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민심의 선택? 뜬구름 잡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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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4.9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10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강재섭 대표가 박희태 김덕룡 선대위원장, 안상수 원내대표 등과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18대 총선이 끝이 났다. 큰 틀에서 본다면, 총선 결과는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 승리하면서부터 예상되었던 보수 세력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보수세력은 이번 총선 승리로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선거에 이어 3연승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승패의 기준이 달라서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한 쪽 세력이 이렇게 연승가도를 달리는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거가 끝나면 표로 나타난 국민의 뜻을 해석하고, 앞으로의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뜻을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인 46% 안팎에 머물렀다. 국민의 표심을 이야기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모자란 수치이다. 최대 5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 후보라 하더라도, 전체 유권자로 환산하면 불과 4분의 1도 안 되는 지지로 당선자가 결정이 된 셈이다.

설사 투표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었다 해도 표심 분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전인수가 되기 쉽다. 결과주의적인 해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어제 오후 6시 출구조사가 발표했을 때의 방송사 분석이 이후 최종 개표결과가 나오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점을 더욱 실감하였을 것이다.

사실 전문가들의 분석이란 것도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다. 그나마 맞는 경우도 지난 대선에서의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처럼 장삼이사도 예측할 수 있는 명약관화한 것들을 빼고 나면, 적중도라는 것이 거의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신문 사설이나 승리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위대한 국민의 심판' 혹은 '절묘한 민심의 선택' 운운 하는 것은 모두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선거 결과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의 상을 그대로 투여하는 방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선거결과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진정한 '표심'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번 선거는 쟁점이 없는 선거였다. 대운하가 쟁점이 되려고 하자 선거 불리를 느낀 한나라당이 재빨리 발을 빼버렸다. 그 바람에 이번 총선의 최대 변수는 한나라당의 '공천 갈등'이 되어버렸다. 공천갈등이라는 변수가 나비의 날개 짓처럼 태풍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총선에 가장 영향력이 큰 균열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박근혜의 반발은 한나라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영남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서울에서는 역대 최대의 승리를 한 반면에, 영남에서는 무소속과 친박연대에 많은 의석을 내어주는 내용적인 패배를 기록하게 되었다. 한나라당이 아슬아슬한 과반 턱걸이를 함으로써 주류세력인 이명박 계열은 단독 과반이 어렵게 되어 박근혜 전 대표의 협력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국민이 마음속으로 의도한 결과인지는 극히 불확실하지만, 절묘한 분할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이번 총선 승리의 영광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가 차지한 셈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서 한나라당의 최대 지지기반은 수도권과 영남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충청권에서는 단 한 석을 제외하고 전멸 했고, 강원도에서는 8개 지역구 중에 불과 3석, 제주도에서는 3석 모두를 통합민주당에 내주었다. 지역적인 외연으로 볼 때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에 비해서 지지기반이 오히려 축소가 된 셈이다.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부터 확인된 사실이었지만, 당원 등 전통적 지지 세력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고, 일반 국민의 지지인 여론조사로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었다. 박근혜를 홀대하면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 세력이 어떻게 돌변할 수 있는가를 확실히 보여준 선거결과였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앞으로 여당 내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느냐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9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당선이 확정되자 대구 달성군선거사무소에서 꽃다발과 함께 당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혁

박근혜의 힘, 한나라당의 지지기반

한나라당이 심지어 영남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고전을 했음에도 수도권, 그중에서도 특히 서울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영남의 고전은 박근혜 대표의 영향력 때문이라면, 서울은 이명박 정부의 순수 독자적인 지지기반이라는 사실을 이번 총선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이 결과를 통해서 수도권의 선거는 영호남 등 전국에서 올라온 지역 표심의 모자이크 형태로 나타난다는 가설을 깨뜨려 버렸다.

지난 대선 때부터 회자되어온 서울 중심의 '신지역주의'가 탄생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선거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서울의 호남 원적자들이 과거만큼의 표의 응집력을 가지고 통합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고 있다는 가설이 세워진다. 그리고 이탈의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관점에서는 이념보다는 실용의 선택이 될 수 있으며, 사회과학적 분석으로는 계급 지향적 표의 정상화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권은 드디어 3김 시대의 지역적 연고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지역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진보세력에게는 이것이 엄청난 숙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이 주류세력으로서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면, 최대의 지역구가 있는 이곳에서 과거와 같은 손쉬운 야당 승리가 어렵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강남 지역구에서도 여당 후보가 떨어지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남, 서초, 송파 지역구는 돈 들여서 여론조사도 따로 안할 정도로 보수 정치의 철옹성이 되어버렸다.

이 같은 강남의 경향성이 서울의 전 지역구로 확대가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진보세력에게는 가시밭길의 고난이 될 것이다. 민노당이 낳은 최고의 스타, 진보신당의 노회찬과 심상정이 선전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낙선을 하고, 제1야당의 대선후보와 당 대표가 서울에서 힘도 못 써보고 총선에서 탈락하는 것은 과거와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역대로 진보세력이 대선 패배 이후의 임한 총선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참패는 없었다.

