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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신"이 살아있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정헌석<군인>
  • 승인 1997.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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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란 진지하고 완전하여 위험이 있는 행동의 모방”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드라마는 차원 높고 진지한 삶의 반영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세익스피어 역시 인간 속에 내재한 성격적 결함과 갈등 속에 비극의 본질을 찾아 표현하였고, 입센은 ‘인형의 집’을 통해 성(性)의 갈등을 주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켰다.우리 고전도 마찬가지여서 심청전은 효(孝)의 승화를 그렸고, 춘향전은 계급을 넘어선 사랑을 통해 신분상승의 희망을 담고 있다. 또 풍자와 해학으로 당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여 민초들의 한을 정화시켜주었다. 이처럼 드라마의 본질은 분명 ‘인간본연의 삶’을 통해 인생의 참의미를 규명하는데 있다.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tv드라마는 상업주의와 시청률 경쟁이란 악재로 인하여 크게 뒤틀리고 있다. 인간을 탐구하는 드라마 정신은 실종되고, 말초적이며 표피적인 재미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달린 저급 멜로드라마와 값싼 시추에이션 드라마, 베끼기 식의 왜색드라마 등이 넘쳐난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지배계급의 체제유지 수단의 하나를 ‘질(質)의 양(量)화’로 설명한다. 이는 질을 양으로 평가함으로써 진정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가 꼭 질적으로도 우수한 드라마인가? 단적인 예로 50%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kbs 2tv 첫사랑 은 어느 조간신문의 표현처럼 ‘안보면 궁금하고 보면 짜증나는’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시청률을 의식한 무리한 연장 방영이 작품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낸 것이다.요즘 평일은 물론 주말에까지 ‘특별기획’이란 명칭의 미니시리즈가 범람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미니시리즈’를 보기 어렵다. 원래 미니시리즈란 연속극의 연속성과 물량공세를 탈피하고 작품성을 최대한 살려가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형식이 아니었는가. 처음 시작하던 당시 4부작, 길어야 8부작이었던 미니시리즈가 이젠 16부작, 20부작 이상의 ‘미니시리즈’란 이름의 연속극이 되고 말았다. 외화 가시나무새 가 5부작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결코 양의 팽창이 질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물론 제작진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의 압박뿐만 아니라 각종 정치·윤리적인 사슬과 금기사항들 속에서 좋은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검증 받은 내용과 형식보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실험정신’과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또 드라마의 발전과 드라마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연속극보다는 단막극 형식으로 실험적인 작업들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초기 tv문학관 , 드라마게임 , 베스트셀러 극장 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아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는가. 이런 의미에서 폐지되었던 tv문학관이 신tv문학관 으로 부활되어 그 첫작품 길위의 날들 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이나, mbc 창사특집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 깊은 감동을 준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sbs도 단막극 프로그램을 신설한다고 하니 자못 기대가 된다.토니 슈바르츠(tony schwarts)의 말처럼 tv는 제2의 신으로서 현대인에게 종교 못지않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며 삶을 변화시킨다. tv드라마 역시 시청자에게 단순한 극적 재미 외에 인간본연의 삶을 통한 인생의 참의미를 전달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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