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달콤한 질문만 해 달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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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정책이 실종된 총선이었다. 늘 그랬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좀 더 심했다.
후보들은 오로지 이미지에만 호소하려 했고 승기를 잡았다 싶은 후보들은 인터뷰나 토론 자체를 기피하기 일쑤였다. 아쉽고 분통 터지는 상황들은 여러 번 있었으니….

#1 A당 주요 당직자 B씨

그 당의 경제 정책을 들어야 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경제 이슈에 대해 답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바쁜 당직자 A씨는 녹음을 원했고, 생방송을 원칙으로 하지만 선거 때는 다들 빡빡한 일정임을 고려하여 녹음을 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의견, 당이 가지고 있는 고민 등등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문제는 ‘대운하’에서 터졌다.

 “청와대가 대운하를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자꾸 나오는데 당은 어떤 입장입니까?” “당에서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선 때 당이 주요 공약으로 냈던 것인데 기다리기만 하시는 건 좀 그렇군요. 당에서도 입장을 정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우리는 그냥 기다리자는 입장입니다.” 같은 질문과 답변이 여러 번 반복됐다. “국민들로서는 좀 답답하군요. 언제까지 기다리실 생각이십니까?” 그 순간 B씨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그게 우리 입장이라는데! (뚜뚜뚜--)”  맙소사, 녹음임을 알았던 B씨는 홧김에 전화를 끊었던 것이다. 
청취자들이 듣는다면 상당히 불쾌할 상황을 그대로 내보내느냐 마느냐 긴 회의 끝에 제작진은 녹음분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국민들이 궁금해도 소용없다는 그 자신감, 그 센스는 어디서 나오는지.           

#2 C당 비례대표 후보 D씨

이웃 프로그램에서 생긴 일이다.
그 당의 상징적인 비례대표로 선정된 D씨. 그에게서 비례 대표가 된 각오, 국가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고 질문지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단다. 얼마나 지났을까. 진행자는 평소 복지전문가로 통하는 그에게 복지정책 중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질문했다고 한다. 물론 질문지에는 없었지만 복지전문가라면 자다가도 대답할 수 있을 문제이기에 망설임 없이 질문했단다. 그런데 웬걸. D씨는 “아니, 질문지에도 없는 질문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역정을 냈단다. 아마도 평소 소신대로 답하면 당에서 욕을 먹고 당의 뜻대로 답하면 여론에 욕을 먹는 상황이었나 보다. 끝내 그 답변은 회피한 채 방송이 끝났고 방송 후에도 담당피디에게 항의가 이어졌단다. 전문성 때문에 뽑힌 비례대표가 그 분야의 문제에 대해서도 답하기 싫다는 그 자신감, 그 센스는 어디서 나오는지.

▲ 김현정 CBS〈이슈와 사람〉PD

이 외에도 답하기 싫은 질문을 자꾸 ‘해 대는’ 여기자에게 답변 대신 ‘볼을 톡톡 치는 센스’를 보여준 후보, 선거 다음 날 집 앞에서 기다리던 카메라 기자에게 욕설을 퍼부은 ‘터프한 후보’ 등 이번 선거에는 우리가 기억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달콤한 질문만 해달라는데 왜 자꾸 답하기 싫은 질문을 ‘해 대느냐구요’? 하지만 어떡하죠. 국민들이 원하는 질문이라면 아무리 쓴 질문도 우리는 계속 ‘해 대야’ 할 것 같습니다. 익스큐즈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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