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초특급 비기기 작전 블록버스터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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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초특급 비기기 작전 블록버스터 미스터리
  • 김기슭 SBS 편성기획팀 PD
  • 승인 2008.04.08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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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늘 그럴까? 아시아 팀을 상대로 시원시원하게 이긴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왜 상대 골키퍼는 늘 선방을 하고, 수비들은 철벽이 될까?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對북한전, 볼 점유율 69대 31, 패스 성공률 81대 70, 이처럼 압도적인 경기기록을 갖고도 어떻게 득점 없이 비길 수 있을까? 과연 이번에는 경우의 수 따지는 것 없이 무사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까?

축구는 축구일 뿐일까? “안영학은 이중스파이?” 그 신문은 기사 머리에 그 ‘이중스파이’라는 단어를 썼어야 했을까? 같은 내용의 다른 신문 기사들에선 찾아 볼 수 없는 이 생뚱맞은 단어 선택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상대팀이면서 정대세에 대한 정보를 팀 동료 조원희에게 주었으니 안영학에게 스파이라는 단어를 써도 된다 생각했을까? ‘조선’ 국적의 북한대표팀 선수가 대한민국 K리그에서 뛰고 있는 것이 못 마땅한 것일까? 안영학이 그 기사를 보았을까? 보았다면 안영학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작년 경기 중 당했던 신장파열 부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가 만약 보지 못했다면, 영원히 보지 못하게 빨리 감출 수는 없을까?

축구는 축구일 뿐일까? 또 다른 신문은 북한대표 정대세가 어떻게 대한민국 여권을 쓰게 되었는지 정말 그것이 알고 싶었을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북한대표로 뛰고 있는 정대세의 기구한 운명보다, 여권이 어떻게 발급되었는지가 더 미스터리일까? 축구는 축구일 뿐이라 말하면서 그들을 끝끝내 우리의 대척점에 세우고 싶어 하는 건 누굴까? 상대선수의 약점으로 보이는 것들을 아프도록 물고 늘어지는 것, 가장 아픈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 그것은 결국 어떻게든 이기기 위함인가?

경계인…. 그들에게 부여된 이 단어는 과연 합당한가? 누가 이들을 경계인으로 만들었을까? 누가 경계를 그어서 그들을 밀쳐내고 있을까? 일본인들로부터 받는 설움을 떨치고 싶어서가 아닌, 그저 공이 좋아서 축구를 하지는 않았을까? 그저 계속 공을 차다보니 잘 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랬을 때, 그에게 국가대표의 꿈이 허락될 수 있었을까? 어느 순간 조국을 위해 뛰고 싶었을 때, 그의 조국은 어디인가?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이자 외국인 등록증에 적힌 대로 한국인가? 그에게 말과 글을 가르치고 대표로 불러준 북한인가? “내겐 부모 같은 존재입니다. 싫다고 해서 부모하고의 연을 끊어 버릴 수 있나요?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야죠.” 그는 행여 그의 조국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경기 전에 흘린 눈물은 혹 그런 의미일까?

▲ 김기슭 SBS 편성기획팀 PD

북한의 홈경기를 왜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에서 열었어야 할까? 왜 평양에서는 애국가가 들려선 안 될까? 반대로 왜 태극기, 인공기 대신 한반도기가 펄럭이면 안 될까? 그것이 평양이 아닌 중국 땅에서 경기를 해야 하는 이유일까? 또 반대로, 국가가 연주될 수도 없었는데, 지난 1966년엔 왜 그들은 대표팀을 그 먼 영국 땅까지 보냈을까? 수십 년이 된 이놈의 경기는 지금 당장 경기장에서, 탁자 앞에서, 혹은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매 순간순간 서로가 서로를 이겨야만 하는 것일까?

축구는 축구일 뿐일까? 축구에 축구만이 아닌 그 무언가가 포함된다면, 까짓 거 지금은 좀 비기면 안 되나? 이기지 않으면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나? 그러면, 이기면… 이긴다면… 모든 것이 끝날까,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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