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영애씨 시즌3’ 촬영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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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진 않지만 진솔한 그녀들의 이야기”

지난해 4월 20일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던 〈막돼먹은 영애씨〉(연출 정환석·박준화·최규식)가 성공적인 시즌드라마로 정착하며 지난 7일 시즌3 방송을 시작했다. ‘다큐드라마’라는 독특한 포맷으로 처음 승부를 걸더니, 이제는 지상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최초의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시즌드라마 사례로 기록된다.

시즌3로 돌아온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전보다 조금 더 막돼먹었다. 세상은 여전히 막돼먹었고, 그래서 영애도 막돼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채(정다혜)와 혁규(고세원)의 결혼과 유산, 영애(김현숙)의 독립, 두 여자의 등장이란 새로운 국면을 맞은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3 촬영 현장을 찾아 지난 11일 일산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조금 널널해요. 날을 잘 골라 오셨네.”

박준화 PD가 명함을 건네주며 첫 마디를 던졌다. 그는 “일찍 끝날 거예요”라며 “지난주에 오셨으면 큰 일 났을 뻔 했다”는 축하(?)성 격려 멘트도 덧붙였다. 이날 큐시트에 스물 한씬이 적혀 있어 걱정이 됐지만, “저녁 8시쯤 끝나지 않을까”라던 박 PD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정확히 12시간 뒤,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3개의 씬을 남겨둔 시각이 저녁 8시 30분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 '막돼먹은 영애씨'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는 6mm 카메라 3대뿐!

#1. 6㎜카메라 3대면 OK!

〈막돼먹은 영애씨〉의 촬영은 매주 화·수 이틀에 걸쳐 이뤄진다. 화요일엔 영애의 회사를, 수요일엔 영애의 가족을 배경으로 촬영이 진행된다. 지난 11일은 4회분(28일 방송)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촬영의 주 무대는 영애의 회사 ‘아름다운 사람들’이 위치한 일산. 영애의 사무실과 오피스텔뿐만 아니라 식당과 호프집 촬영 등 대부분이 일산에서 이뤄졌다.

첫 촬영은 오전 8시, 일산 웨스턴 돔의 한 커피숍에서 시작됐다. 시즌3 들어 ‘양다리’를 걸치기 시작한 서현(윤서현)이 지원(도지원) 몰래 은실(김혜지)과 만나는 장면이었다. 6㎜카메라 3대, 조명과 마이크 몇 개, 3개의 촬영 화면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 등이 20여분 만에 세팅 완료. 장비 이동과 세팅에만 몇 시간이 소요되는 여느 드라마 촬영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 대본을 보며 리허설을 하고 있는 '영애'역의 김현숙
“자, 박수 한번 치고.” 박주환 PD의 말에 모두가 박수로 촬영의 시작을 알렸다. 〈영애씨〉는 한 씬이 한 호흡으로 촬영된다. 카메라 위치와 앵글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를 끊어가며 할 필요가 없다. 3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촬영을 하고, 다른 각도의 클로즈업이나 인서트 장면만 별도로 촬영한다. 박 PD도 웬만해선 중간에 ‘컷’을 외치지 않았다. 일단 한 씬이 끝날 때까지 지켜본 뒤 재촬영을 하거나 카메라 감독에게 “괜찮았냐”고 물어본 뒤 ‘OK’ 했다.

커피숍 촬영은 20분 만에 끝났다. 은실 역의 김혜지는 한 씬만에 이날 촬영 끝.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는 김혜지에게 스태프들은 “뭐야, 벌써 끝난 거야? 다음엔 맨 마지막 순서로 해야겠어”라며 부러움 섞인 농담을 던졌다.

#2. 글자를 보지 말고 상황을 보라

영애의 사무실은 바로 옆 빌딩에 자리하고 있다. 일산MBC 드림센터와 나란히 선 건물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센스쟁이’ 사장(유형관)이 빵, 과자와 우유 한 박스를 들고 온 것. 한쪽에서 영애(김현숙)와 지원이 머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사무실을 빙 둘러 마이크와 카메라 세팅이 분주한 가운데, 아침을 거른 스태프들은 한손엔 과자, 다른 한 손엔 우유를 들고 빈속을 채웠다.

