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조원 돈잔치로 끝난 美 FCC주파수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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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조원 돈잔치로 끝난 美 FCC주파수 경매
기존 업체들, 경매가 2배로 부풀려 사업권 독점
  • 이헌율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 승인 2008.04.01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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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미국 연방방송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이하 FCC)는 196억 달러를 단숨에 벌어들였다. 우리 돈으로는 19조가 넘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뒤에는 방송과 정치, 그리고 경제의 혼전이 있었다.

이번 돈잔치의 시작은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FCC는 미국 텔레비전 방송의 디지털화를 위해 방송사에 디지털 방송이 가능한 전파 권역대를 나누어 주고 기존에 쓰던 700MHz대 주파수를 돌려받았다. 미 의회는 이를 모두 공매처분할 것을 법으로 만들었고, FCC는 이 법에 따라 일부는 정부와 긴급대처용 전파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무선통신용으로 3월에 매각한 것이다.

이 전파권역은 2009년 2월에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사로부터 이번 매수자들에게 완전히 이양되는데, 미국의 내로라하는 정보통신 기업들이 모두 매수자로 참여하고 있다. 지역별로 5개의 블록으로 나눠서 팔린 이 전파권역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C블록’이 통신업체인 버라이존(Verizon)에 팔렸는가 하면, AT&T도 그에 못지 않게 좋은 블록을 샀다.

그렇다면, 왜 이번 경매가 미국 정부가 초반에 예상했던 금액보다 2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면서 세간에 관심을 모은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이번 경매가 수십 년 만에 돌아오는 전파권역 재할당 기회라는 것이다. 이번 경매가 90년대 초반부터 준비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기회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이 700MHz대가 갖는 매력 때문이다. 일단 이 권역대는 기존의 정보통신업체들이 쓰고 있는 권역보다 더 안정적인데다가 장애물을 통과하는데 있어 더 뛰어나다.

아직까지는 정보통신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씩 주고 이 700MHz대를 사서 무엇에 쓸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이들이 주로 통신기업들이고 방송통신 융합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번 경매는 방송통신 융합을 더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하지만 이번 경매에 대한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이번 경매가 새로운 경쟁을 시장에 도입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 업체의 입지를 더 강화하는데 그쳤다는 점이다. 너무 비싼 입찰가격 자체가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원천봉쇄하고 버라이즌이나 AT&T 같은 기존의 회사가 노른자를 차지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FCC 위원 가운데 한 명이 “이번 경매 낙찰자 중 여자는 하나도 없고, 소수인종은 1%미만”이라고 지적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런 결과가 예상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원래 경매라는 것이 자본의 우위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픈 액세스(Open Access)운동을 하는 사회단체들은 구글(Google)과 같은 신생 기업체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번 경매의 결과를 바꾸기 위한 노력해왔다.

오픈 엑세스 측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보면, 이번에 전파 권역대를 낙찰 받은 기업들이 이를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도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다른 기업의 프로그램이나 기기들도 이 권역대에서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비근한 예가 최근 이동통신기업 스프린트(Sprint)가 자사의 신호대를 다른 기업에서 산 기기에도 오픈한 것이다. 스프린트가 이렇게 자사의 영역을 개방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자발적 조치지만, 오픈 엑세스 측에서는 이것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앞에 언급한 것처럼 타사의 기기나 프로그램에 개방하는 것은 물론, 전파의 일부분을 공평한 조건 하에 타사에 재불하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케이블에도 현재 적용되는 이러한 규정은 후발사들이나 경제적으로 이번 경매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 기업들을 고려한 조치다. 한국의 SK텔레콤이 서비스하고 있는 힐리오(Helio)같은 군소 정보통신업체들은 이런 조항이 들어갈 경우에는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FCC는 1990년대 말 논의가 시작될 때에는 이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현실화되지 못하고 말았다. 실제로 버라이즌이 낙찰받은 ‘C블록’에서 프로그램과 기기를 개방하는 것을 조건으로 했을 뿐 나머지 블록에서는 이런 오픈 액세스에 대한 고려는 반영되지 않았고, 주파수의 재불하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주파수 권역의 경매라는 것은 주파수가 ‘희귀’하고, 또 그 주파수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제한되어있던 20세기 초기의 일종의 자원할당 방식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이용가능한 권역이 늘어난 요즘에도 이러한 경매 방식이 과연 효율적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인위적으로 전파를 나눠서 경매하는 기존의 방식이 기존의 독점적 기업들의 기득권만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에 그 비판의 핵심이 있다. 그래서 스탠포드 법대의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교수는 아예 “모든 인위적인 규제가 없는 전파대를 만들어서 새로운 기술들을 누구나 마음껏 실험하게 하자”는 주장을 한다. 일명 ‘백기사 주파대(White Spectrum)’라고 불리는 이 제안은 사적 이익을 위한 제한보다는 전파의 진정한 공공화가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나아가 기술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돈 잔치로 끝난 이번 경매에서 기존의 기업들이 다시 그 자리를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통신기업들의 느리고 낙후한 서비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올 정보통신의 시대에 미국이 설 자리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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