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KBS〈9시 뉴스〉가 단독 보도한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자의 대선 여론조사 유출’에 대한 미 국무부 비밀문서 취득 경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국무부 비밀문서가 최 내정자의 의혹이 잇따라 터진 절묘한(?) 타이밍에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KBS〈9시 뉴스〉에 공개된 문서는 미국 국무부에서 보관하고 있는 3급 비밀 문서로 1997년 대선 일주일 전인 12월 12일 당시 한국갤럽 회장이던 최시중 내정자와 미 보스워스 대사의 오찬 회동에서 오간 이야기가 자세하게 담겨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최 내정자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인 시기에 대선여론조사 결과를 전했다. 이는 실정법 위반 사항으로 최 내정자의 도덕적 흠결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결정적인 단서가 된 미국무부 비밀문서는 어떻게 KBS 기자의 손을 들어갔을까. 언론계 일부에서는 최 내정자의 낙마를 이끌어내기 위해 누군가가 KBS 쪽에 문서를 유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특종은 멀리 있지 않았다. 특종을 보도한 김태형 기자에 따르면 미 국무부 문서는 KBS 안 모 기자가 자신의 논문 준비를 위해 미 국무부에 요청한 자료 가운데 포함된 내용이다.
정치학 박사인 KBS 안 기자는 ‘1987년 이후 미국의 한국 대선 개입’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기 위해 지난 2005년 정식 절차를 통해 미 국무부 측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안 기자는 다음해 가을, 미국무부로부터 정보공개 청구한 자료 50건을 받았다. 이번에 〈9시 뉴스〉에 공개된 1997년 12월 주한 미국 대사관이 미국 국무부로 보낸 3급 비밀 문서는 50건의 자료 가운데 일부다. 이 문서는 원래 2022년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미 국무부 차원에서 미리 공개해도 된다고 판단해 안 기자에게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논문준비를 하고 있던 안 기자는 지난 2일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 소식을 듣게 됐고 자신이 준비한 논문에 당시 한국갤럽 회장이었던 최시중 내정자에 대한 이름이 있는 점을 상기, 후배 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린 것이다.
선배 기자로부터 문서를 건내받은 김태형 기자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최시중 내정자의 여론조사 유출을 보도한 것이다. 김 기자는 “이 보도가 나간 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서가 불법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며 “이 문서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받은 것이고, 그 문서 가운데 최 내정자에 대한 부분에 대해 취재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미 국무부 비밀 문서는 A4 사이즈 7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문서에는 최 내정자가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10% 가량의 큰 차이로 이기고 있다”는 내용을 비롯해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가 이 후보의 걸림돌이 되고 있고 이것이 김대중 후보의 선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등의 얘기를 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밖에 KBS 〈9시 뉴스〉는 보도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는 박권상 전 KBS 사장과 한국갤럽 여론 조사가인 정 모 씨가 함께 배석했으며, 정 모 씨는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위험한 공산주의자”라는 평을 한 것으로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