우유 한 병을 다 비우기도 전인데 사무실 옆 화장실에서 촬영 준비가 완료됐단다. 볼일을 보려던 중 고향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는 서현. 은실과 빨리 결혼하라는 성화에 짜증이 났다. 큰 키, 말쑥한 외모의 서현의 입에서 “그래유. 됐슈” 하며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터져 나오자 스태프들은 소리도 못 내고 조심스레 웃어댔다.

이번엔 영애와 정원(양정원)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편의상 남자화장실에서 연속으로 촬영했다. 영애는 화장실에 들어가 큰일을 보는데, ‘명품녀’ 정원은 태연하게 화장을 고치며 계속 말을 붙인다. 시즌3에서 신입사원으로 첫 등장한 양정원은 ‘인터넷 5대 얼짱’으로 유명한 얼굴. SBS 〈진실게임〉 등에 실제 출연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연기가 영 녹록치 않다. 김현숙이 “대본을 볼 때 글자만 보지 말고 상황을 보라”고 충고한다.

#3. 정지순 대리가 두명이다?

다시 사무실. 벌써 10시가 넘었는데, 사무실에 걸린 시계는 이제 겨우 9시를 지났다. 사장의 반강요로 서현과 지원, 그리고 ‘도련님’ 원준(최원준)이 아침 체조를 하고 있다. 그때 벌컥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오는 영애와 지순(정지순), 뒤따라 커피를 사들고 유유히 들어오는 정원까지, 이제 ‘아름다운 사람들’ 식구 7명이 모두 모였다.

사무실에서 소화해야 할 촬영 분량은 이날 전체 촬영 분량의 1/3을 차지했다. 찍어야 할 씬은 많은데, 웬일인지 자꾸 NG가 났다. 사장의 늘어지는 애드리브, 정원의 어색한 대사 처리. 박 PD는 어느 하나도 그냥 쉽게 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한 컷을 5번 이상 촬영하기도 했다. 덕분에 점심식사도 12시 반에서 1시간 이상 늦춰졌다.

사무실 촬영이 절반가량 진행됐을 무렵, 〈영애씨〉의 정환석 팀장이 현장을 찾았다. 그때 제작진이 일제히 외친 말. “정지순 대리 왔다!” 배우와 스태프는 한목소리로 “정 대리와 닮았다”, “헷갈린다”며 장난을 쳤다.

▲ 영애의 라이벌 정지순 대리, '아름다운 사람들'의 식구들과 박준화 PD, 신입사원 양정원, 불고기집에서 점심식사 중인 영애의 사무실 남자 직원과 사장.(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부분의 배우와 제작진이 시즌1부터 호흡을 맞춘 지라, 촬영장 분위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배우와 스태프 사이엔 거리감이 없었다. 김현숙은 틈틈이 스태프와 장난을 쳤고, 스태프들도 자연스러운 스킨십으로 친근함을 과시했다. 점심 식사도 대부분의 배우들이 근처 식당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했다. 참고로 김현숙의 식성은 영애일 때나 영애가 아닐 때나 변함없더라.

#4. 영애의 고기 파티

점심식사 후 사무실 식구들은 근처 불고기집에서 또 식사를 해야 했다. 불고기가 지글지글 익는데 이미 식사를 마친 뒤라 식욕이 생길 리가 없다. 사장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우리 고기 많이 못 먹게 하려고 일부러 점심시간 후에 촬영을 잡다니, 머리 썼네.” 멋쩍게 웃기만 하는 박준화 PD. 그런데 영애와 지순은 참 열심히도 먹는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이거 한우예요?”하고 묻던 김현숙은 언제 점심을 먹었냐는 듯 불고기를 입에 꾸역꾸역 넣었다.

