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미디어연대 릴레이기고④]선거보도만 중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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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보도는 모든 정치주체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언론이 선거를 어떻게 매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보도만 중요한 게 아니다. 선거 시기엔 오히려 선거와 무관해 보이는 이슈들이 유권자 선택의 변수로 작용하곤 한다.

1987년 대선 투표일을 보름여 앞두고 발생한 KAL기 폭파 사건은 그 단적인 사례다. 사건 자체의 조작설은 차치하자. 용의자 김현희는 선거 전날 깜짝 입국했다. 그 이벤트가 군인 출신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음은 정설이다. 1992년 대선에서는 투표 일주일 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다. 김영삼 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할 사건이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이 사건의 프레임을 ‘관권선거’에서 ‘불법도청’으로 슬그머니 뒤집었다. 김영삼 후보의 당선은 그 덕분이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KAL기 폭파나 복집 사건에 비견할만한 돌발변수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와 무관하더라도 언론의 프리즘에 따라 투표에 영향을 끼칠만한 이슈는 있었다. 일산 어린이 납치미수 사건과 북한의 잇따른 강경 발언이 이에 속한다.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이 두 사건은 언론이 어떤 측면을 부각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구성될 요소를 갖고 있었다.

일산 어린이 사건은 경찰의 무사안일주의 성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경찰을 민생치안대신 시국치안에 내몬 현 정부의 실정(失政)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었고, 그래야 옳았다. 현 정부 들어 등록금 인상 항의 집회에 과잉 대응하고, 대운하 반대 교수를 사찰하는 등 경찰의 부질없는 잡무 동원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보수신문들은 사상 초유라는 대통령의 일선 경찰서 방문과 호통, 그 뒤 6시간만의 용의자 검거라는 일련의 과정을 극화하는데 치중했다. 4월1일치 〈조선일보〉의 ‘경찰 이래선 안 돼…뛰어왔다’와 〈동아일보〉의 ‘주민 신고엔 뒷짐 졌던 경찰, 대통령 질책 6시간 만에 검거’가 그 전형이다. 같은 날 〈연합뉴스〉의 ‘MB 제대로 했네…청(靑) 홈피 격려 글 쇄도’와 다음날 〈국민일보〉의 ‘대통령 호통에 네티즌 환호‘는 아예 대통령을 영웅 취급했다.

북한의 대남 강경조치는 지난달 27일의 개성공단 남측 요원 철수부터 서해에 미사일 발사, 대통령에 대한 〈노동신문〉의 극한 표현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같이 이어졌다. 언론이 이를 주요하게 다룬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 특히 방송은 북한의 강경책을 중계하는 수준에 그쳤다. 북측의 압박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기 전에 타격한다”는 합참의장의 발언에서 비롯되었지만 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짙다. 그렇다면 언론은 정부의 대북 정책기조가 무엇이며 문제점은 없는지를 짚었어야 한다. 이를 건너뛴 채 북측의 대응만 중계하면 불필요한 심리적 긴장만 유발하게 된다.

▲ 김재영 2008 총선미디어연대 평가단·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선거 시기에 불거진 두 사건 보도가 과연 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언론이 허망하게 대통령을 치켜세우고 남북대결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려 깊지 못한 처신을 했다는 점이다. 선거 국면에서 이런 프레이밍은 여당과 보수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걸 알면서 그랬다면 나쁜 언론이고, 모르고 했다면 자격 없는 언론이다. 선거보도도 신통치 않은데 이런 부분까지 유념하라고 언론에 주문하는 게 무리인 줄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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