전통적 지역주의 퇴색 ... 급부상한 서울 중심의 '신지역주의'

전체적으로 이번 총선은 보수 세력의 완승 그리고 진보세력의 완패라는 결과 해석이 타당하다. 다만 복잡한 역학구도로 봤을 때 보수 세력 내에서 박근혜 계열이 최대 승자, 자유선진진당의 신승, 이명박 계열이 패배와 승리를 오락가락하는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차기를 노릴 수 있는 최대의 발판과 여당 내의 주도권을 확보했으며, 자유선진당은 나름대로 체면치레를 하며 나름대로 정국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적인 정책 추진에는 탄력을 받을 수 있겠지만 한반도 대운하 등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엄청난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손학규, 박상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가 10일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 해단식에서 당지도부들과 함께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며 국민들께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민주당의 패배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의 경향성으로부터 크게 이탈하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비례대표 지지율 25.1%는 지난 대선 때 정동영 후보가 얻은 득표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수위 시절의 '어린쥐' 파동이나 정권출범 이후의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부터 얻은 실책을 전혀 자신의 표로 연결시키지 못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권을 내어준 이후 수권세력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 지역주의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민주당에 희망의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충북지역과 제주도에서 호남 이상의 대승을 거두었고, 강원도와 영남 지역에서도 2석씩을 얻는 등 내용적인 면에서는 유일한 전국정당이라고까지 할만하다. 그럼에도 수도권의 패배로 그러한 요소들이 완전히 빛을 바래버렸다. 전통적 지역주의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인 끝에 '신지역주의'라는 커다란 절벽을 만나버린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은 여당과의 차별성 있는 공약을 내세우지 못했다. 똑같이 지역에서 특목고와 뉴타운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동작을에 나선 여당 후보 정몽준이 내세우는 뉴타운 공약과 야당 후보 정동영이 내세우는 뉴타운 공약 중에 어디가 신뢰가 더 갈 것인가? 총선에서의 당선이 지역적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서는 서있을 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행히 민노당은 지역구에서 2명의 당선자를 냄으로써 나름대로의 선전을 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졌다. 지난 대선에 비해 반토막이긴 하지만 비례대표를 포함해 모두 5석을 얻어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서 생존을 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당의 분열이라는 악조건을 극복하고 나온 결과라 민노당 입장에서는 더욱 고무되었을 것이다.

심상정과 노회찬이라는 개인의 스타성을 가지고 총선에 임한 진보신당은 지역구 전멸은 물론이고 비례대표도 한 석을 얻지 못해 새로운 진보정당의 꿈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대선 직후 패배의 원인을 종북주의로 규정하고 당의 분열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종북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당위야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만, 지난 대선 패배가 그것 때문이라는 진단은 전혀 실증적이지 않았다. 사실 일반 국민은 종북주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이 점은 진보신당이 독자적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념적으로 옳은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국민의 선택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진보가 역사를 두고 고민해 왔던 부분이지만, 제도권 정당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다. 

제18대 총선에서 이방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가 당원들과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성호

이제 진보세력은 무엇을 해야 하나

지난 대선 패배 이후에도 제기된 이야기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할 시점이다. 민심이란 요동을 치며 갈대와 같이 정국을 흔들어 놓는다. 총선결과는 보수 세력의 대승으로 나타났지만, 대한민국 중도성향의 유권자와 수도권의 지역 표심이 언제까지 보수 세력에게 향해 있으라는 법은 없다.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과 급격한 보수 회귀에 대하여 적절한 견제세력으로서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진보세력에게도 분명히 기회는 올 것이다.

다만 46%대에 머무른 정치적 무관심과 유감없이 확인된 영남의 지역주의는 민주당에 커다란 숙제로 남을 것이다. 정치무관심은 민주화 바람을 통해 성장해온 역사적인 동력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전한 지역주의의 벽은 비수도권 지역 중에 가장 유권자가 많은 곳에서 늘 악전고투를 해야 하는 불리한 정치지형을 조성한다.

김해와 부산의 민주당 후보의 당선과 대구에서 유시민의 선전, 그리고 DJ 아들의 낙선 등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대 선거결과로 봤을 때 근본적인 제도개혁이 따르지 않고는 지역주의의 해체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진보세력은 한국정치의 발전은 둘째로 하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의 제도 도입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숙제는 요 몇 년간 오른 부동산 값이다. 이는 서울의 신지역주의를 더욱 부추길 기제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이 한강을 넘어 강북 쪽으로 완벽히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진보의 대표주자 노회찬 후보가 CEO경력을 내세운 홍정욱 후보에게 패배한 것이나,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김근태 후보가 뉴라이트 출신 신지호 후보에게 패배한 것도 다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민주화운동 시대의 '독재 타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지형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진보세력에겐 자체 역량을 기르는 게 무엇보다 급선무이다. 강기갑 후보의 선전은 놀랄만한 일이고 의미가 크지만, 사실 한나라당의 공천갈등이라는 외생변수에 힘입은 바도 크다. 자체적인 지지세의 확장을 꾀하지 않는다면, 외생변수가 사라진 곳에 아쉬운 석패만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총선 결과는 지난 민주화 시대에 성장해온 진보세력에게 엄청난 숙제를 안겨주었다. 과거와 같이 비판세력으로만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은 더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에 패배한 민주당 외에도 선방한 민노당, 전멸한 진보신당까지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 숙제이다. 숙제를 던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니고 이번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들이다. 이제부터 진보세력은 그 숙제를 풀기 위하여 머리를 끙끙대야 할 것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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