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열(身熱)같은 라다크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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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열(身熱)같은 라다크 겨울 풍경
[히말라야에서 온 편지 2]
  • 승인 200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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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나는 꿈을 꾸었다. 산등성이에 흩어진 초르텐(기원이 깃든 오색깃발)처럼 펄럭거리는 기억의 파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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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그러나 그 파편들은 내가 붙잡으려면 이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나는 그 기억의 파편들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그 꿈 뒤에는 현실의 냉혹함이 나를 이 곳으로 오게 하였다. 좌절감, 무력감, 분노감 같은 것에서의 벗어남이라고나 할까? 그래, 너는 어쩌면 라다크에서 그 좌절감과 분노감을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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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히말라야 동쪽 끝 미조람에서 히말라야 서쪽 끝 라다크까지 장장 5000여 킬로미터의 대자연 위대한 히말라야가 어머니처럼 품고 사는 수많은 고산족들을 찾아 나는 무작정 여기로 왔다. 이곳 히말라야 서쪽산맥과 카라코럼산맥 깊숙히 숨어있는 라다크(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지대. 에서 해발 3800∼4000미터의 고산병으로 헉헉댄 지 30일이 넘는다. 달의 표면 같기도 하고 노회한 할아버지의 등짝과 같은 모습을 한 이곳 라다크의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 나는 한 해를 넘기려고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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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다행히 서울 같은 강풍이 없어서 견딜 만하다. 다른 세계에서는 지금쯤 밀레니엄이다, 새 천년이다 하며 사람들은 정신없이 밀레니엄의 파도에 휩싸일 것 같은데(지난 10월 뉴욕에 갔을 때 밀레니엄 준비가 한참, 지금쯤 뉴요커들은 정신없을 것 같다), 이곳 라다크는 그런 거 모른다. 시간은 그냥 덧없이 대자연 앞에서 흘러가는 강물 같은 것일 뿐…. 나도 이 곳 라다크에서 시간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라다크가 좋다. 이제는 익숙해진 레의 사람들. 정지된 공간에서의 시간에 익숙하지 못한 내가 서서히 순응되고 있다. 레의 허스름한 호텔에서 장기투숙하고 있는 일본인(?) 같기도 한 나에 대해 이 곳 라다크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밤새 석유냄새에 시달리다 호텔방에서 아침에 나가면 오로지 나를 반겨주는 것은 해발 6130미터의 스톡 강가리산. 그 웅장한 모습은 아침햇빛에 만년설을 반짝이며 나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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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이곳 라다크에 와서 3일간 그냥 호텔방에서 죽은 시체모양 물만 마셔댔다. 고산병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잠자고 물을 쭉쭉 마셔대서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8년 전 여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팔팔하게 돌아 다녔는데…. 이곳의 거리, 마음의 미소가 담긴 사람들, 모두 8년 전과 변한 것이 없다. 긴 꿈을 꾼 듯한 몽롱한 상태로 레의 거리를 지나자 라다크 사람들은 "줄레!줄레!(안녕!)". 라다크의 중심지인 레는 인구 15만 명으로 티베트 사람, 라다크 사람, 무슬림 등 인종시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양지바른 곳에서 감자, 마늘, 무 등을 팔고 있는 티베트인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항상 "옴마니밧메홈…". 그들이 바라는 세계는 무엇일까? 비록 지금의 생활이 고달프고 어렵지만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그런 아름다운 세상일까? 어쩌면 챠크라 삼바라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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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몸을 추스리고 처음 찾아간 곳은 레에서 인더스강을 따라 2시간 소요되는 헤미스 사원. 인더스강 상류지역을 보면서 생각한다. 무명(無明)무실(無實)무감(無感)해 질 수 있다면. 히말라야 대자연 앞 이곳에서 모래알보다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 조그마한 깨달음이 나에게서 멀리 사라지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온 헤미스. 겨울 헤미스는 7월의 그렇게 많던 사람들을 다 떠나 버리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황막함만을 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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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로사르(신년축제)가 끝난 후 헤미스사원은 챠고스(기원)에 들어간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푸자(독경)의식이 어둡고 추운 사원 안에 계속된다. 말석에 앉아 동승이 따라주는 따뜻한 버터티에 몸을 녹이고 헤미스 라마들의 푸자소리에 나는 평온함을 얻는다. 며칠동안 찾아갔던 나에게 헤미스 챰(종교 가면극)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곳에서는 챰이 신성해서 특별한 날 아니고서는 공개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어쩌면 마음먹으면 촬영할 수 있지만 이곳 라다크에서는 종교적 행사인 특별한 날에만 특별 촬영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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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2|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대학에서 탈반을 만들어 활동했을 때, 우리 탈의 기원이 항상 궁금했다. 그 기원설 중 하나로 티베트기악(伎樂)기원설이 있었다. 그 때의 여러 학설 중에 나에게 가장 호감이 가는 것이었다. 그 대학 시절로부터 20년 이후 나는 헤미스 챰의식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종교가면을 보았다. 나에게는 문화충격이었다. 나의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문화는 종교의 의식(儀式)에서 파생된다. 신비감, 경외감이 없는 문화는 그냥 배설되는 하수구 문화일 뿐. 형태론에 의하면, 어쩌면 한국의 문화 뿌리 중 일부는 여기서 숨을 쉬고 있고, 우리는 그 것을 보아야 한다. 몽골초원 티베트 고원에서 파생된 북방대륙문화와 남인도 인도네시아를 거쳐 남방해양문화, 그리고 히말라야고산문화가 들어 온 우리 반도의 원형문화를 생각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문화의 원형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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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7|헤미스의 로브장 라마는 다시 7월에 헤미스의 체추페스티벌에 오라고 했다. 나도 다시 헤미스에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서울에 가면…. 가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것 같은 것에 항상 갇혀 있는 우리네 생활. 멀어져 가는 헤미스 사원의 뒤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다시 올 수 있을까? 그 때가 되면 그 조그마한 깨달음을 얻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런 잡념으로 돌아오는 길, 칠흑같이 어두운 밤 오로지 밤하늘의 별들만 가까이서 겨울 라다크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겨울 라다크 속에 나는 풍경(風景)처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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