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침공은 허위 정보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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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침공은 허위 정보에서 시작됐다”
美 PBS 이라크전 5주년 특집다큐멘터리, 정부요원 증언 담아 화제
  • LA=이국배 통신원/ KBS America 방송팀장
  • 승인 2008.03.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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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한지 5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의 뉴스 미디어들은 일제히 “미국의 사상자가 4천명을 넘어서게 됐다”, “애초에 500~6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는 전쟁비용이 5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라며, 잘못된 전쟁으로 기정사실화된 사안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뉴스들로 이날을 기념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보도처럼 “이라크전은 2차 대전을 제외하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전쟁”으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문뜩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돈만 적게 들었다면, 이라크 침공은 정당했다는 말일까. 이같이 돈 계산만 하고 있는 미국의 미디어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이라크전 관련 특집 다큐멘터리가 있다. 방영일이 왜 침공 5주년 기념일에 맞춰지지 않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는 24일과 25일 이틀간에 걸쳐 이라크전 5주년 특집 다큐 2부작을 전국에 방영했다. 전편의 제목은 ‘부시의 전쟁’(Bush’s War), 후편은 ‘전선’(Frontline)으로 이름 붙였다.

전편은 9·11 테러에서부터 이라크 침공의 첫 폭격까지, 그리고 후편은 전쟁 자체에 초점을 두었다. 이 특집다큐는 이라크전의 문제점을 명시적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고적’(retrospective) 방식을 통해 정말로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이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에 대한 그 어떤 명시적인 비난보다도 강력한 비판적 시각을 확보한다.

그렇다면, 왜 ‘따끈따끈’한 새로운 인터뷰들을 넣지 않고, 단순히 5년 전을 돌아보는 것 같은, 언뜻 보기에 흥미로워 보이지 않는 이 같은 ‘회고적 방식’을 택했을까. 한마디로 이미 결판이 다 난 지금의 상황에서 이제와서의 이야기는 그저 말바꾸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프로그램에서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이라크전을 밀어붙였던 행정부 관계자들의 인터뷰는 이미 공적으로 발표되었던 언급들에 국한됐다.

당시에 전쟁의 당위성을 주장했던 사람들, 심지어 언론까지도 국민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들을 당시에 했었는가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돌아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라크 침공을 결의한 의사결정과정은 얼마나 엉터리였으며, 대부분의 논의가 허위정보에 기초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확신에 넘쳐 있었는지를 시청자들은 가감없이 그대로 보게 된다.

미 CIA 정보분석가인 폴 필라(Paul Pillar), 그는 대량살상무기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에 매우 부정적인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CIA요원은 프로그램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량살상무기 보고서 작성의 목적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국민을 전쟁으로 내모는 여론몰이에 도움을 주자는 것 아니었습니까? 이러한 목적을 위해 공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과연 정보기관이 할 일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미 정부 관계자가 이라크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러한 일에 일조를 한 것에 대해 후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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