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원 대통령 지명, 세계가 웃을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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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민희 구 방송위 부위원장

“공익도 생존을 해야 지킬 수 있다” 수신료 인상·중간광고 필요성 강조

최민희 구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의 언어는 언제나 그랬듯 거침이 없었다. 논란 속에 출범한 최시중 위원장 체제의 1기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우려나 정부·여당이 추진하려 하는 방송 관련 정책들에 대해선 여지없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무소속 독립기구인 방송위였기 때문에 지난 대선을 예전과 다르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는데 보수 신문들의 의제 설정 능력이 커진 반면 통상적 의미의 진보 측 능력은 크게 위축됐다”고 평가하면서 “공론장으로서 방송의 기능이 축소될 경우 수십년 간 일군 민주주의의 진전 정도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전 부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사당동 수수팥떡 사무실에서 2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방통위원 추천 여야 3대 2로 바꾸는 운동 나서야”

- 방통위 출범을 보며 구 방송위 부위원장의 입장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와 지적에 동의한다. 가장 큰 문제는 비전문성이다. 방송통신 정책 결정 과정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서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내용을) 이해하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3기 방송위 경험으로 볼 때도 방송을 잘 모르는 분이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으면 일도 안 되고 본인도 고통스럽더라.”

- 최시중 위원장은 지휘자가 반드시 스페셜리스트(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방통위원장은 정치적 자리가 아니다. 전문성을 전제로 한 조정 능력이 필요하다”

- 방통위법이 대통령에게 모든 결정권을 집중시켜 언론 독립성을 침해하는 등 위헌적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입법 관련 논의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보나.
“방통위법 논의에 참여하긴 했지만 의원입법인 만큼 한계가 있었다. 방통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둔 것은 현실적인 불가피성 때문이다. 방송 관련 행정지원 기능을 하기 위해선 정부 부처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는데 무소속일 경우 이게 힘들다. 더구나 통신 부분까지 있지 않나.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성을 부여받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헌법 개정을 해야 하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비난 이전에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대통령이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2명을 지명하는 것은 어떤가.
“빨리 바꿔야 한다. 이는 방통위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 민주당이 6인회의에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야 3대 2 추천 구조로 바꿔야 한다.”

- 여당과 청와대는 한통속이란 의견도 있다.
“하늘과 땅 차이다. 한나라당에게 추천권이 모두 있다면 최시중 위원장 같은 인물을 했겠나. 당은 4년마다 선거로 심판받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 소신, 한나라당의 경우 보수적 소신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나만 해도 국회 추천으로 됐기 때문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경인민방 등의 사안을 소신껏 처리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불분명한 정체성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그저 말 잘 듣는 이를 데려다 둔 게 아닌가. 상임위원과 방통심의위원을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한 것은 세계가 웃을 코미디다. 시민사회가 방통위법 개정운동에 돌입해야 한다.”

“신문 내부의 문제를 왜 외부적으로 풀려하나”

- 민주당 측 방통위원으로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웃음)그 질문이 하고 싶어 온 게 아닌가. 지금 그 문제를 말하긴 적절치 않을 것 같다. 다만 야당 몫 추천위원으로 거론되면서 축하 전화를 100통도 넘게 받았지만 난 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 정도로 하자.”

- 대통령 추천 위원장에 여당 추천 인사가 부위원장이 됐다.
“방통위법 제정 논의 당시 여야는 부위원장을 야당이 추천한 방송 측 인사로 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야당 추천 몫 인사로 하자는 것을 법으로 보장하긴 힘드니 위원 간 호선으로 하면서 추천을 보장토록 한 것이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인 만큼 이 정도의 견제 장치는 필요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법을 만들 때 한 약속을 깼다.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야당 추천 측 인사들도 약속을 관철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다.”

- 청와대, 여당, 방통위 모두 신문·방송 겸영 의지가 높다.
“국익 차원에서 겸영이 필요한가? 왜 굳이 신문이 방송까지 경영해야 하나. 뉴스를 생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방송의 뉴스채널을 소유하게 되는 것 밖에 없다. 이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나. 그럴 바엔 차라리 대기업에 풀어주는 게 낫지. 콘텐츠라도 제대로 만들 것 아닌가. 신문·방송 겸영 허용 논리는 오직 보수신문을 위한 것일 뿐이다.”

