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오락프로그램의 은밀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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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퀴즈쇼 출연해 이라크전 참전군인 응원…이미지 조작 논란

어린이날을 맞아 MBC <무한도전>이 청와대를 찾아가는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최근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이야 예사로운 일이지만, 정치인들의 직접 행동 반경인 이런 시사 관련 프로그램 외의 오락 프로그램에 그들이 나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 참전 군인을 응원하기 위해 NBC 퀴즈쇼 <Deal or No Deal>에 출연했다. 대통령 부인 역시 같은 방송사의 아침 프로그램에 일일 진행자로서 딸들과 함께 출연했다. 두 프로그램 다 그럴듯한 이유는 있었지만, 그래도 대통령 가족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방송의 전면에 나서는 일은 드문 일이다. 그것도 한 방송사에만.

▲ NBC 에 출연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사진제공=NBC

이렇게 대통령이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텔레비전 토론을 잘 이용한 케네디의 부인도 크리스마스 때 백악관의 모습을 처음으로 텔레비전에 속속들이 보여줘 이를 관례처럼 만들었다. 60년대의 텔레비전 붐과 케네디 정부의 적극적인 텔레비전 이용이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후 대통령이 토크쇼에 나와서 색소폰을 연주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점잖은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심야토크쇼에 나와서 대선출마를 선언하는 것까지 발전을 하기는 했으니 생각해 보면, 부시 대통령이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이 그리 두드러진 일은 아닌 듯하다.

그만큼 현대 정치에 텔레비전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고, 어쩌면 정치인과 텔레비전은 서로의 인기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의 발전을 다시 말해서 시사 프로그램에서 일반 오락 프로그램까지 망라하는 것으로 발전한 정치와 텔레비전의 ‘동거’를 과연 당연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런 관계에서는 더 이상 방송이 공정한 위치에서 대통령이란 권력을 감시할 수 없다. 오락 프로그램이 무슨 감시냐고 하겠지만, 일방적인 찬양이나 미화도 방송의 감시에 영향을 미친다.

다음으로 문화적으로 볼 때 이런 프로그램들은 정치를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시킨다. 부시의 예를 보면, ‘지구의 날’ 즈음에 크로포드 목장에 에너지 효율성을 보여줌으로써 부시가 개인적으로 친환경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부시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교토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얼마나 반환경적이었는지의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집중조명은 고의든 아니든 간에 그들이 본분인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모르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우려들은 대부분 시사보도 프로그램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보도의 공정성 문제나 개인화의 문제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인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특히 희소성이 있는 대통령은 자신의 의도에 가장 적절하게 출연할 프로그램을 선택함으로써 그 프로그램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받을 수가 있고, 또 전달될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야 이에 대한 견제가 있지만, 오락의 경우에는 이런 것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정치인들에게는 환상의 조건인 것이다.

부시가 이라크 전 참전군인을 응원하러 나오는 것도, 그 부인이 아침에 나와서 요리를 하는 것도 모두 정치적으로 취사선택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오락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는 만큼이나 철저히 출연대상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청와대 부대변인의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 출연이나, 대통령의 MBC <무한도전> 출연을 그냥 순수하게 볼 수 없는 것이다.

▲ 샌프란시스코 = 이헌율 통신원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nomedia@gmail.com

변명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이 오락 프로그램들도 정치인들의 이미지 생산을 돕는 셈이고, 그래서 프로그램 제작이 정치적 행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전에 기획이 되었고, 어린이날에는 의례 대통령이 나온다는 식의 변명은 책임회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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