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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가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억대 계약을 따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물론 드라마에 대한 시장의 좋은 평가가 돈으로 환산된 거라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엄밀히 볼 때 그 드라마는 그 작가만의 것이 아니었다. 연출한 PD가 구성은 물론 대사까지도 많은 부분 직접 각색(?)을 해 준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다시 그 억대 계약을 바라보았을 때 시장의 평가는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PD들은 왜 이 작품 내가 기획했고 내가 대사도 절반 정도는 썼고 구성도 절반 정도 한 작품이란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계산을 일일이 하면서 따지는 것이 좀스러워 보여서? 그것은 오롯이 작가만이 차지해야 할 아우라라는 존중감 때문에? 아니면 PD의 존재감은 수십 명, 수백 명을 거느리는 현장에서만 그 포스가 나올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폼생폼사’하다가 자기 밥그릇도 못 챙기는 순진 내지는 맹추 같은 드라마PD들의 현실을 돌아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유능한 드라마PD로 평가되는 기준이 유명한 작가와 줄이 잘 닿아 있고 인기 연기자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냐 아니냐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거기다 스태프와의 사이가 원만하면 더 좋고 현장에서 대본의 맛을 잘 살리기만 한다면 금상첨화이다. 결국 스스로를 드라마 제작단계에서 일개 테크니션으로 강등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미 외주시장에선 연출에 대한 평가가 대체가능하고 풍부하게 존재하는 소모성 자원정도로만 평가하는 분위기는 역력하다. 모든 것이 드라마PD들 스스로가 판 무덤인 것이다.

더더욱 큰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엉뚱한 짓으로 여겨질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젠 설사 스스로가 기획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핵심 코드만 작가에게 던져주고는 나머지를 모두 일임하는 형식이다. 어떻게 보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혹은 쉽게 일을 하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이것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는 짓이다. 적어도 프로듀서가 디렉터가 아니라는 명확한 명제를 가슴에 품은 PD들이라면 기획능력의 제고를 위한 노력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이렇게 만든 스스로가 바꾸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드라마 시장의 난맥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불분명한 소유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설픈 실력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시장의 돈을 찾아 맹렬히 돌진하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 박기호 KBS 드라마 기획팀 PD

얼마 전부터 기획안 작업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위에선 왜 직접 워딩을 하느냐부터 해서 그렇게 폼 내면서 작업한 결과가 이 모양이냐고 핀잔주는 것까지 걱정과 야유의 한 가운데 서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꿋꿋이 버티며 그 고마운 피드백들을 그대로 기획안에 녹여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마도 〈드라마PD 기획력제고 전선〉의 최선봉에 서보자는 어설픈 공명심이 지금의 나를 이끌고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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