- 신문의 사양화를 막기 위해 신문·방송 겸영이 필요하단 논리도 있다.
“그 논리대로라면 경영이 어려운 지상파 방송을 살리기 위해 일찌감치 통신에 진출토록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신문시장이 왜 죽어가나. 군부독재 정권이 이상한 논리로 신문값을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정보에 대한 이용료를 안 내도 된다는 인식을 만든 것이다. 신문들은 지금이라도 구독료를 올려 경영의 50%를 담보해야 하며, 이 비율을 향후 70%까지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신문 품질을 개선해야 하며 독자들의 의식도 바꿔야 한다. 그래도 실패하면 도태돼야지. 그게 바로 보수 신문들이 강조하는 경제의 효율성 아닌가. 자신들의 주장과 달리 왜 내부적 문제를 외부적으로 풀려 하는 건가.”

“재원 막히면 살기위한 편성 불가피”

-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이 끝내 좌절된 후 이뤄진 KBS 개편이 논란이다.
“공자의 말에 따르면 의식주가 해결돼야 예를 차릴 수 있다고 했다. 공익성을 얘기하면서 현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대왕세종>이 KBS 2TV로 옮겨진 것을 두고 상업적 선택이라 비난해선 안 될 이유다. 공익도 생존을 해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 KBS 노조는 정연주 사장이 수신료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했다며 퇴진론을 펴고 있다.
“정 사장이 정치적 인물이란 점을 정파적으로 활용하며 수신료 인상을 거부한 한나라당이 문제 아닌가. 이를 지적하지 않고 정 사장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수신료 인상 여부가 사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것을 묵인하거나 동의해준 것이다. 현재의 KBS 노조는 노조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집단이다. 최소한 이전 노조는 정파적으로 친노(친 노무현)였어도 서동구 씨가 사장으로 임명되자 삭발단식하며 싸웠다.”

- 방송위가 지난해 11월 지상파의 중간광고를 전격 허용해 논란이었다.
“구 방송위나 시민사회 모두 규제를 통한 공익성 논리로 방송을 묶어두려 했다. 광고제도 개편으로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방송을 진흥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상파 방송의 경제적 어려움이 터져도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경영효율성을 얘기하며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수신료도 마찬가지고.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히면 방송은 살기 위한 편성을 하고 더 상업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방송을 만회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트릴 것이다.”

"정연주 사장 같은 사람 다시 나올까?"

- 정권 교체와 함께 정연주 KBS 사장을 둘러싼 논란이 많다.
“정연주 사장은 KBS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언론단체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많이 문제제기를 했던 부분이 바로 오락 프로그램의 공익성이다. 그 문제를 해결한 게 정 사장이다. <스펀지>, <상상플러스> 등이 초기 시청률이 부진했음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게 한 게 정 사장이다. 드라마의 품격도 달라졌다. <서울 1945>, <대조영> 등 대하드라마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았나. 오락과 드라마로 국민의 삶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사고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와 같은 사장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 적자경영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80년대에 책정한 2500원의 수신료를 지금까지 묶어둔 나라에서 경영 문제를 운운해선 안 된다. 부끄러운 일이다.”

- 퇴임 직후 민주당 비례대표로 나선 최문순 전 MBC 사장은 어떤가.

“최 전 사장 취임 당시 MBC는 모든 면에서 꼴찌였다. 그런데 그가 나올 때 모두 1위로 만들었다. 시청률도 좋았고 경영도 잘했다. 또 사장을 폴리널리스트(정치기자) 범주에 묶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사장이 되는 순간 경영자였다. 과거 이력을 갖고 폴리널리스트의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최 전 사장이 국회로 들어가 방송의 공익성과 통신의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세력과 연대해 싸워주길 바란다.”

- 방통위가 출범했지만 구 방송위 직원들의 직제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다.
“구 방송위 사무처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지만 그들이 위축된다는 것은 큰 틀에서 방통위 내 방송 관련 사안들이 위축될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구 방송위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살아남아야 할 이유다. 방송의 공익성이라는 대의·원칙으로 싸워야 그들도 살고 방송도 살 수 있다.”

- 향후 계획은.
“방송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방통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를 위해 사람들과 함께 조직을 만드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당장 정부여당과 방통위가 MBC와 KBS 2TV 민영화,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해 이를 막을 대응전략을 마련할 생각이다. 글 쓰는 작업도 꾸준히 할 것이고 방송을 주제로 한 강연도 계속 하고 있다. 물론 수수팥떡 모임도 열심히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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