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어륀지’ 덕에 언론사들도 영어 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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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어륀지’ 덕에 언론사들도 영어 특수
자회사 통해 사교육 시장 확장…영어 섹션면에 연수 프로그램까지 소개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8.03.26 0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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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정책으로 대한민국에 ‘영어 광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인수위원회를 통해 ‘영어몰입교육’ 정책을 내놓아 충격을 주더니, 최근 “영어몰입교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는 발언으로 혼란을 더 했다.

‘영어몰입교육’이란 단어는 철회됐지만, 영어 교육 강화 정책은 쉽게 철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교육과학기술부에 영어 공교육 활성화 방안을 지시하는 등 영어에 여전히 ‘몰입’하고 있다.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에 영어 사교육 시장은 들떠 있다. 공교육 육성 정책이 역으로 사교육 시장을 부채질한 꼴이 됐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도 영어 과외와 학원, 유학 전문 업체들이 때 아닌 특수를 누리는 가운데, 언론사들이 영어 시장 특수에 동참해 주목된다. 언론사들은 영어 관련 시장에 뛰어들거나 서비스를 확대·강화하는 등 ‘영어 특수’에 줄을 서고 있다.

조선일보가 ‘영어 공교육 강화’ 환영하는 이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인수위 차원에서 ‘영어몰입교육’ 등을 골자로 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를 내놓았을 때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형 신문사들은 반색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이를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선일보는 인수위가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를 공개한 이후 사설 등을 통해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늘려야 한다”, “실력 있는 영어교사를 대폭 늘려야 한다” 등의 주장을 펼치며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했다. 언뜻 보기에 조선일보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동의’하는 모양새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석되지만은 않는다.

▲ 조선일보는 지난 3일자 '맛있는 공부' 섹션에서 자회사인 '맛있는 유학'이 실시하는 어학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기사화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각종 교육 사업을 총괄·전담하는 교육법인 ‘㈜맛있는 공부’를 설립한데 이어, 지난해 9월 ‘㈜맛있는 영어’를 만들었다. ‘㈜맛있는 영어’는 ‘㈜맛있는 유학’ 등과 함께 영어유치원, 주니어 영어, 조기유학, 국내외 영어캠프 등 영어 관련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맛있는 공부’는 조선일보가 매주 월요일 발행하는 교육 섹션 ‘맛있는 공부’와 목요일 발행되는 초·중·고 논술 길라잡이 ‘맛있는 논술’을 제작한다. 조선일보의 자회사가 영어 관련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해당 자회사가 신문의 교육 전문 섹션을 전담하는 것이다.

‘맛있는 공부’는 같은 조선일보 자회사인 ‘㈜맛있는 영어’와 ‘㈜맛있는 유학’ 등의 프로그램을 지면에서 소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 3일자 ‘맛있는 공부’ 5면에서 ‘㈜맛있는 유학’의 ‘필리핀 11주 영어몰입교육’을 광고하면서 동시에 기사를 통해 ‘필리핀 영어몰입프로그램 참가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비슷한 예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교육이나 유학 관련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앙일보는 2001년 2월 교육 전문 자회사 ‘중앙일보 에듀라인㈜’을 설립했다. ‘중앙일보 에듀라인㈜’은 미국의 교육 전문 기관인 카플란과 제휴를 맺고,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유학 수속 및 상담 등을 담당하고 있다.

동아일보와 동아닷컴은 유학 사업을 담당하는 ‘동아유학’을 후원하거나 주관한다. ‘동아유학’에선 영어캠프,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과 전문 유학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동아유학’은 기존의 인수위 발표를 근거로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해 비영어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교사 자격증 TESOL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홍보하며, 자사의 유학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영어 학원 광고로 재미 톡톡히 봐

이명박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과 사교육 시장의 영어 열풍으로 신문들은 광고 재미도 톡톡히 봤다. 2010년부터 초등학교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는 인수위의 발표에 영어 학원들이 줄줄이 광고를 게재한 것.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 발언을 철회한 뒤인 25일에도 ‘2010년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을 강조한 광고들이 신문에 게재됐다. 조선일보 자회사 ‘㈜맛있는 공부’ 사이트엔 ‘MB정부 신 영어 정책에 맞춘 커리큘럼’을 카피로 한 광고까지 떴다.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을 철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의 부추김으로 영어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고, 그 특수를 언론사들이 누리는 셈이다.

▲ 조선일보 2월 11일자에 실린 '영어몰입교육' 관련 광고(왼쪽)와 중앙일보 3월 12일자에 실린 광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는 3월 3일자 교육 섹션 ‘맛있는 공부’ 9면에 모 어학원 대표의 글을 ‘특별기고’ 형태로 싣고 “학생들에게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영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또 중앙일보는 지난 19일 ‘영어의 말문을 열다-SDA삼육외국어학원 특집’ 섹션을 4개 면으로 발행하기도 했다. 이 섹션 1면엔 중앙일보 객원기자의 글이 실렸지만, 4개 면 전면이 SDA삼육외국어학원의 소개와 광고로만 채워져 사실상 4면짜리 전면광고 역할을 했다.

방송도 영어에 ‘몰입’

‘영어 특수’ 동참 행렬엔 신문과 방송, 통신사의 구분이 없다. 방송사 등이 영어 학습 시장에 새로 진출하거나, 기존의 서비스를 확대·강화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연합뉴스는 지난달 4일 시사영어 뉴스 학습 프로그램 ‘파워 잉글리시 뉴스’(PEN: Power English News)를 선보였다. ‘파워 잉글리시 뉴스’는 국내·외 뉴스를 영어 오디오 뉴스로 청취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연합뉴스는 영어 뉴스 이용을 무료로 개방하면서도 기사별로 스폰서를 링크해 수익 통로를 열어뒀다.
EBS는 지난달 25일 봄 개편을 단행하면서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EBS는 TV를 통해 ‘영어단어의 영상화’란 콘셉트로 〈3분 영어〉를 방영하며, 라디오에선 〈폰폰 잉글리시〉, 〈레이한의 팝스 잉글리시〉 등을 새롭게 추가했다.

▲ EBS가 지난달 봄개편에 확대 편성한 'SEL(School English Level)' 프로그램(사진 왼쪽)과 연합뉴스의 '파워 잉글리시 뉴스' 팝업. ⓒEBS, 연합뉴스
또 영어전문채널인 EBS잉글리시는 방송시간을 하루 18시간에서 20시간으로 확대했다. EBS잉글리시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어 애니메이션과 동요부터 영어 소설을 원작으로 읽는 프로그램 등을 신설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Teacher's Time〉. 이른바 ‘영어몰입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EBS측은 “다양한 영어교수법, 동료 교수들의 우수한 실제 수업 사례를 제공”해 “교사들의 영어수업 능력의 향상을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Teacher's Time〉이 교사들의 영어 교육에 초점을 맞춘 점은 이채롭지만, ‘영어몰입교육’을 비판 없이 수용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도 없지 않다.

정신 차려야 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은 사교육 시장뿐만 아니라, 언론사의 영어 관련 시장 진출에도 열기를 불어넣었다. 이름만 바뀔 뿐 ‘영어몰입교육’의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교육 시장의 팽창과 영어 광풍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주류 언론사들이 정부의 영어 정책을 비판하기는커녕 맞장구를 치거나, 논란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 ‘영어 특수’를 노려 자사의 수익이나 경쟁력, 영향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사다.

영어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이 너무 조급하고 현실성이 없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금 이성을 차려야 할 것은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다. 영어 이상 열풍에 북치고 장구 쳤던 언론들도 제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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