄럽다고 구시렁거리고, 저 모퉁이 돌아 차를 잠깐만 세워달라고 위장은 외쳐대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시대는 변했다고, 낡은 패러다임은 갔다고 하면서 정작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과거의 해석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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