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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 없는 스타 효과, ‘자승자박’…무분별 인수합병으로 덩치만 키워

한류의 붐과 함께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불렸던 엔터테인먼트산업이 심상치 않다. 수 만원에 육박하던 주가가 내외부 악재가 겹치면서 1000원 미만으로 급락하는가 하면 지난 달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팬텀마저 자본잠식 위기까지 맞기도 했다.

거물급 스타들을 보유한 연예기획사와 히트작을 만든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이 급속도로 거품이 빠지게 된 것은 내적 성장보다는 과도한 스타 의존도가 불러온 ‘화’라는 지적이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코스닥 진출을 위해 몸집을 불리고 이 과정에서 인수합병 등을 통한 우회상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연예기획사 최초로 코스닥에 등록한 SM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주몽>을 제작한 초록뱀미디어는 2005년 9월 코스닥업체인 코닉테크를 통해 우회상장했고, 태원엔터테인먼트는 스펙트럼DVD를 통해서, 삼화프로덕션은 코스닥업체 이즈온(현 삼화네트웍스)을 인수하면서 코스닥에 우회 등록했다. <태왕사신기>를 제작 한 김종학프로덕션도 상장사인 퓨어나노텍을 인수하면서 코스닥에 우회상장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몸집은 점점 커졌다. 방송제작·음반·매니지먼트 사업 등을 아우르고 있는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팬텀은 1990년 골프 관련 제조업체로 시작해 2005년 이가엔터테인먼트·우성엔터테인먼트·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 등 3사의 합병 및 주식교환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탈바꿈했다. 이후 영화·드라마 제작사인 팝콘필름(현 도너츠미디어)과 신동엽·유재석·김용만 등이 포진한 DY엔터테인먼트까지 인수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성’이 됐다.

▲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팬텀 엔터테인먼트 ⓒ 팬텀엔터테인먼트

하지만 팬텀은 지난해 영업손실 58억원을 기록했고, 이도영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주가조작으로 240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는 등 총체적 부실을 보였다. 그러나 팬텀은 지난 1~2일 탤런트 권상우의 영업권을 골든썸으로부터 양수받은데 이어 파블로포스트에 소속된 탤런트 지성, 소이현 등 7명의 연기자들을 영입하며 주가를 띄우기 위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김종학프로덕션은 지난해 영업손실이 91억3700만원으로 전년도 64억원에 이어 적자폭이 커지자 운영자금 5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모건스탠리와 리먼브러더스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최근에 김종학 프로덕션은 KBS2 월화드라마 <강적들>의 크랭크인까지 했다 제작비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작을 포기하는 일도 벌어져 “<태왕사신기> 제작 후유증”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이렇듯 코스닥에 상장된 연예기획사들은 투자자들의 유치를 받기 위해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스타들을 데려오거나 대형 기획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주가 계속해 적자만 양산하자 회의를 느낀 자본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팬텀과 같은 자본잠식 상태를 초래하는 기업도 나타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이익배분을 연예인과 기획사가 7:3으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10:0, 11:0으로 기획사가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며 ‘스타’를 영입하는 것은 코스닥에서 단기적으로 주가를 상승시키는 부양책으로 쓰기 위해서였다”며 “손실을 메우기 위해 신인들에게는 과도하게 불리한 계약을 강요해 노예계약과 같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엔터테인먼트 사들의 자금난이 갈수록 심화되자 최근에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업종목을 넓히며 매출액을 늘리기 위한 방안도 모색 중이다.

<궁>, <비천무>를 제작한 에이트픽스는 최근 네오쏠라로 사명을 변경해 태양광 전문업체로 이름을 알리고 있고, <겨울연가>, <못 말리는 결혼>을 제작한 팬엔터테인먼트도 부동산투자·개발·건설·매매·관리운영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SM엔터테인먼트도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고, 드라마제작사 올리브나인은 교육사업에, 예당엔터테인먼트는 계열사 예당에너지를 통해 러시아 유전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대한민국에서 연예매니지먼트 사업만으로는 흑자를 보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며 “업체들이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여기서 나온 흑자를 토대로 매니지먼트 사업에 투자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드라마 외주제작사 역시 스타에 의존한 기획과 회당 출연료가 5000만원~1억원을 호가하는 개런티의 과도한 상승을 외주사간의 과당경쟁을 통해 부추긴 것 역시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스타들의 개런티 급상승으로 제작비 규모도 같이 커지다 보니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은 손실과 위험부담이 갈수록 커졌다.

해외 판권은 자금 회수 기간이 길고, 국내에서는 드라마 판매를 통한 수익은 향후에 발생할 무형의 자산이라 비용지급이 어려워 손실이 일시적으로 크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낀 드라마 외주사들의 모임인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스타들의 회당 출연료를 2000만원으로 제한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외주사 자금 동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간접광고(PPL) 시장도 축소돼 드라마 한 편당 2~3억원씩 받던 간접광고(PPL) 단가도 1억원 이하로 떨어졌고, 스타급 연기자 동원에 소요된 자금을 못 채워 스태프들과 엑스트라 연기자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형국이어서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 많다.

최원석 MBC 드라마기획센터 PD는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가 수출될 수 있었던 것은 낮은 가격에서 형성된 가격도 한 몫 했는데 작가·배우의 높은 개런티와 해외촬영 등으로 스스로 고비용 구조를 부추겼다”며 “작가·배우 모두 드라마의 초심으로 돌아가 드라마의 고비용  거품을 걷어내고 시장이 요구할 수 있는 가격이 형성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내적인 성장보다는 몸집만 키운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주가를 올리기 위한 머니게임이나 매출액 부풀리기가 아니라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내실 있는 투자를 통해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구본근 SBS 드라마 국장은 “연예산업 전체가 산업화 논리가 드세 지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광고주, 간접 광고주, 해외 바이어들 뿐”이라며 “이들의 입맛에 맞춘 내용과 배우로 제작이 이뤄지다 보니 다양성을 추구해야 드라마가 수출용 위주로만 제작돼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폭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비판했다.

김창권 대우증권 수석위원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각광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익창출창구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새로운 사업 확장을 계속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에 걸맞은 시장을 형성하지 못했다”며 “무리한 확장 피해는 결국 소액투자자에게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연예기획사의 무분별한 제작확대 등을 막기위해 외주의무고시비율을 재고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2007년 기준으로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외주제작사는 모두 850개가 넘겼지만 실제 제작을 하는 곳은 메이저 몇 군데 밖에 안 된다”며 “정부가 영상산업의 진흥을 위해 ‘외주제작 의무 편성 비율’을 40%까지 정했지만 내실은 기하지 못한 채 총체적인 부실만 양산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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