고기 파티는 그 뒤에도 계속됐다. 차로 5분여를 달려 도착한 영애의 오피스텔. 이곳에서 영애는 삼겹살 잔치를 거하게 벌였다. 독립하겠답시고 오피스텔로 이사하느라 기력이 쇠해져 삼겹살로 힘을 보충하려는 것이었다. “뱃속을 깨끗이 비웠더니 잘도 들어가네”라며 삼겹살 한 점에 소주 한잔까지 시원하게 들이켰다. “나 살 언제 빼지? 이 작품 〈전원일기〉처럼 가면 나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돼.” 제작진을 향한 김현숙의 푸념에 은근히 걱정이 되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집에 돌아와 또 삼겹살을 구워먹는 영애.
 

〈영애씨〉에 있다! 없다?

HD카메라가 없다?
요즘 TV드라마, 너도 나도 HD다. 깨끗하고 선명한 화면에 때론 5.1채널까지 자랑한다. 고화질·고음질이 추세인데, 〈영애씨〉는 거꾸로 간다. HD카메라도 없거니와 일반 TV드라마 촬영에 사용되는 카메라와도 다르다. 〈영애씨〉의 사실적이고도 거친 질감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6㎜카메라. 6㎜카메라 사용은 “지상파 TV드라마와 달라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6㎜와 성우의 내레이션, 현실적인 스토리가 맞물려 ‘이영애’의 회사와 가정을 중심으로 한 휴먼다큐멘터리풍의 드라마가 탄생했다.

6㎜카메라의 장점은 기동성. 덕분에 카메라 세팅에만 몇 시간이 소요되는 일도 없고, 핸드헬드(handheld)로 촬영하니 위치나 앵글을 바꾸기도 훨씬 수월하다. 게다가 3대 이상이 동시에 투입돼 앵글에 따라 연기를 끊어가지 않아도 좋으니, 배우들도 만족이다.

세트가 없다?
〈영애씨〉엔 세트나 스튜디오가 없다. 촬영이 이뤄지는 모든 것은 100% 실제 공간이다. 영애의 회사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무실은 tvN 송창의 대표가 지인을 통해 저렴하게 임차했다. 1주일에 하루만 촬영에 쓰일 뿐이지만, 실감나는 공간 연출을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아예 빌린 것이다. 영애의 오피스텔, 영애 부모와 영채-혁규 부부의 집도 마찬가지다. 오피스텔 내부는 원래 주인이 사는 모습 거의 그대로다. 따라서 소품 담당자가 분주할 일도 별로 없다. 1주일에 하루, 단 몇 시간동안 〈영애씨〉만을 위한 세트로 바뀌는 셈이다.

없는 것은 세트뿐이 아니다. 스튜디오가 없으니 연기자들을 위한 분장실도 따로 없다. 그래서 배우들은 촬영 현장 곳곳에서 편안하게 메이크업을 받는다. 의상을 갈아입는 곳은? 화장실과 기타 등등.

자연스러움이 있다!
〈영애씨〉엔 없거나 부족한 게 많다. 보통 한권의 책으로 나오는 대본이 〈영애씨〉에선 그냥 A4용지다. 연기자들은 각자 대본을 인쇄해 자신의 대사를 체크해 오는 듯 했다. 으레 대본에 있어야 할 ‘BS’ 등의 샷 표시도 없다. PD와 카메라 감독은 각 씬 촬영에 앞서 컷과 샷을 어떻게 할지 의논한다.

이렇게 〈영애씨〉엔 여느 드라마들과 달리 없거나 부족한 것들이 많지만, 그 차이와 결핍이 오늘의 〈영애씨〉를 만들었다. 대신 〈영애씨〉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있다. 배우들은 스태프와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담배를 피거나 한다. 주연과 조연 사이에 벽이 없고, 연기자와 스태프 사이에도 거리감이 없다. 밴에서 쉬다가 세팅이 완료돼야 슥 나오는 톱스타도 없다. 무리 없이 어울리는 친근함과 자연스러움. 이 역시 〈영애씨〉를 시즌3까지 이르게 한 중요한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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